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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15)

by 훈 작가 2023. 7. 23.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검사(檢事)
 
김재형 변호사가 사무실을 나왔다. 평소보다 늦은 퇴근이다.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며 휴대폰을 꺼내 시계를 보았다. 밤 9시 50분이다. 지하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실례지만 김재형 변호사님이십니까?”
“예, 그런데요.”
“저는 서산경찰서 최정수 형사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뺑소니 교통사고 피해자 신분을 확인하다 보니 변호사님 명함이 나와서 혹시 아는 분인가 해서 전화했습니다.”
“피해자가 누군데요?”
“Anna Edward라는 여자분입니다.”
그녀의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예! 어디로 가면 되죠?”
“서산의료원 응급실입니다.”
“환자 상태는 상태요?
김 변호사는 다급해지면서 목소리가 올라갔다.
“보기에는 심하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은 데 의식이 없습니다. 의사 말로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아-아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침착하려고 애썼다. 먼저 집에 전화해 남편에게 상황을 전했다. 남편에게 애들 숙제 좀 챙겨주고 시간에 맞추어 잠자리에 들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끊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요금소를 앞두고 서산지청에 근무하는 후배 윤지애 검사에게 전화했다.
“선배!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윤 검사! 늦은 시간에 미안한데 부탁 좀 할 게 있어서 전화했어.”
“말씀하세요. 선배!”
“조금 전 내가 사건을 맡고 있는 의뢰인이 교통사고로 서산의료원에 있다고 최정수 형사라는 사람한테 전화를 받았어.”
“제가 도와줄 일이 뭐죠?”
“용의 차량 CCTV화면 확보 좀 부탁해.”
“그건 경찰에서 기본적으로 하는 거 하잖아요.”
“물론 그렇지. 그런데 이 사건은 성격이 좀 달라.”
“그래요?”
“피해자가 전임 대통령과 성추행으로 소송 중인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야.”
“아! 얼마 전 기자회견을 했던 그 아가씨 말하는 거죠?”
“맞아.”
“내 생각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닌 것 같아. 배후에 누군가 있을 거란 얘기지. 그들이 먼저 증거인멸을 시도하기 전에 빨리 손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윤 검사에게 급히 전화한 거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선배!”
“나 지금 내려가고 있거든 서산 도착하면 다시 전화할게.”
“예, 알겠습니다. 선배!”
김재형 변호사는 검사 시절의 몸에 뱄던 순발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직감으로 분명 배후에 무슨 음모가 있을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기자회견 이후 Anna 사건이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하자 전임 대통령 측이 초조해진 게 확실하다. 그런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생각이 들자, 혹시 Anna 어머니가 같이 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최정수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정수 형사님이시죠?”
“아까 통화했던 김재형 변호사입니다.”
“아! 예. 변호사님 말씀하세요.”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는데요. 혹시 교통사고 피해자 중에 여자 한 분 더 있지 않나요?”
”예, 한 분 더 있습니다. 어머니 같던데…“
“예, 맞습니다. 그분은 어떠세요?”
“그분은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의식은 있기는 한데 충격 때문인지 의사소통을 하기에는 현재 어려운 상태입니다. 사건 정황을 물어보려 했는데 의사 말로는 하루 정도는 지나야 가능할 거랍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 형사님!”
김재형 변호사는 전화를 끊으면서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서산의료원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최정수 형사로부터 들은 얘기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김재형 변호사는 안도했다. 모녀가 누워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Anna가 의식이 없는 채 호흡기를 코에 꽂은 상태로 누워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옆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는 상태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김 변호사는 두 사람을 빨리 서울로 옮기는 게 급선무라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엉클어져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선배! 지금 어디쯤 오고 있어요?”
“아! 미안해 윤 검사, 깜박했네. 나 서산의료원이야.”
“바로 갈게요. 선배!”
10분 정도가 지나자 윤 검사가 왔다.
“미안해,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서.”
“그런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부탁하신 건 다 조치해 놓았어요.”
“고마워, 윤 검사!”
“Anna 양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그렇죠?”
“윤 검사!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도 여자지만 쉽지 않았을 텐데, 아마 저 같으면 못 했을 거예요.”
“나도 그랬을 거야. 처음부터 많이 말렸지, 하지 말라고.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버거운 싸움이긴 한데 나도 Anna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사건을 맡았지.”
