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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18)

by 훈 작가 2023. 8. 1.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그림자

 

최정수 : 안영재 씨! 피해 현장에서 조치도 안 하고 왜 도주했어?

안영재 : .

최정수 : 뺑소니는 구속수사 원칙인 거 모를 리 없을 텐데, 현장을 방치하고 도주했다는 사실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얘기지. 왜 그랬습니까?

안영재 : .

최정수 : 왜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해?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이건가?

안영재 : .

최정수 : 안영재 씨! 안 잡힐 줄 알았습니까? 요즈음은 CCTV가 거미줄처럼 쫘~악 깔려 있어서 웬만한 뺑소니 사고는 100% 검거된다는 건 상식이에요. 그 정도는 아실 텐데. 뛰어봤자 벼룩이란 말입니다. 그나저나 범행동기가 뭡니까? 용의주도하게 대포차를 범행에 이용한 다음 버리고, 미리 계획한 장소로 이동해서 당신 승용차를 이용해 도주한 걸 보면 나름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은데.

안영재 : .

최정수 : (윽박지르듯) 피해자가 누군지 알아요. 미국인이에요. 미국인

안영재 : (무의식적으로) 전 미국 사람이란 얘기는 못 들었는데.

최정수 : 듣지 못했다고? 방금 듣지 못했다고 했지? 누구한테? 누구한테 범행을 지시받은 거야. 빨리 불어. 우리 피차 시간 끌지 말자고. 피곤하게 해 봤자 나나 당신이나 좋을 거 하나 없어. 그러니까 어서 불어.”

안영재 : (속으로 아차 싶었다는 표정으로 말을 바꾼다) 저 그런 말 안 했어요. 하지 않았다고요.

최정수 : 안영재 씨! (CCTV를 가리키며) 저기를 보세요. 지금 조사실에서 하는 모든 조사과정을 동시에 녹화하고 녹음도 하고 있다고.

안영재 : .

최정수 : 일반 교통사고 같으면 우리가 여기서 조사 안 해.

안영재 : .

최정수 : 안영재 씨! 범행 누구한테 사주받았습니까?

안영재 : .

최정수 : 혹시 몰라서 검찰에 허가받아 당신 계좌를 살펴보니 최근에 양무진이란 이름으로 뭉칫돈이 입금되어 있던데. 양무진이 누구예요?

안영재 : .

최정수 : 물론 의리상 곤란하시겠지. 분명한 건 피해자와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데 서울에서 서산 촌구석까지 내려와 범행한 것 보면 사건의 실체가 대충 그려지는데. 게다가 피해자가 요즘 언론에 관심을 받는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소송 당사자란 말이야. 아마 범행을 사주받았을 때는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될 테니 별거 아니란 말을 들었겠지. 잠시 빵에 들어갔다 나올 거로 생각했을 거야. 천만의 말씀이야, 그렇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안영재 : .

최정수 : 안영재 씨! 이 사건 단순 뺑소니 사고 아니야, 살인미수야. 알고 있어?

안영재 :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 제가요?

최정수 : 블랙박스 영상 보여드릴까? CCTV 사고 당시 영상도 있어. 상황을 보여 줘야 인정할 거야. 자꾸 순진한 척하는데, 조사에 협조 안 하면 당신이 몽땅 뒤집어쓰는 거 알지. 살인미수면 아마 적어도 3년은 살아야 해

안영재 : , 3년이 나요? 

최정수: 당신 노조 운동 당시 집시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처벌받은 전과도 있고, 그 후로 해고 노동자로 전전하다 직장에서 저지른 폭력 전과도 2건이나 있네, 당신 가정 형편도 어려운 거 우리도 잘 알아. 가급적 우리도 당신을 도와주고 싶은데, 그럼, 뭐라도 정보를 주고 도와달라고 해야 하잖아, 안 그래?

안영재 : .

