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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14)

by 훈 작가 2023. 7. 20.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의문의 사고

  모녀는 호텔에서 지내며 외출을 자제했다. 혹시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일어날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텔 안에서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기에는 공간적인 제약이 있다. 지루한 일상을 감내해야 한다. 나름대로 호텔 내 시설을 최대한 이용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최선이었다.
  두 사람은 호텔 내 있는 피트니스 클럽과 수영장을 다녔다. 그래도 호텔 방안에 머무는 시간은 따분했다. Anna는 주로 노트북을 꺼내 웹서핑으로 시간을 보냈고 Susan은 스마트 폰이 친구가 되었다. 호텔 앞에 남산공원이 있는 것도 위안이 되었다. 답답함을 달래는 데 한몫했다. 불가피한 일상의 변화다. 
  Anna는 경우 주간에 외출할 때 의도적으로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나갔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주간 활동이 꺼려졌다. 대신 밤에 외출이 늘었다. 모녀가 야행(夜行)에 나서는 장소는 주로 남대문 시장이었다. 시장 구경은 기분전환의 안성맞춤이었다. 거기에 호텔에서 머지않아 안성맞춤이었다.
  모녀의 일상이 온종일 지루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은 지루했다. 특히, 젊고 활동적인 Anna에게는 스트레스였다.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은둔에 가까운 생활이 지겨웠다. 모두가 그녀의 기자회견이 가져온 결과다.
“엄마! 답답하지?”
“어쩌겠니? 그러려니 지내야지.”
“엄마, 우리 이리지 말고 바람이나 쐴 겸 꽃지해변이나 다녀오는 게 어때? 지난번 너무 좋았거든, 엄마랑 같이 봤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주 아쉬웠어.”
“그렇게 좋았니?”
“요즘 애들 말로 완전 대박이었어.”
“여기서 얼마나 걸리니?”
“2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어.”
“날씨는 괜찮을까?”
“일기예보 보니까 괜찮을 거 같아.”
  Anna는 답답함을 벗어나고자 꽃지해변 일몰 얘기를 꺼냈다. Susan은 딸의 마음을 알아챘다. 사실 그녀도 무료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4월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꽃눈이 되어 휘날리던 벚꽃들이 처연하게 떨어져 길을 뒤덮었다. 벚꽃을 보며 함박웃음을 보내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떨어진 꽃잎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 다녔다. 떨어진 꽃은 이미 꽃이 아니다. 꽃은 피었을 때만 꽃이다. 봄바람에 나뒹구는 꽃잎이 애처롭게 보이는 이유다. 
  사람들은 떨어진 벚꽃 잎에 무심하다. 인간의 변심을 보여 주는 방증이다. 꽃이 피었을 때와 졌을 때 받는 사랑은 극과 극을 달린다. 삶은 꽃이 피었다 지면 쓸쓸하게 퇴장한다. 자연의 이치다. 한 생명의 탄생은 축복이지만 그 생명의 소멸은 눈물을 품은 슬픔이다. 꽃눈이 지는 건 잔인한 4월이 남기는 죽음이다.
  봄은 여인의 계절이다. 봄이 짙어 가는데 봄을 만끽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모처럼 마음이 들떴다. 모녀는 한껏 멋을 부리듯 봄 패션으로 치장했다. 마치 어린아이들 봄 소풍이라도 가듯 서로 거울을 번갈아 보았다. Anna가 여행 가방을 뒤적이더니 Susan에서 물었다. 
“엄마! 혹시 쓸 만한 선글라스 없어?”
“네 것은 마음에 안 드니?”
“이건 얼굴 감추려고 그냥 하나 산 거야.”
“그래. 있긴 한데, 네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상관없어. 있으면 하나만 줘.”
“톰 포드-니키타와 프라다 둘 중 어느 걸로 쓸 거니?
“둘 다 명품이잖아.”
“내가 아끼는 건데, 톰 포드 어때?”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거면 엄마가 써야지.”
“어디 한 번, 써 봐.”
“잘 어울리네.”
“잘 어울려?”