“맞아요. 남자들의 잘못된 성(性) 인식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피해 여성들이 음지에서 죄지은 것처럼 고통을 안고 사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윤 검사도 빨리 서울로 올라와야 할 텐데.”
“저도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나 봐요.”
“그게 무슨 소리야?”
“검사로 임용되면서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다짐했는데 저도 속물이 다 되었나 봐요. 어떻게 해야 좋은 자리에 갈 수 있나 자꾸 신경 쓰게 되니까요.”
“윤 검사! 나도 그랬어, 어쨌든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우는 아이 먼저 젖 준다는 말 있잖아, 빨리 서울로 올라오려면 소신도 굽힐 줄 알아야 해, 싫든 좋든 시류(時流)에 맞게 처신도 해야 하는 게 조직 생활이야.”
“저는 그게 너무 힘들어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 그런데 세상은 의외로 아부하고 코드 잘 맞추는 사람들이 잘 나가.. 일만 열심히 한다고 알아주지 않아.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바보가 되는 걸 알아야 해.”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제 성격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갈등이 생기고 스트레스받는 거야.”
“실력보다는 조직 내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새삼스레 느끼거든요.”
“그 시점이 고비야, 윤 검사도 성격이 곧고 타협을 할 줄 모르잖아. 장점인데 현실에서는 그게 단점이 되는 게 모순이지.”
“어쩌겠어요. 태생이 그런데.”
“선배! 오늘 주무실 거예요? 주무실 거면 제 숙소로 같이 가시고요.”
“아무래도 하룻밤은 신세 좀 져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차는 여기에 두고 제 차로 가시죠.”
“잠깐만, 혹시 모르니 환자에게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라고 당직 의사에게 내 명함 좀 주고 올게.”
김재형 변호사와 윤 검사가 서산의료원을 빠져나갔다. 숙소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사고와 관련한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윤 검사에게 용의 차량과 용의자 추적에 대해서도 파악되는 대로 정보를 부탁했다. 이번 사건이 사전에 계획된 범죄일 가능성이 크고, 범행에 이용된 차량도 대포 차량일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다음 날 윤 검사가 출근하면서 김재형 변호사가 서산의료원에 태워다 주었다. 그녀가 응급실을 찾았을 때 Anna 어머니는 깨어 있었다. 그녀는 김 변호사를 보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김 변호사가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몸은 어떠세요?”
“전 괜찮습니다. 변호사님! 이렇게 폐를 끼쳐 어쩌죠.”
“아니에요. 어머님! 그나마 다행이에요.”
“우리 Anna가 걱정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곧 의식이 회복될 거라고 하니까요.”
“…”
“어머님! 우선 병원을 서울로 옮기는 게 좋지 않을까요? Anna 이모가 강남 어디에 산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우리 은영이요.”
“아! 들어 본 것 같아요. 전화번호를 주시면 제가 전화할게요.”
“아닙니다. 변호사님! 제가 하겠습니다.”
Susan이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려 하자 김재형 변호사가 잠시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은영아! 나야.”
“언니!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은영아!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무슨 일인데, 그래?”
“어제 교통사고 당했어.”
“어쩌다?”
“Anna랑 안면도 꽃지해변 일몰 구경하고 서울로 올라오다가.”
“많이 안 다쳤어?”
“난 괜찮은데 Anna가 좀 다쳤어.”
“Anna가?”
“얼마나?”
“잘 모르겠어. 아직 의식이 없는 상태야.”
“뭐라고? 그럼 많이 다쳤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곧 의식을 찾을 거래.”
“형부도 알아?”
“내가 새벽에 전화했어, 유럽 출장 취소하고 서울로 바로 온다고 했어.”
“언니! 지금 바로 갈게, 어디야?”
“은영아! 그보다 병원을 서울로 옮겨야 할 것 같아. 제부한테 얘기 좀 해서 병원 좀 미리 알아봐 줘.”
“언니!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테니까. 지금 어디야?”
“서산의료원이야.”
“언니! 알았어. 바로 내려갈게.”
“그래, 조심해서 내려와.”
 
김 변호사는 윤 검사에게 어제 고생 많았다며 말하고 부탁한 건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시간이 없어 얼굴을 못 보고 올라갈 것 같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다시 응급실 안으로 들어와 Susan을 보며 말했다.
