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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13)

by 훈 작가 2023. 7. 18.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파장(波長)

 

시민들이 응원하는 전화가 김 변호사 사무실에 빗발쳤다. 성금을 보내겠다는 사람들도 잇따랐다. 한국 여성의 전화와 한국 성폭력 사무실에도 온종일 격려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특히, 과거 성폭력을 경험했던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성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대학가도 Anna 기자회견을 지지하는 성명서 발표가 잇따랐다. 특히, 서울시 내 여자대학교 학생들은 성 관련 피해자들이 음지로만 숨어 지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피해 여성들이 가슴앓이하는 소극적인 자세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신념을 갖고 양지로 나와 성폭력과 맞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H 신문 차수정 기자는 Anna 사건 초기부터 관심을 보였다. 차 기자는 Anna와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여러 차례 김재형 변호사에게 부탁했었다. 그러나 Anna가 언론에 나서는 것을 꺼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랬던 Anna가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김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차수정입니다. 다른 취재 일정이 잡혀서 기자회견에 가지 못했는데

어떻게 된 일이죠? 변호사님!”

전 반대했어요. 근데 얼마 전 저쪽 변호인들의 기자회견을 보고 몹시 불쾌했나 봐요. 그렇지 않아도 1심 판결에 크게 실망했던 참인데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 같아요.”

, 그 회견은 저도 봤어요. 사실 그 사람들 너무 심했어요. 아마 저 같아도 참을 수 없었을 거예요.”

전 그보다 걱정이 앞서요. 모든 게 언론에 다 공개되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잖아요.”

저도 사실 그게 걱정이 되긴 해요.”

“Anna 씨가 예쁘장한 외모와는 아주 달라요. 속된 말로 너네들 권력만 믿고 날뛰는데 뜨거운 맛을 보여 주겠다는 식이죠. 이를테면 승부수를 던진 거죠.”

그렇다면 언론을 끌어들여 여론을 통해 민심을 얻겠다는 전략인가요?”

전 그런 노림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 변호사님! 그렇다면 고도의 정치적인 전략이네요.”

고수라고 봐야겠죠.”

변호사님! 그나저나 기자로서 Anna 양을 어떻게든 돕고 싶어요.”

차 기자님! 지원사격 좀 많이 해주세요.”

변호사님! 제가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다리 좀 놓아주실 수 없나요?”

기자회견을 했으니까 당분간 지켜보고 기회를 봐서 말해 볼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변호사님!”

차수정 기자는 검사 시절부터 인연이 된 사이다. 그녀는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 기자가 되었다. Anna처럼 영혼이 맑은 여자다. 검사 시절 차 기자는 새내기였다. 성폭력 사건을 수사할 때 피해 여성 억울한 사연을 듣고 그녀가 기사를 쓴 인연으로 알고 지내왔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여성 인권에 대해 의기투합하며 가깝게 지내왔다. 차 기자 얼굴이 Anna와 오버 랩 되면서 김 변호사 뇌리에 스쳤다.

 

우려했던 상황도 벌어졌다. 전임 대통령 지지자들의 항의 전화도 잇따랐다. 김 변호사 인터넷 홈페이지와 한국 여성의 전화와 한국 성폭력 상담사무소 홈페이지도 악성 댓글 수없이 달렸다. 심한 욕설은 물론 포털사이트에 Anna 신상과 관련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치권도 공방전이 벌어졌다. 전임 대통령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 야당에서 먼저 포문을 열었다. 여당에서는 이에 대해 명예훼손이라며 발끈했다. 수호천사를 자처하는 일부 여당 의원들이 전임 대통령 방어에 적극 나서며 Anna 기자회견을 비난했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 측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은 피해자인 Anna피해 호소인이라는 해괴망측한 용어를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성추행 피의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억지 주장을 펼쳤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자 여론의 비난 화살이 그들에게 빗발쳤다. 그들의제 식구 감싸기식 행동에 화가 난 민심이 조금씩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만, 확실한 건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언론의 관심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김 변호사는 이전까지 신문과 방송이 전임 대통령의 언론플레이 때문에 소홀히 하지 않았나 의심했다. 그가 재임 기간에 임명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라든가 각 방송사 사장이 자신의 측근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 대사관도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진실규명을 위해 관계 당국이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스티브 대사가 외교부를 직접 방문하여 전달했다. 스티브 대사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정치문제로 삼지 말고 인권 문제로 보아야 한다며 Anna의 문제를 계속해서 예의주시할 거라는 뜻을 밝혔다.

우려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Anna가 거주하는 오피스텔 주변을 맴도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한 번은 서울역 L마트에서 수상한 남자가 자신을 미행하는 것 같아 그를 따돌리는 데 진땀을 뺀 적도 있었다. 이후 Anna는 자주 가던 서울역 L마트 대신 용산 쪽 N 마트를 이용했다.

이때부터 Anna는 외출을 자제했다. 불가피하게 나갈 때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랄 일이 있었다.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출입문의 협박성 메모지가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까 했지만,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믿을 수가 없었다. 자꾸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페이스북 SNS 계정에 올라오는 글도 갈수록 악성 댓글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녀는 SNS 계정 자체를 폐지해 버렸다. 상황이 악화하자 Anna는 김 변호사와 상의한 끝에 당분간 엄마와 같이 지내기로 마음먹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야

별일 없니?”

아니 있어.”

Susan은 딸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일이 있니?”

요즘 자꾸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나.”

무슨 일이?”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미행하는 일도 있고, 언젠가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출입문의 협박성 메모지가 붙어있는 일도 있었어.”

그럼 밤늦게라도 사람들 눈 피해서 미리 준비했다 호텔로 와.”

알았어, 그렇게 할게.”

Anna는 전화를 끊자마자 여행용 캐리어를 꺼냈다. 옷가지와 양말, 속옷 그리고 화장품과 세면용품까지 넣었다. 옷가지 사이에 노트북도 잊지 않고 끼워 넣어 두었다. 저녁 무렵 전기밥솥에 남아 있던 밥을 공기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워 김치와 마른반찬으로 가볍게 식사했다.

커피를 마시며 오피스텔 창밖을 보았다. 기자회견의 파장이 예상보다 컸다. Anna는 본격적인 싸움이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을 이기려면 여론과 민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기자회견을 통해 나서는 게 최선이라 판단했다. 다만 긍정적인 파급효과만 생각했지, 부정적인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김 변호사가 만류시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잡념이 머릿속에 떠돌아다녔다. 휴대폰을 보니 12시가 넘었다. 엄마에게 전화하고 오피스텔을 나섰다. 주변을 살피며 주차장으로 내려와 트렁크에 캐리어를 싣고 조용히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Susan은 딸의 전화를 받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김재형 변호사가 한 말이 다 맞았다. 벌써 이십여 분이 지났다. 속된 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Susan은 마음이 타들어 갔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왜 이리 안 나타나는 걸까. 마음이 더욱 초조해져 갔다. 그녀가 마음 졸이며 휴대폰을 찾았다. 딸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호텔 방 문을 열고 Anna가 들어왔다.

걱정 많이 했지?”

~, 그걸 말이라고 해 얼마나 마음 졸였는데.”

미안해, 엄마!”

됐어.”

Susan이 한숨을 돌리며 딸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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