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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11)

by 훈 작가 2023. 7. 13.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성격

  Anna가 아침 일찍 일어나 원두를 갈아 내려받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의자에 앉았다. 노트북이 부팅되는 동안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커피 향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순간 연인이 부드럽게 입맞춤해 주는 듯 눈을 감았다. 커피 향이 연인의 향기처럼 마음을 촉촉하게 젖게 해 주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작업한 문서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터치패드를 움직여 첫 페이지로 이동시켰다. 중간중간 오타를 수정하며 문장을 다듬었다. 아침 식사 전 마무리하고 싶었다. 반복해서 몇 번 읽어 봐도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글쓰기 작업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정복하기 어렵다. 어려워도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밤늦게까지 끙끙거리며 작업을 끝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이란 미루면 미룰수록 쌓이게 마련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빨리 끝내는 게 낫다.
  아침 준비는 간단하다. 냉장고에 있는 양 상치, 당근, 토마토, 사과 등을 다듬고 씻은 후 잘라 접시 위에 올려놓고 신선한 액상 발효유만 뿌리면 된다. 여기에 따뜻한 우유 한 잔에 빵과 샐러드(salad) 면 끝이다. 그녀만의 식사 방식이다. 오래전 그녀가 만든 식습관이자 이어온 생활방식이다. 
  언젠가 대사관 직원이 찾아온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지 주겠다고 했다. Anna는 단칼에 거절했다. 자신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말했다. 더불어 자신의 문제가 정치적이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자신의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면 미국에 있는 아버지가 개입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양국 간의 외교적 파장은 물론 상황 자체가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 뻔했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을 하려는 자기 생각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기자회견 계획을 포기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엄마! 출발할게, 10분 후 호텔 앞으로 나와.”
“그래. 알았다. Anna야!”
Susan은 호텔 방을 나서기 전 다시 거울을 봤다. 녀석이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건 지고는 못 사는 성격 탓일 것이다. 한 번 옳다고 마음먹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딸이다. 타고난 딸의 성격과 승부사 기질은 어쩔 수 없다. 
  호텔을 나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딸을 기다렸다. 그때 경적이 두 번 울렸다. Anna가 몰고 온 승용차에서 나는 소리였다. 조수석 유리창이 내려가면서 딸이 손을 흔들었다. 
“엄마!”
 Susan이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아침은?”
“먹었지.”
“넌?”
“모닝커피 한 잔에 샐러드(salad).”
“커피 사랑은 여전하구나”
“습관인 걸 어떡해.”
“몸 관리 때문에 그런 거지?”
“물론 그것도 있지. 근데 그렇게 먹으면 몸이 가벼워.”
“Anna야! 듣기 싫겠지만 결혼은?”
“빨리 시집가라는 얘기지.”
“그나저나 네가 하고 싶은 도대체 뭐니?” 
“미국에 돌아가면 프로그래밍 회사를 설립할 생각이야?”
“그때까지 결혼은?”
“결혼? 그때 가서 생각해 볼 문제지.”
“생각이 있긴 있는 거니?”
“먼저 사랑부터 해 보고 나서.”
“뭐라고?”
“엄마! 사랑과 결혼은 별개 문제야.”
“듣기 싫어, 나이 서른다섯인데 네가 제정신이니?”
“엄마! 세상에 널려 있는 게 남자야. 마음만 먹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난 결혼할 수 있어.”
“엄마는 네가 뭘 믿고 그리 자신만만해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엄마 딸이 뭐가 부족해? MIT 박사야. 게다가 돈이 없어, 남보다 미모가 떨어져, 그렇다고 키가 작아, 문제는 날 상대할 만한 남자가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야.”
“그걸 말이라고 하니?”
“우리 엄마 또 열받는다.”
“네가 열받게 만들고 있잖아. 자신감도 좋지만, 여자가 조신(操身) 한 데가 있어야지. 차라리 네가 남자라면 엄마는 걱정 하나도 안 해.”
“하하하… 너무 걱정 마, 엄마!”
  딸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Susan은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딸이 아직도 철이 없어 보였다. 자신이 낳은 딸이지만 도대체 여자 같지 않은 성격에 내심 걱정이 앞선다. 믿음직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녀석은 여자다.

