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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17)

by 훈 작가 2023. 7. 29.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첩보
 
  호수에 떠 있는 백조는 정중동(靜中動)이다. 첩보를 다루는 요원들도 그렇다. 그들은 깃털처럼 스치는 바람조차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짧은 순간에도 단서를 찾아 퍼즐을 맞추는 게 그들의 활동이다. 실오라기 같은 정보 하나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일이다.
  인천공항에서 미 대사관 직원들이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그들을 예의주시하던 눈빛이 있었다. 국정원 직원들과 경찰청 대외정보과 소속 요원들이다. 그들은 미 대사관 직원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본 직후 그들의 동선을 은밀하게 역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VIP 입국 통로 주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디론가 전화를 한 후 사라졌다. 공항 귀빈실에도 잠깐 모습을 보였다. 항공사 데스크에 가서 입국자 명단도 체크했다. 국정원 직원들과 경찰청 대외정보과 요원들은 무언가 있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현장에서 있었던 상황만 간단하게 윗선에 보고하고 다음 지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정보라인을 총괄하는 실무 책임자는 보고내용을 분석한 후 재지시를 내렸다. 요원들은 미 대사관 직원들이 체크한 항공사별 입국자 명단을 확보하여 명단을 보고했다. 요원들은 그것으로 당일 상황을 일단락 지었다.

  미 대사관으로 확인되지 않은 신원미상의 VIP 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들어갔다는 첩보가 경찰청 대외정보팀으로 보고되었다. 경찰청 대외정보팀 정민우 팀장은 일단 외교부로 전화해 보았다. 혹시 미국에서 방문하기로 된 미 정부의 고위직 VIP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외교부 측은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정 팀장은 미확인 첩보가 무엇인지 답답했다. 이런 첩보는 비일비재했고 항상 그들을 괴롭혔다. 그렇다고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게 그들의 일이다. 정보 분야 업무는 가슴보다 머리가 차가워야 감당할 수 있고 순발력이 빨라야 한다.
  정 팀장이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사무실을 나왔다. 복도 끝 흡연실로 향하고 있을 때 휴대폰 진동음이 느껴졌다. 그가 흡연실에 들어서며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박일호 과장입니다.”
“어, 그래”
“미 대사관 관련 건 있지 않습니까?”
“뭐 잡히는 거 있어?”
“확실한 건 아닌데요. 뭔가 촉이 이상해 유럽 쪽에서 들어온 항공사 입국자 명단까지 추가로 모두 확인해 봤거든요.”
“그런데?”
“루프트한자 항공편 입국자 명단에 미국인 John Edward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John Edward?”
“혹시나 하고 미국 쪽 VIP급 요인 검색자료를 대조해 보니까 미 하원의원 이름하고 똑같더라고요.” 
“미 하원의원?”
“예, 민주당 소속이고요. 현재 하원 외교위원장으로 검색자료에 뜹니다. 
“박 과장이 직접 확인한 거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뭔가 있는데…” 
“그래서 보고하는 겁니다.” 
“알았어, 박 과장.”
정 팀장이 전화를 끊으려 하자 박 과장은 추가로 상황을 보고할 게 있다며 다급하게 ‘팀장님!, 팀장님!,’하고 불렀다.
“뭐 더 보고 할 사항 있어?”
“예, 있습니다.”
“VIP급 인사들은 보통 비즈니스석 이상을 이용하잖아요.”
“응 그래. 맞아.”
“그런데 John 의원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더라고요. 입국수속도 일반인하고 똑같은 절차를 밟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미 대사관 요원들이 이리저리 뛰었던 것 같습니다.” 
“아, 그래, 수고했어. 박 과장! 불금에 소주 한잔하지.”
“예, 불러만 주십시오.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럼 수고하고.”
  퍼즐을 맞추는 건 정민우 팀장 몫이다. 그가 담뱃불을 끄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미 하원 외교위원장 정도면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고도 남을 텐데…, 우리 정부의 고위직 관료나 의원들 같으면 과연 어땠을까? 입국 절차도 일반인과 똑같이 밟았다니 양키들은 뭔가 생각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몇 번이고 ‘하원 외교위원장’이란 단어에 집중하며 미국과 한국 간의 현안으로 떠오르는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먼저 난항을 겪고 있는 한·미 간 방위비 분담 문제가 떠올랐다. 미 대선과 맞물려 주한 미군 철수 문제나 북한 핵 문제도 있고, 샤드 문제나 쿼드 문제도 있다. 
  만약 이런 문제와 관련 있다면 관련 부처 간의 모종의 정보가 사전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전에 통보받은 정보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어떤 현안이 있는 걸까? 갑자기 VIP가 왜 서울에 왔을까? 생각할수록 난해한 퍼즐이었다. 
  어쨌든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했다. 정 팀장은 일단 먼저 구두보고를 하는 게 낫다 싶었다. 그가 정보국장실 비서에게 인터폰으로 확인했다. 비서가 자리에 있다고 대답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보국장실로 올라갔다.
“오~ 정 팀장! 어서 와. 이리 앉지.”          
“예, 국장님!”
“표정 보니 골치 아픈 게 있나 보군 그래.”
“어떻게 아셨습니까?”“이 사람아, 우린 눈빛으로 일하잖아.”
“국장님이야 산전수전 다 겪으셨으니 그럴만하시죠.”
“답답한 게 뭔지 말해봐.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지금 서울에 와 있습니다.”
“미 하원 외교위원장?”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데 영 감 잡히는 게 없어서 구두보고부터 드리고 국장님께 상의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올라왔습니다.” 
“갑자기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서울에 나타났다. 물론 외교부도 알아봤겠지?”
“그쪽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 나하고 청장실로 올라가지.”

  북악산 기슭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 경내도 적막감이 감돌았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중추신경인 청와대 비서동 건물은 언제나 분주한 모습이다. 민정수석이 빠른 걸음으로 비서실장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서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회의용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긴급 보고 사항이 뭔가요?”
“방금 경찰청에서 올라온 긴급 보고 사항인데 지금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서울에 와 있답니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요?”
“외교부에선 보고가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경찰청에서도 외교부에 확인해 봤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답니다.”
“미 대사관 쪽은?”
“미 대사관에 연락해 봤더니 확인해 줄 수 없답니다.”
“그럼,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서울에 온 게 확실하군요.” 
“우선, 집무실로 저와 같이 올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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