최정수 : 협조해 주지 않으면 당신만 불리해. 당신 빵에 들어가면 홀어머니는 어떻게 할 거야?

안영재 : 최 형사님!

최정수 : 그래, 말해봐.

안영재 : (불쌍한 표정으로) ~.

최정수 : 그래, 털어놔야 맘이 편해.

안영재 : 살인미수 말고 일반 교통사고로 처리해 주시면 안 될까요?

최정수 : 그간 어떻게 협조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어. 협조해 주면 조서 꾸며 검찰에 넘길 때 정상참작이 되도록 할 수 있지. 그러니까 혼자 다 뒤집어쓰지 말고 털어놓으라고. 그래야 우리도 생각해 볼 거 아냐.

안영재 : 누가 시켰는지 말하면 살인미수 혐의는 빼 줄 수 있나요?

최정수 : 얘기했잖아, 정상참작 해주겠다고. 누구야 범행을 사주한 장본인이?

안영재 : 양무진이요. 그런데 미국 사람이란 말은 없었어요.

최정수 : 양무진? 양무진이 누구야, 뭐 하는 사람이지?

안영재 :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최정수 : 그러면 어떻게 만났어?

안영재 : 아는 선배를 통해 소개받았어요.

최정수 : 어디서?

안영재 : 영등포역 근처요.

최정수 : 그렇게 대충대충 말하지 말고 알아듣게 얘기해야지.

안영재 : 상호는 기억나지 않고요. 단란주점이었어요.

최정수 : 위치가 어딘지 약도를 그릴 수 있지?

안영재 : .

최정수 : (볼펜과 종이를 주며) 약도 한 번 그려 봐.

안 영재가 약도를 그려서 최정수 형사에게 건넸다. 그가 약도를 보며 말했다.

최정수 : 확실하지?

안영재 : 영등포는 제 손바닥이나 다름없어요.

최정수 : 우리가 가서 확인해 볼 거야. 이거 거짓말이면 당신 국물도 없어.

안영재 : 형사님! 허풍 아니요. 저도 빵에 오래 살고 싶진 않아요. 아는 대로 말할 테니까 좀 도와주세요. 연로한 어머님 몸도 좋지 않으시거든요.

최정수 : ! 어머님이 그렇게 걱정되는데 왜 그랬어.

안영재 : 큰돈을 준다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한 거죠.

최정수 : 하긴 모든 사건이 돈 때문에 일어나지.

안영재 : 세상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잖아요

최정수 : 듣고 보니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네.

안영재 : 노 가다 판 막일도 싼 임금 때문에 중국 교포에 밀려서 자리가 없어요.

최정수 형사가 자신의 수첩을 꺼내 안영재 앞으로 내밀었다.

최정수 : 선배라는 사람 이름하고 연락처 여기에 써 봐.

 

남성욱 (010-XXXX-XXXX)

 

최 형사가 수첩에 씌어있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그는 안영재가 안 됐다 싶었다. 그는 해고 근로자로 낙인찍혀 이력서를 내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공사판도 만만치 않았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삶이 궁핍해지다 보니 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최 형사는 어려운 경제 상황이 만든 현실인 것 같아 씁쓸했다.

최 형사는 사건수사 중간보고를 홍재범 과장에게 했다. 그는 보고 당일 오후 범행 사주 혐의를 받는 양무진의 소재 파악을 위해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용의자 안영재가 자백한 내용은 사실이었다. 두 사람이 만났다는 영등포에 있는 단란주점도 들러 그들이 다녀간 행적까지 파악했다.

 

안영재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한 최 형사는 양무진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홍재범 과장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홍재범 과장은 평소와 달리 표정이 좋지 않았다. 최 형사는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과장님! 양무진 검거 차 서울 좀 다녀오겠습니다.”

과장님! 왜 말씀이 없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이봐, 최 형사! 이리 좀 앉아 봐.”