   김재형 변호사가 Anna 노트북에서 한글파일을 한 번 정독한 후 입을 열었다. Anna는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했다.
“Anna 씨! 정말 기자회견 할 거예요?”
“저는 이미 결정했어요. 변호사님!”
“본인 신상을 다 공개하겠다는 얘기죠?”
“지금부터 당당하게 싸울 생각입니다.”
“우선, Anna 씨가 염두에 두셔야 할 점이 있어요. 이 싸움이 절대 단순하지 않아요. 제가 우려하는 건 Anna 씨의 신변 안전이에요. 
“왜 신변 안전을 걱정하시는 거죠?”
“전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인터넷 카페가 있는 거 아시죠. 일부 극렬 지지자들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스스로 수호천사를 자처하며 Anna 씨를 공격할 거라는 건 아시잖아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체제인데 폭력이 용납되나요?”
“그건 순수한 생각이죠. 그들이 생각하는 선악의 관점이 우리와 달라요. 상식적으로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얘기죠.”
“변호사님 그것 말고 또 다른 문제는 없나요?”“외교적 파장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요. 개인의 문제가 인권 문제로 번지면 한·미 간에 외교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을 큽니다. 그러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죠. 그나저나 왜 기자회견을 하려는 거죠?”
“어제 꽃지해변에 가다가 행담도 휴게소에서 우연히 TV를 보게 되었어요. 때마침 전직 대통령 변호인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회견에서 그들이 저 보고 뭐라 한 줄 아세요. 참 기가 막혀서 … 명예훼손 소송 운운하며, … 우리 측 요구사항을 들었으면 조용히 끝날 일을 갖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새삼 성추행이랍시고, 문제를 부풀려 더욱 꼬이게 만든 걸 보면 원고 측이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고 너무 날뛰는 것 같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하잖아요.”
Anna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전에도 저를‘꽃뱀’ 취급해 매우 불쾌했는데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잖아요. 저도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이제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이렇게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으면 저를 더 우습게 볼 거라고요. 제가 직접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 줘야겠어요.” 
“Anna 씨!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될까요?”
“변호사님!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양심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볼 거예요. 처음엔 진정한 사과 한마디만 있으면 끝내고 싶었어요. 근데 지금은 아녜요. 오만한 권력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거예요. 서울을 떠나기 전 끝장을 보고 말 겁니다. 제 생각엔 권력으로 누른다고 덮어질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권력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녜요?”
“그렇진 않아요. 문제는 권력이 국민의 정치적 수준을 너무 무시하고 있어요.”
“Anna 씨! 팬덤(fandom)이란 말 아시죠?”
“예, 알아요.”
“한국 정치에 팬덤(fandom) 현상이 심한 걸 아세요?”
“거기까진 모르겠어요.”
“보통 팬덤(fandom) 현상은 BTS 같은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연상하겠지만 정치인에게도 이 같은 현상이 있거든요. 전임 대통령도 여기에 해당하죠. 지지자들은 전직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이성적인 시각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도 없고요. 그냥 추종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이에요. 다분히 감정적이며 맹목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거죠.”
“그게 저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그들에게 Anna 씨는 적이에요.”
“제가요?”
“그들은 Anna 씨를 어떤 이유로도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은 Anna 씨 신상정보가 노출되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공개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질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공격을 할 거라는 얘기죠. 따라서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얘기예요.”
“그럼, 협박에 무서워 제가 굴복해야 하나요?”
“저는 변호인으로서 예상되는 상황을 의뢰인에게 알려 드리는 거예요.”“변호사님! 전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믿고 권력의 가면 뒤에 숨어 악마의 얼굴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있어요. 변호사님 말씀대로 지지자를 방패 삼아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거죠. 저는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어요. 어떠한 권력도 민심은 이길 수 없잖아요. 제가 기자회견을 하려는 이유죠. 그들의 위협이나 협박은 그다음 문제라고 생각해요.”
“Anna 씨 의지가 확고하다면 저도 힘닿는 데까지 싸워볼 수밖에 없겠네요.”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Susan이 지켜보기에는 Anna의 불같은 성격이 한계치를 넘었다. Susan은 딸을 제어할 수 없다. 이제 치킨게임을 하듯 한 치 양보 없이 두 대의 차가 서로 마주 보며 달리는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다. Susan은 Anna가 자꾸만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타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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