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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21)

by 훈 작가 2023. 8. 10.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경청(傾聽)
 
  김재형 변호사가 문을 열고 병실에 들어섰다. Susan이 그녀를 보자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어머님은 이제 아프신 데 없으시죠?”
“덕분에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 다행이세요.”
“하늘이 우리 모녀를 지켜주신 모양입니다.”
  김 변호사는 Anna가 누워있는 침대를 쳐다보았다. Anna와 눈빛이 마주치자 김 변호사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녀가 Anna에게 다가가 말없이 손을 잡았다. Anna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Anna가 일어나려 하자 변호사가 괜찮다며 그대로 있으라고 말했다.
“Anna 씨! 어려움을 극복해야 별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거예요. 딴생각하지 마시고 건강을 되찾는 것만 집중하세요. 아셨죠?”
Anna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술만 떨며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겨우 힘을 내어 울먹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변호사님! 저 절대 꺾이지 않습니다.”
“Anna 씨! 그래야죠. 저도 기다릴게요.”
“변호사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요. Anna 씨!” 
김재형 변호사가 핸드백에서 책 한 권을 꺼내 Anna에게 주었다.
“Anna 씨! 이 책 한 번 읽어 보세요. 전에 읽었는데 책 제목이 왠지 Anna 씨에게 딱 어울리는 거 같아 가져왔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었다
“제목만 봐도 읽어 보고 싶은 책이네요.” 
“Anna 씨는 제가 보기엔 아직도 청춘이에요. 누구나 한 때 홍역을 치르듯 마음의 몸살을 앓아요. Anna 씨는 다른 사람보다 좀 심하게 앓는다고 생각하세요.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지나고 보면 스스로 얼마나 성숙하여 있는지 알게 될 거예요. 이렇게 말한다고 제가 Anna 씨를 어린애 취급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우리 서로 오해하기 없기~. 아셨죠?”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그럼, 저는 어머님과 얘기 좀 하고 가 볼게요. 몸조리 잘하시고요.”
“변호사님! 안녕히 가세요.”
김 변호사가 Anna의 손을 놓았다. 그녀가 옆에 서 있는 Susan을 보고 말했다.
“어머님! 저하고 잠깐 휴게실로 가서 커피 한잔할까요?”
  Susan이 김 변호사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이 휴게실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았다. 커피를 마시며 김 변호사는 그간의 교통사고와 관련하여 파악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당분간 관련 내용을 Anna에게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도 덧붙여 말했다. 그녀의 설명이 끝나자 Susan이 망설이던 이야기를 꺼냈다.
“변호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어머님!”
“저~ 제 남편이 서울에 와 있습니다. 한 번 같이 뵈었으면 하는데. 변호사님 생각은 어떠신지…?”
“Anna 문제라면 언제라도 시간을 낼 게요, 어머님!”
“그럼, 남편과 상의해서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세요.”
Susan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김 변호사를 배웅했다. 김 변호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볍게 인사를 하자 바로 문이 닫혔다. Susan이 돌아서 병실 쪽으로 걸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여보! 저예요. 통화 가능하세요?”
“난 괜찮아요.”
“방금 Anna 변호사가 병원에 다녀갔거든요. 그래서 당신 얘기를 했더니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럼, 내일 오후, 대사관저에서 만났으면 하는데…”
“대사관저요?”
“아무래도 다른 장소보다 조용하고 정보기관의 시선을 피할 수 있으니 난 그게 좋을 것 같은데.”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여보! 그럼 그렇게 전할게요.”

