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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19)

by 훈 작가 2023. 8. 4.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특종기사
  
“차 기자님! 김재형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한번 만나고 싶은데 어떠세요?”
“전 괜찮아요.”
“그럼, 우리 만나던  P 호텔 커피숍 있죠? 거기서 3시쯤 뵐까요.”
“예, 그렇게 할게요.”
  차수정 기자는 전에 부탁한 Anna 양 인터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간 Anna 양 취재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Anna 양이 사고 이후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 변호사와는 신입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온 사이다. 두 사람은 한국 사회 여성 인권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분을 쌓아 왔다. 김 변호사가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생각이나 가치관이 비슷했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변호사가 사직서를 던지고 나오던 날 소주 한 잔 나누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에 울분을 토했던 날 두 사람은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격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아마 그때부터 서로 마음이 통했던 것 같다.

  차 수정 기자가 법원 기자실을 나왔다. 그녀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호텔 커피숍으로 가는 게 낫다 싶었다. 약속 장소까지 가까운 거리지만 그래도 연하인 자신이 먼저 가 기다리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강남 성모병원 교차로에서 차량 정체가 심했다. 상습적인 정체 구간이라서 달리 방법이 없다. 
  그녀가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받았던 것이 교통체증이었다. 대학 시절 약속 시간에 종종 늦곤 했었다. 예상보다 항상 시간이 더 걸렸다. 어느 순간 친구들이 지각 공주라 불렀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생각을 바꾸었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조마조마하느니 차라리 조금 일찍 가는 게 편했다. 
  차 기자가 커피숍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 시간 10분 전이었다. 자신이 일찍 왔나 싶었는데 김 변호사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변호사님! 왜 이리 일찍 오셨어요. 저도 빨리 온다고 왔는데.” 
“오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저는 항상 언니처럼 대하고 싶은데 변호사님은 그게 안 되시나 봐요.”
“차 기자님 전 꼰대 되기 싫거든요. 어쨌든 차 기자님 그 마음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잖아요.”       
김재형 변호사가 지나가는 여직원을 부르며 말했다.
“차 기자님! 뭐 하실래요?” 
“저, 커피요. 블랙으로 부탁해요.”
“저는 그냥 커피로 주세요.”
여종업원이 주문받고 지나갔다. 차 기자는 Anna 양 인터뷰 얘기를 꺼내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김 변호사가 서류 봉투를 꺼내 차 기자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한 번 읽어 보세요. Anna 양 사건 피의자 안 영재에게 범행자금을 송금한 인물이에요. 현재 그가 여당지지 인터넷 카페를 총괄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차 기자는 자신의 기대가 빗나가자 속으로 조금 실망했다. 어디까지나 그녀 욕심이었다. 그녀가 안 그런 척하며 봉투 속에 든 A4용지 4장을 꺼내어 읽어 내려갔다. 그 사이 여종업원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갔다. 차 기자가 A4용지를 다 읽자 김 변호사가 말했다. 
“특종은 아니지만 기삿거리로 충분하죠?” 
“물론이죠. 변호사님! 왜 저를 만나자고 하셨는지 알겠습니다. 기사 내보내는 건  걱정하지 마세요. 어쩌면 진짜 특종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기자회견을 할까 생각해 봤는데, 그보다 언론이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는 것이 낫겠다 싶어 차 기자님을 보자고 한 거예요.” 
“근데 요즘 여당에서 언론을 보는 시각이 너무 좋지 않아요. 자신들에게 불편한 기사가 나가면 마치 잡아먹을 듯 공격하잖아요. 과연 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하려는 사람들인지 다시 보게 되거든요.”
“그게 정치인들의 본성이라 생각하세요. 그거 신경 쓰다 보면 스트레스받아 새치만 늘어요.”
“맞아요. 변호사님!”
“차 기자님! 언론은 Anna 양 사건은 어떻게 보고 있죠?”
“전임 대통령 작품 같은데 자꾸 권력으로 이를 막으려 한다고 보는 거죠.”
“그럼, 차 기자님도 이 기사에 대해 각오는 되어 있다는 뜻이죠?”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너무 친여 성향 신문이라고 욕도 많이 먹고 있는데 이 기회에 독자들의 시각이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가 있으면 좋겠어요.”
“아마 기사가 나가면 신문사 홈페이지에 난리가 나겠죠. 편집국도 항의 전화로 당분간 시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국장님은 여기저기 불려 가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를 게 너무 뻔히 보이거든요.” 
“그런 뜻에서 오늘 커피는 제가 쏠게요.”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좋은 기삿거리 주셨으니까.”
“차 기자님도 결혼하려면 월급 꼬박꼬박 모아서 결혼자금 준비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서울 아파트값이 장난 아닌데, 오죽하면 ‘영끌’이라는 말도 나오고 ‘이생망’이라는 말까지 나오겠어요.” 
“하긴 그래요. 변호사님! 정부가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큰소리쳤는데 반대로 아파트값을 올리는 데 역대급 선수로 등극한 셈이 되었어요. 눈만 뜨면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으니 이제 2030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은 정말 꿈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날이면 날마다 집값 잡는다고 대책을 내놓는 데 반대로 집값은 하루가 멀다고 미친 듯이 아파트값은 뛰고 있으니 정말 한숨만 나와요. 저도 전세 사는 데 주인이 월세로 전환할까 봐 조마조마해요. 아직 1년이 남긴 했지만.”
“변호사님도 아직 집 없는 서민이셨어요.”
“변호사라고 다 돈 잘 버는 건 아니잖아요. 지난번 남편이 대출받아 사자고 할 때 샀어야 했는데….”
“사실 저도 정부가 부동산정책은 자신 있다고 해서 기대가 컸거든요.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실력도 없으면서 선량한 서민들을 기만한 것 같아요.”
“나도 총선 때 여당 찍었는데 지금은 내 손을 자르고 싶은 심정이에요.”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하나둘 아니에요.”
“정부가 너무 도덕적 우월감에 서로 잡혀 적폐 청산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민생문제는 등한시 한 점도 있다고 봐야죠.”
“그런 점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정부가 출발할 때 일자리 창출을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언급했는데 어느 날 그 얘기가 쏙 들어가 버렸다고 젊은이들이 불만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주변에 취준생 자식을 둔 엄마들 얘기를 들어보니 애들이 이력서를 수십 군데 접수해도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이 한두 곳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나마 합격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고 취직 못 한 자식들을 바라보는 엄마들 마음이 어떻겠어요.        
“맞아요. 이것저것 심각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정부 여당 성토장이 된 것 같네요.”
“호호호 정말 그러네요.”
“어쨌든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차 기자님!”
“아닙니다. 변호사님!”
“자, 커피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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