과장님! 서울 다녀오려면 지금 출발해야 해요.”

홍재범 과장이 최 형사 얼굴을 힐끗 한 번 본 후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양무진 검거하는 거 보류해.”

아니, 보류라뇨? 과장님! 이제 막 수사 시작했는데?”

최 형사 그걸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난들 어떻게 하냐? 찍어 누르는데 버틸 재간 있냐? 그냥 피의자 안영재 건만 조서 꾸며 검찰에 넘겨.”

과장님! 정말 일 하라는 겁니까? 말라는 겁니까?”

최 형사 나도 네 맘 알아. 답답한 건 나도 마찬가지야.”

과장님! 이렇게 하면서 월급 받고 살아야 하는 겁니까?”

아무튼, 서울 가는 거 취소하고 안영재 건이나 오후에 결재 올려.”

! 나 이거 참.”

최 형사가 과장 방을 나와 흡연실로 갔다. 담배 하나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럴 땐 왜 경찰이란 직업을 택했는지 후회스럽다. 이번 사건도 뭔가 생각보다 힘이 센 인물이 있는 모양이다. 권력이 개입된 사건은 밀어붙이기 싫지 않다. 알고 있지만 물러서면 힘없는 약자만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된다. 답답한 노릇이다.

때려치우고 싶은데 이젠 그러기도 쉽지 않은 나이다. 그렇다고 모아 놓은 돈도 없다. 싫든 좋든 버티고 다녀야 한다. 어쨌든 공무원 신분이니 퇴직하면 연금으로 살면 된다. 노후를 생각하면 이만한 직업이 없다. 또 돌이켜 보면 경찰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겨우 삼수 끝에 꿈을 이루었다.

세상은 기분대로 살 수 없다. 마누라와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놈을 보면 그만두고 싶은 용기도 나지 않는다. 세상은 거기서 거기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다. 최 형사는 입에 문 담배가 끝까지 탈 때까지 빨고 나서 꽁초를 버렸다.

최 형사는 오후에 결재받으러 2층에 올라갔다. 오전과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졌다. 안영재 건을 일반 교통사고로 다시 조서를 꾸며 결재를 받으라는 것이다. 담당과장에게 규정대로 조서를 꾸몄는데 왜 조서를 다시 작성해 올리라는 것인지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홍 과장은 답변하지 못했다.

최 형사는 기존의 사건 조서를 그대로 파일에 저장하고 다시 조서를 작성했다. 짜증이 났다. 다른 업무도 많은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고집을 부려봤자 시간 낭비다. 빨리 마무리해 검찰에 송치하는 게 속이 편하다. 최 형사는 부랴부랴 다시 결재받기 위해 오후에 과장 방을 찾았다.

과장님! 눈치 없이 굴어 죄송합니다.”

최 형사, 자네가 죄송할 건 없어. 소신껏 밀어주지 못한 내가 미안할 뿐이지.”

과장님!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정년도 얼마 남지 않으셨잖아요. 제가 편히

모셔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 최 형사! 난들 별수 있냐, 막무가내로 위에서 찍어 누르며 그렇게 하라는데. 우리가 민중의 지팡이 인지, 권력의 지팡이 인지 나도 모르겠다.”

과장님도 총경으로 승진하시려면 눈치를 안 볼 수 없죠. 올해는 꼭 승진 턱 내셔야 할 텐데.”

올해에 물먹으면 계급정년에 걸려 내년이 퇴직이야.”

과장님! 힘내세요.”

최 형사! 이거 갈수록 힘들어 못 해 먹겠어.”

그래도 어쩌겠어요. 버티셔야죠.”

그래야 하겠지, 벌어 놓은 돈은 없고, 애들 결혼이다. 대학 등록금이 다 들어갈 돈은 많고, 살림살이는 제자리고, 세상이 왜 이런지, !”

과장님! 사는 게 뭐 있겠습니까? 거기서 거기지.”

