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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20)

by 훈 작가 2023. 8. 7.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의혹
  
  H 신문 1면에 ‘Anna 양 교통사고 은폐 의혹’이란 기사가 나갔다. 살인미수 성격의 사건을 경찰이 축소했다는 내용이다. 범행을 사주한 의혹에 대해서 수사조차 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기자는 제기했다.
  전임 대통령 변호인단은 강하게 반발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처럼 보도한 H 신문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들은 보도 내용을 가짜뉴스라 부인하며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한쪽에서는 보도와 관련하여 사실관계 파악에 나서느라 당혹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수사당국은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경찰 수뇌부는 실무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며 입단속에 나섰다. 여당과 정부 쪽도 무책임한 추측성 보도라며 언론사를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H 신문사는 특종에 버금가는 보도로 분위기가 한층 고무되어 있었다. 반면 편집국은 여권지지 성향의 독자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느라 시달렸다. 신문사 사장과 편집국장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곤욕을 치렀다. 심지어 여당 고위관계자로부터 아군과 적군도 구분하지 못하느냐며 심한 질책을 들어야 했다.

  김재형 변호사는 차수정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통화가 끝나자 노크 소리와 함께 박 사무장이 들어왔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지난번 메모로 알아보라고 한 ‘남성욱’ 있잖아요.”
“예"

"알아보셨나요?” 
“남성욱은 양무진이 회장으로 있는 인터넷 카페 운영 조직 영등포와 구로지역 책임자입니다. 그가 자주 가는 영등포 단란주점 아가씨를 만나 확인한 사실입니다.”
“아, 그래요.”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파랑새 모임 명동찬 후원회장이 연루된 정황이 있다는 점입니다.”
“파랑새 모임이라면 여당을 지원하는 외곽단체잖아요?”
“예, 그렇습니다. 아가씨 말에 따르면 항상 혼자서 오던 남성욱이 어느 날 낯선 오십 대 남자와 같이 왔는데 그 사람이 명동찬이었답니다.” 
“아가씨가 명 회장인 걸 어떻게 알죠?”
“두 사람이 단란주점에 다녀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성욱이 혼자서 술집에 왔더랍니다. 그래서 전에 같이 오신 분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가 양 회장이 자신을 명동찬 회장에게 소개해 주었는데 명 회장이 자신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그날 같이 왔었다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요.”
“남성욱이 명 회장을 처음 만나던 날 그가 어떤 아가씨 사진과 승용차 사진을 주면서 뭔가 처리해 달라는 걸 봤다는 거예요.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남성욱이 어떤 젊은 남자와 같이 왔는데 그를‘안 형!’이라 호칭하며 명 회장에게 받은 사진 몇 장을 주면서 일이 잘 처리되면 1억 원이라는 큰돈을 주겠다고 얘기하기에 뭔가 일을 꾸민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아가씨는 어떻게 그걸 알게 된 거죠?”
“평소에도 남성욱이 술집에 자주 왔는데, 아가씨 말로는 남성욱이 자신을 좋아했답니다. 이를 눈치챈 마담이 어느 날 자신을 부르더니 A급 단골손님이니 네가 남성욱을 맡아 특별히 챙기라 하더래요. 마담이 하는 얘기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서 그가 가게에 오면 무조건 다른 손님은 젖혀두고 챙기게 되었답니다.” 
“사무장님! 이래서 남자들은 술과 여자를 조심해야 하는가 봐요. 안 그래요?”
“변호사님! 왜 이러세요.”
“아! 이런, 농담이에요. 농담.”        
“그 뒤, 안영재와 남성욱이 돈 문제로 싸우는 걸 봤다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남성욱이 전화를 하더니 ‘양 회장!” 어떻게 된 거냐며 큰소리를 치며 통화를 했다는 겁니다. 그가 전화를 끊으며 이번 주 내로 “양무진”이란 이름으로 통장에 돈이 꽂힐 테니 걱정하지 붙들어 매고 술이나 마시자며 안영재를 달랬다던데요.” 
“그래요?”
“얼마 뒤 두 사람이 다시 왔는데 그 전과 달리 안영재가 남성욱한테 지부장님! 하면서 지난번 미안했다면서 술을 샀다는 겁니다. 그날 안영재는 신용카드가 없는지 현금으로 술값을 계산했고 자신도 팁을 두둑하게 받았는데요.”
“그렇다면 안영재가 범행 대가를 받고 나서 남성욱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술을 샀다는 얘기네요.” 
“그런 셈이죠.”

  김재형 변호사는 사무장이 나간 후 생각해 보았다. 수사가 재개될 때 배후 세력은 범행 사실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수사를 맡았던 실무자들에게 부실 수사 책임을 뒤집어씌워 희생양을 만들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최 형사가 걱정되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사실 최정수 형사의 도움이 컸다. 그가 아니었다면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최 형사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사건을 풀어야겠다고 김재형 변호사는 생각했다. 
  의혹의 껍질을 벗기는 첫 단추는 잘 끼운 셈이다. 김재형 변호사는 두 번째 단추를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수사당국을 추궁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가 전임 대통령임을 생각하면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분석하여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직은 사건 배후의 실체가 명 회장이 정점인지 아니면 몸통이 더 있는지 모른다. 명 회장을 심판대에 내세우는 건 이른 감이 있다. 그가 어떤 권력의 뒤에 숨어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김재형 변호사는 분명 명 회장도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진 정치적 인물일 거로 생각했다. 
  사건 발생 초기 김 변호사가 예견했던 것이 맞아떨어져 갔다. 사고는 단순 뺑소니 사고가 아니었다. Anna를 죽이려고 한 계획된 범행이다. 여기서 범행 배후를 더 파악하기 위해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잠시 숨 고르기를 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결정이 쉽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럴 때는 한 박자 쉬었다가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잠시 멍 때리는 시간을 갖고 싶어 창밖을 쳐다보았다. 파란 봄 하늘에 Anna 얼굴이 다가왔다.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한국인의 피를 갖고 미국인이 되었을까? 그녀의 삶이 도대체 무슨 운명이기에 이렇게 된 것일까?
  Anna를 떠올리며 운명(運命)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운명은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신의 영역이다. Anna의 교통사고는 운명이다. 어쩌면 이 사고가 Anna에게는 베토벤의‘운명 교향곡’처럼 청력상실이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빛나는 삶의 여정을 걸으라는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김재형 변호사가 돌아서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 놓인 낡은 법전과 형사소송법 책 아래 눌려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김난도 교수가 쓴 책이었다. 그녀가 법전을 들고 책을 꺼내 책장을 몇 장 넘기며 훑어보며 병실 침대에 누워 있을 Anna 얼굴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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