  승용차가 한남대교를 건넜다. 평일인데 경부 고속도로 반포에서 서초나들목까지 도로정체가 심했다. 그곳을 지나자 차량정체로 도로가 막히는 곳이 없었다. 승용차가 뻥 뚫린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답답했던 마음이 일순간에 날아가듯 기분이 상쾌했다.
  승용차가 서해안 고속도로 행담도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Anna는 지난번 기분이 상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Anna가 따뜻한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뽑아왔다. 한 모금 마시며 하늘을 보았다. 중국발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다. 구름 한 점 없이 날씨인데 하늘은 천식 환자처럼 생기(生氣)가 돌지 않았다.

  휴게소를 출발한 차가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I/C를 빠져나왔다. 서산을 지나서 태안 방향으로 달리고 있을 때였다. Anna가 룸미러와 백미러를 반복해서 보았다.
“엄마! 누가 자꾸 따라오는 것 같아.”
“그래.”
“검은색 승용차인데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면서부터 계속 우리 차를 따로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의심스러우면 조금 가다 주유소가 보이면 들어가서 기름 넣는 척하고 잠깐 우회전해서 보면 되잖아.” 
“그럼, 그렇게 해 볼까.”
Anna는 주유소가 보이자 우측 방향지시등을 켰다. 그리고 속도를 줄이며 주유소 방향으로 들어가는 척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던 검은색 승용차가 그대로 지나갔다. 그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Anna가 다시 액셀 페달을 밟았다. 조수석에서 앉아 있는 Susan이 한마디 했다.
“요즘 네가 과민해진 거 아니니?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 같던데.”
“그래 보여?”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차분한 마음을 가져. 기자회견을 계기로 응원해 주는 분들로 많아졌잖아.”     
“알았어. 엄마, 그나저나 호텔비용 만만치 않을 텐데, 용돈 좀 드릴까?”
“얘, 왜 그래. 엄마 의사야.”
“알았어, 알았어. 또 결혼 얘기 꺼내려고 했지?”
“눈치는 빨라서…”
“아빠한테 연락은 없어?”
“어제 통화했어. 오늘 런던 일정 끝내고 베를린으로 이동하신대.”
“언제 통화하셨어?”
“내가 한 게 아니라 아빠한테 왔었어.”
“언제 온 거야?”
“아마 네가 호텔 수영장에 갔을 때였지.”
“하필이면 그때야.”
“아빠도 너와 통화 못해 많이 아쉬워하셨어.”
“그랬어. 아빠는 참 자상해, 정치인 같지 않아.”
“엄마도 처음엔 몰랐지. 결혼하고 나서 알았다니까.”
“그러면 아빠가 속인 거야.”
“속였다기보다 내가 눈치가 없었지.”
“그게 무슨 말이야. 눈치가 없었다니.”
“공무원이라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지.”
“공무원! 아빠 재치 있네. 공무원? 하하하.”
“아무튼 John과의 결혼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
“아빠랑 어떻게 만났어?”
“요한 신부님 덕분에 결혼하게 되었지.”
“아! 그레이스 성당 신부님. 기억난다. 수다 떨다 보니 다 왔네. 저기 커다랗게 서 있는 바위 두 개 보이지?”
“그래 보여.”
“왼쪽이 할아비 바위고 오른쪽이 할미 바위래.”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한 후 모녀가 내렸다. Anna가 Susan의 팔짱을 꼈다. Anna가 관광 안내 표지판 쪽으로 Susan을 이끌었다.
“엄마! 한번 읽어봐. 바위에 대한 전설이야.”
“…”
“슬프지?”
“사랑과 관련된 전설은 다 슬퍼.”
“엄마 해변으로 내려가 보자.”
바닷물이 빠진 해변은 물기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지난번 왔을 때는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직 이른 지 사람이 별로 안 보이네.”
“여기가 그렇게 일몰 풍경이 멋진 곳이니?”
“엄마! 한국말에‘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 알지?”
“그래, 알았어.” 
봄이지만 바닷바람이 약간 차가웠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래사장이 눈밭처럼 푹 들어갔다. Susan은 답답했던 가슴을 뻥 뚫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딸을 따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Anna가 말대로 카메라를 둘레 맨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사진동호회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여러 팀이 해변으로 몰려왔다. 그들 중 누군가 한 사람이 일몰이 끝내 줄 것 같다며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Susan은 그 소리에 일몰이 은근히 기대되었다. 
  해가 비스듬하게 수평선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동그란 해가 뚜렷하게 보였다. 환상적인 일몰이 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Susan은 Anna가 한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한 폭의 그림처럼 해넘이가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넋이 나간 듯 황홀한 일몰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엄마! 오길 잘했지?”
“그래, 오길 잘했어.”
“전에 왔을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뭐 때문에 엄마 생각이 났니?
“엄마 나이도 이젠 인생 후반전이잖아.” 
“아니, 우울하게 나이 얘기를 해.”
“그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난번 일몰 보면서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 
“네가 이기적인 것 같다고?”
“맞아, 엄마! 엄마도 이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셔야 할 나이인데, 내가 너무 마음고생시키고 있잖아, 문득 황혼 문턱에 접어든 엄마를 왜 내가 편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서울에 오라고 했나 생각하니까 내가 아직 철이 덜 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울컥했었어.”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Anna야! 너 아니었으면 영영 이 땅을 밟지 않았을지도 몰라. 어쨌든 딸 덕분의 한국에 오게 되었으니 엄마는 참 잘 됐다 싶어.”
“엄마! 미안하고 고마워. 앞으로 좋은 딸이 되도록 할게.”
“난 네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 준 것만 해도 너무 행복해. 그리고 네가 대견스러워. 우선, 지금 우리 앞에 놓은 이 고비를 잘 넘기자. 행복은 시련 뒤에 숨어 있는 법이야.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지. 절대로 잊으면 안 돼, 우리 딸 알았지?”
“그래 엄마! 내가 누구 딸인데.”
“인생은 퇴장하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해.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 황혼이란 말이 왜 인생의 끝머리에 비유되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어. 화려한 젊은 날보다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야 더 멋진 삶이야. 그래서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모양이야.”
“난 엄마의 이런 면이 존경스러워. 엄마! 병원 정리하면 문학 쪽으로 한 번 도전해 보는 게 어때?”
“얘! 그만해. 나도 주제 파악할 줄은 알아.”
“엄마! 난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야.”
“어쨌든 참고할게.” 