자네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이해하게, 최 형사!

알겠습니다. 과장님! 안영재 건 있지 않습니까. 그냥 검찰에 넘기겠지만 왠지 저는 찜찜한 생각이 들거든요.”

나도 알아.”

그래서 이런 사건은 맡고 싶지 않습니다. 화장실에 가 큰일 보고 뒷마무리 안 하고 나오는 것 같으니까요.”

하필이면, 이런 사고가 우리 관할에서 터질 게 뭐냐, 안 그래?”

맞습니다. 과장님!”

최 형사, 저녁때 약속 없으면 소주나 한잔하자.”

, 좋습니다.”

최 형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2층에서 내려왔다. 그가 책상에 결재 서류를 던져 놓고 밖으로 나왔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는 담배를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후~욱하며 허공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김재형입니다.”

, 지애예요. 서산지청.”

그래, 그간 잘 지냈어?”

저야 항상 잘 지내죠. 선배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나도 덕분에 잘 지내지. 그나저나 인사가 늦었네. 지난번 고생 많았어. 서울에 오면 연락해, 한 턱 쏠 테니까.”

가면 꼭 찾아뵐게요.”

다름 아니라 지난번 뺑소니 건 있잖아요.”

, Anna 양 사고.”

, 맞아요.”

수사 상황 진행된 것 좀 있어?”

, 그런데 경찰에서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해 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건지 최정수 형사에게 알아봤더니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와 하는 수 없이 조서를 변경해 결재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불만이 가득하던데요.”

그럼, 부탁 좀 하나 할까?”

말씀하세요.”

그럼, 최 형사가 본래 작성했던 사건 조서 원본 파일하고 경찰에서 서산지청으로 넘긴 사건 파일 좀 이메일로 보내줘.”

그거야 어렵지 않죠.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래, 부탁해. 수고하고.”

 

김재형 변호사는 두 파일을 비교해 보았다. 살인미수 혐의에 관한 내용과 범행을 배후에서 사주한 인물로 추정되는 양무진 인적 사항과 전화번호 등 주요 내용이 빠져 있었다. 핵심이 되는 내용을 누락시킨 것이다. 분명 윗선에서 권력이 개입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만했다. 거기에 피의자 계좌로 거액이 입금된 사실을 보니 왜 그렇게 처리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피의자에 진술 내용도 최 형사가 작성한 원본 파일과 일부 내용이 피의자 측에게 유리하게 문구가 변경된 부분도 있었다. 담당 형사인 최 형사가 의도적으로 내용을 바꾼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적당히 처리하라는 윗선의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나 의심이 되었다.

김 변호사는 밖에 있는 박 사무장을 불러 메모지를 전달했다. 그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봐 달라고 말하자 사무장이 알았다며 나갔다. 그가 나가자 우선 재판부에 원고인 Anna 교통사고 내용을 유선으로 설명한 뒤 공식적으로 공판기일을 연기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제출하겠다고 통화했다.

그녀는 Anna 사건 자체가 정치권으로 확산하여 파장이 커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소송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상황을 분석해 보았다. 현 정권과 전 정권의 힘겨루기 양상이 전개되면서 전임 대통령의 영향력이 약화하거나 흔들릴 가능성이 커 보였다.

청와대로서는 그만큼 전임 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그간 눈치를 보며 Anna 양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며 바람막이 역할을 해 왔던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를 이용해 청와대의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전임 대통령의 힘을 빼는데 역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Anna 2심 재판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여당과 그의 눈치를 보는 일도 줄어들지 모른다. 그간 국민에게 사법부는 정치적 독립을 의심받았다. 사법부 처지에서도 이 기회에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우며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김 변호사는 앞으로 전개될 소송 상황이 1심보다 나쁘지 않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한편으로 Anna 재판이 너무 정치적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동시에 현 정치 상황이 진영 논리에 갇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 같아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법원 청사 건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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