“어머님! 통화하셨어요?”
“예, 했습니다. 병원도 얘기했고요.”
“잘 되었네요.”
“변호사님! 제 생각엔 이건 사고가 아닙니다.”
“사고 상황을 설명하실 수 있으세요?”
“우리 Anna가 뒤따르던 차에 비켜주려고 차선을 변경했어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냥 가면 그만이거든요. 그런데 추월한 차가 갑자기 우리 차 앞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브레이크를 밟았어요. 우리 Anna가 깜짝 놀라 이를 피하려고 급하게 핸들을 꺾으면서 앞 차량 뒷부분과 부딪히며 ”퍽”하고 가로수를 들이박았죠. 고의로 사고를 낸 게 분명합니다.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시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어머님! 저도 이 사고가 단순 뺑소니 사고로 보지 않아요. 저도 검사 생활을 했거든요. 서산지청에 있는 후배에게 사고 관련 자료를 부탁해 놓았으니 범인 잡는 건 시간문제예요. 사고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잘 알겠습니다.”
“Anna 이모는 몇 시쯤 오시죠?”
“점심때쯤 올 겁니다.”
“어머님! 저 이만 올라가 볼게요. 그럼, 몸조리 잘하시고요.”
“고맙습니다.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은영이 상기된 표정으로 응급실로 들어왔다. 자매가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울먹인 목소리로 은영이 말했다.
“언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게, 말이다. 내가 죄를 많이 지은 모양이야.”
“언니가 무슨 죄가 있다고, 도대체 어떤 놈들이 그런 거야?
“내가 사고 상황을 Anna 변호사에게 말하니까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가 봐. 어떻게 알고 내려왔는지 서산지청에 근무하는 후배 검사에게 부탁해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나 잘하라며 아침에 올라갔어.”
“다행이네. 언니! Anna는?”
“에어백 덕분에 큰 부상은 없는데 사고 충격으로 회복은 시간이 걸릴 거래.”
“어쨌든 후유증이 없어야 하는데.”
자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은영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가 잠깐 통화 좀 하고 오겠다며 응급실을 나갔다. Susan은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그때 Anna 쪽 침대에서 작은 신음이 들렸다. Anna가 의식이 돌아온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분명 딸의 신음 같은데 딸은 아무런 기척이 없다. 동생 은영이 전화 통화를 끝내고 들어왔다.
“애 아빠 전화야. 옮길 병원 어디로 할 건지 상의하느라 좀 길어졌어.”
“그랬니?”
“성모 병원으로 하자니까 애 아빠 후배가 있는 강남 삼성병원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거야. 집에서 가까우니까 그게 나을 것 같아 애 아빠 말대로 하기로 했어.”
“은영아! 미안하다. 애들 뒷바라지하느라 바쁠 텐데 이렇게 신경 쓰게 해서.”
“공부야 지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뭐, 그런 소리 말고 나을 생각이나 해.”
Susan은 은영과 얘기를 하면서 자기 귀를 또 의심했다. Anna 침대 쪽에서 작은 신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은영아! Anna한테 무슨 소리 안 들리니?
은영이 뒤를 돌아보았다. Anna가 가냘프게 누구를 부르는 듯 입술이 움직였다.
“Anna야! 이모야, 은영 이모.”
“이---모! 엄마는…?
“엄마 여기 있어.”
은영이“선생님!” 하며 의사를 불렀다.
 
며칠 후 김재형 변호사는 윤 검사를 통해 사건 개요를 전해 들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하루 만의 범행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차량을 인적이 드문 서산 시내 외곽에서 발견했다. 대포 차량이었다. 윤 검사는 범행 차량 발견 장소 CCTV 분석 결과를 토대로 용의자가 타고 도주한 차량을 경찰이 추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언론은 Anna 양 교통사고가 전직 대통령과 연관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라고 부인했다. 변호인 측은 이러한 가짜뉴스가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추측성 보도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미 대사관도 Anna 양 사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스티브 대사는 경찰이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하게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사건 배후에 전임 대통령이 관련된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현 정부가 진실을 숨기면 심각한 외교 문제가 될 것임을 밝혔다. 동시에 이번 사고가 미국인에 대한 테러 행위인지 진실규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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