  낙조의 황홀한 풍경이 한동안 서쪽 하늘을 물들인 채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를 지키던 일상이 물러가면서 어둠이 밀려왔다. 모녀는 발길을 돌렸다. 바닷바람이 낮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Anna가 승용차 시동을 걸었을 때 어둠과 섞인 저녁 빛이 하늘과 땅 사이에 스며들었다. 일몰 사냥에 나섰던 사람들도 타고 온 차에 전조등을 켜며 주차장을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Anna가 운전하는 승용차도 안면 읍내를 벗어났다. 
“엄마! 배고프지 않아?”
“아니 괜찮은데,”
“올라가다 서산 시내에서 먹을까?”
“네가 알아서 하렴.”

  태안을 지났다. Anna가 내비게이션을 보며 서산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전조등 불빛이 길게 뻗으며 어둠 속으로 질주했다. 순간 뒤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차가 있었다. Anna가 차선을 주행차선으로 변경했다. 뒤따르던 차가 추월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추월하지 않고 주행차선으로 바꾸며 따라붙었다. 
  Anna는 순간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액셀을 세게 밟으며 속도를 높였다. 뒤에 따라오는 차도 가속을 하며 바짝 따라붙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추격전 장면을 연상케 했다. Anna가 액셀 페달을 더 강하게 밟았다. 뒤따르던 차가 추월차선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더 빠른 속도로 따라왔다. 
  왼쪽 차창으로 검은색 승용차가 보였다. 정체불명의 차가 추월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Anna 앞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Anna가 사고를 직감하며 본능적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자신도 모르게 “엄마!” 하며 소리를 질렀다. 차가 중심을 잃으며 길옆 가로수에‘퍽’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큰 충격이 온몸에 전달되는 것이 느껴지면서 에어백이 터졌다. 하얀 고무풍선이 시야를 가리며 얼굴과 가슴을 덮쳐왔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의식이 멀어지면서 컴퓨터 전원이 나가듯 화면이 꺼져버렸다. 빛이 없는 우주공간에서 끝이 안 보이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무중력 상태 같은 느낌이었다. 
  버둥거리며 “엄마! 엄마!” 외쳤지만 엄마가 안 보였다. 시간이 멈추었다. Anna가 우주공간으로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한없이 날아가고 있다. 빛도, 꽃도 없는 공간에 두 팔을 펼친 채 동력을 잃은 우주선처럼 허공에 떠 있다. 여기저기 반짝이는 별들이 보였다. 모녀는 항로를 잃은 우주선 안에서 은하수 끝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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