  김재형 변호사와 Susan을 태운 대사관 전용차가 강남삼성병원을 출발했다. 김 변호사는 외교관 차량임을 알아보고 놀란 표정으로 Susan에게 물었다.
“어머니! Anna 아빠가 외교관이신 모양이죠?”
“아닙니다. 공무원입니다.”
“아니, 공무원 신분이신데 대사관저에 머무르시는 거예요?”
“사실은 Anna 아빠가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세요.”
“예? 미 하-원-외-교-위-원-장-이-시-라-고-요.”
김재형 변호사는 깜짝 놀랐다. 순간 작은 충격이 그녀의 머리를 흔들었다. Anna가 미 하원 외교위원장의 딸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히는 느낌이 들었다. Anna 양 사건이 한국과 미국 간의 미묘한 외교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사건의 파문이 어떻게 전개될지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어머님!”
“예, 변호사님!” 
“Anna 아빠가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란 사실을 왜 저에게 안 하신 거죠?”
“변호사님! 무-슨-뜻-인-지?”
“Anna 아빠 신분이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면 상황을 좀 더 쉽게 해결하는 쪽으로 도움이 되었을 텐데…”
“변호사님 말씀은 저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Anna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지, 부모의 신분이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애가 절대 아닙니다. 그런 아이라 저도 마냥 지켜만 보고 선 듯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이 문제를 혼자 감당하겠다니…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Anna 씨가 정말 대단하네요.”
“제 남편이나 저나 감당하기 어려운 애죠. 아마 아빠가 자기 일에 나서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다른 건 고분고분한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성불가침이라고 여기는 그런 애입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아빠가 미 하원 외교위원장인데… 어머님! 그럼, 제가 Anna 아빠에게 어떻게 조언해드려야 할까요?”
“변호사님께서 가장 객관적인 관점으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머님! 어찌 됐든 따님 문제는 한국과 미국 간의 인권이나 외교적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이 매우 크거든요. 제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물밑에서 청와대와 접촉하여 전임 대통령의 사과를 끌어내 타협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가 의원님께 그렇게 말씀을 드려도 좋을지 모르겠네요.”
“저도 변호사님 의견에 동의해요. 말씀하시면 그대로 통역해 전달하겠습니다.”         
  잘 꾸며진 정원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이 관저 직원 안내로 접견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 여직원이 음료 두 잔을 들고 들어와 탁자에 올려놓고 나갔다. 김재형 변호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커피 향이 짙은 것 같다고  Susan에게 말했다. 그때 정장 차림의 신사가 웃으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김재형 변호사가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John Edward 의원이 서투른 억양으로 권하며 같이 앉았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와이프 덕분에 조-금-합-니-다.”
한국말은 거기까지였다. Susan이 능숙하게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며 통역했다. 먼저 Anna 소송에 대해 전반적인 개요를 김재형 변호사가 설명했다. 이어 Anna 교통사고에 관한 내용도 언급했다. John Edward 표정이 어두워졌다.
  김 변호사는 2심 재판도 승소확률이 낮을 것이라 말했다. 그 이유를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피의사실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 부족 때문이라 설명했다. 피의사실 정황증거는 재판부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여기에 전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Anna의 행동이 무모해 보여 처음부터 소송을 만류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 사건을 맡은 이유는 Anna의 강한 신념과 용기 때문이라고 했다. Anna는 진실을 이길 수 있는 권력은 없고,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려는 의지가 확고해 자신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싸움이 더 어려워지고 복잡한 상황으로 번지고 있는 이유도 언급했다. Anna가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며 기자회견을 한 것이 전임 대통령의 정치적 자존심을 자극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테러 성격에 가까운 교통사고를 사주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고 이후 세간에 무관심했던 Anna 양 재판이 언론에 주목받기 시작했고, 지금은 정치적인 문제, 더 나아가 한·미 간의 외교 문제로 크게 확대될 개연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John Edward 의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 변호사의 설명에 침묵으로 동의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이 한국 내 권력 지형을 이루고 있는 전임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간의 파워게임의 성격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Anna 사건이 시작은 작은 불씨에 불과했지만, 점점 더 불길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전임 대통령 간의 권력관계도 빠트리지 않고 설명했다. 
“단언컨대 한국 여성 같으면 Anna처럼 절대 나서지 못합니다.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는 순간 주홍 글씨가 되거든요. 한국 여성들은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죠.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Anna는 달랐어요. 모든 것을 각오하겠다며 싸우겠다는데 같은 여자로서 외면할 수 없었어요. 인권변호사로서 양심에 죄를 짓는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변호사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Anna 관련 파일입니다. 내용을 보시면 알겠지만 사건 배후에 모종의 음모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검사초임 시절 근무했던 서산지청 후배 검사를 통해 입수한 내용입니다. 수사가 축소되어 검찰로 이첩되었죠. 범행을 사주한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를 수사조차 하지 않았고요. 
  피의자 통장으로 거액이 입금된 자료도 참고하시고요. 관련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 꼬리 자르기식 수사가 진행될 게 뻔합니다. 그럼, 누군가 책임을 물어 희생양을 삼겠죠. 죄 없는 실무 수사관들만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받을 거고요.”
  김재형 변호사가 Susan을 보았다. 그녀가 대사관저로 오는 차 안에서 나누었던 얘기를 꺼내야겠다고 Susan에게 말했다. Susan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 변호사가 대화 내용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Susan은 그대로 통역했다. John Edward 의원도 진지한 표정으로 끝까지 경청했다.
“여보! 나름 통역한다고 했는데 부족한 건 없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니야, 당신 정말 수고 많았어.”
“뭘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John Edward 의원이 마지막으로 김재형 변호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준비한 선물을 주며 말했다. 
“변호사님! 마음에 들지 모르겠는데, 성의를 봐서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이러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선물까지.”
“캘리포니아산 와인입니다. 와인 하면 주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와인이 좋은 줄 알고 있는데 미국산 와인도 이에 못지않거든요.”
옆에서 듣고 있는 Susan이 통역 과정에서 말을 잘랐다. 남편이 와인이야기를 꺼내면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변호사님! 남편은 와인전문가입니다. 집안이 캘리포니아에서 포도주 와이너리(winery)와 포도 농장을 운영하거든요. 얘기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 그러세요.”
“여보! 변호사님이 와인 고맙데요.” 

  Susan과 김재형 변호사가 다시 강남 삼성병원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가 저녁 무렵이었다. Susan이 저녁이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죄송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괜찮다며 어서 병실에 올라가 보시라며 말했다. 그녀가 승용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가자 Susan은 발걸음을 돌려 병실로 올라왔다. 
“언니! 환자를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둬도 되는 거야.”
은영이 한 마디 쏘아붙이듯 말했다.
 Anna가 그러던데 김 변호사와 같이 대사관저에 갔다고….”
“응, 그랬어.”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아니야, 그런 거 없어. 형부가 Anna 변호사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기에 김 변호사에게 연락했지. 그런데 그게 갑자기 약속이 잡혀 갔다 온 거야.”
“난 또 무슨 일이 있는가 했지.”
“얘는 무슨 일이…” 
“Anna는 많이 회복된 것 같은데, 언제 퇴원해?”
“후유증 여부 정밀검사만 다시 해 보고, 이상 없으면 바로 퇴원해도 된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환자 식사 나왔습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위생복 차림의 중년의 여직원이 식사를 들고 들어왔다.
“엄마! 식사하셔야지.”
“그래, 먼저 먹어.”
“은영아! 저녁은 어떻게 할래?”
“난 집에 가서 애들하고 같이 먹어야지.”
“Anna야! 엄마 구내식당에서 식사 좀 하고 올게.”
“Anna야! 몸조리 잘해 이모 다음에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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