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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22)

by 훈 작가 2023. 8. 13.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대책 회의
 
“긴급현안이라도 있습니까?”
“우선 보고부터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올라왔습니다.”
“두 분이 같이 오신 것을 보니 저도 궁금하군요.”
대통령이 자리를 권하며 앉았다. 비서실장과 민정수석도 뒤이어 의자에 앉았다. 대통령이 차라도 한잔할 건지 물어보자 방금 마시고 왔다며 사양했다.
“내용이 뭐죠?”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서울에 와 있습니다.” 
“사전에 올라온 보고내용에는 그런 게 없었잖습니까?”
“그래서 올라왔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온 목적이 뭔지 모른다는 얘기네요?”
“예,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미 대사관 직원들이 인천공항에서 누군가 기다리다 허탕하고 돌아가는 일이 있었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우리 요원들이 입국자를 전수 확인하는 과정에서 John Edward라는 이름을 미국 쪽 VIP 색인(索引)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입국도 VIP 통로를 이용하지 않고 일반인들과 똑같이 입국 절차를 밟아 들어오다 보니 확인 자체가 쉽지 않았나 봅니다. 더구나 비행기 좌석도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고 하니 인지하기가 더더욱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럼, 현재로선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미 대사관 쪽은 연락해 봤습니까?”
“노코멘트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비서실장이 오늘 저녁 대책 회의를 주재하세요.”
“참석 범위는 어떻게 할까요?”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으로 하고요. 예상되는 현안을 올려놓고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그가 왜 왔는지 여러 얘기가 나오게 되죠. 회의 결과를 토대로 시나리오 준비하여 면담 요청에 대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혹시 다른 의견 있나요?”
“최근 현안으로 거론되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준비하면 될 듯싶습니다. 안건은 북한 핵 문제와 사드 배치 문제, 쿼드 문제, 방위비 협상 문제, 한미 FTA 협상 문제로 정하고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우리 의견을 결정해 준비하겠습니다.”
“비서실장 생각도 일리가 있네요.”

  갑작스러운 회의에 참석자들은 긴장했다. 보통은 사전에 시간을 두고 연락이 왔었다. 그런데 오늘은 불과 몇 시간 전에 통보받았다. 회의안건이 뭐길래 비서실장이 직접 연락했을까? 모두가 궁금한 가운데 비서실장이 침묵을 깨고 말을 했다.
“이렇게 갑자기 오시라고 해서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서울에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와 있습니다. 사전에 공식적인 통보를 받은 것도 없습니다. 최근 들어 미 백악관이나 국무부는 물론 미국 조야(朝野)에 예전과 달리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한·미 간 현안마다 미묘한 견해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서울에 와 있다 보니 그가 어떤 현안 때문에 왔는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련하여 대통령께서는 미 하원 위원장 간에 있을지 모르는 면담에 대비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상되는 현안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계부서와 협의해 시나리오를 준비하고자 이렇게 긴급히 오시라고 했습니다. 형식이나 구애받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관련 부처의 의견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외교부에서 먼저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공식적인 방문이 아니면 외교적인 결례를 범해가며 현안을 언급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거론된다면 주한 미군 문제나 사드 배치, 한·미 FTA 개정 요구, 북핵 문제도, 쿼드 문제가 예상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미국의 대북 제재 정책에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하겠죠. 이상입니다.”
국방부 쪽도 의견을 말했다. 장관은 난항을 겪고 있는 방위비 협상 문제와 한미연합훈련 재개 여부에 관한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 하원 외교위원장에 국방 관련 현안을 언급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국정원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원 외교위원장이라면 외교 현안에 매우 밝고 세계정세 흐름을 보는 안목이 남다를 겁니다. 최근 미국 정가에서 한미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중국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것을 매우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죠. 아마 면담이 이루어지면 미국 쪽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청와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통령님 속내를 알고 싶어 할 겁니다. 그게 면담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쿼드 문제도 현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매우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국정원장이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전혀 다른 방향의 얘기이지만 요즘 언론에 집중조명을 받는 사건이 떠오릅니다.”
“사건이라니요?”
“이 자리에서 언급하기는 좀 그런데… Anna 양 성추행 건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건 좀 뜬금없는 얘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게 왜 마음에 걸리시죠?”
“상식적으로는 이 테이블에 올라올 만한 사안이 아니죠. 제가 개인적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국민의 인권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Anna 양 성추행 소송건은 의외로 한국과 미국 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수 있다고 판단되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Anna 양 문제가 외교 문제로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보기에 따라 가능성이 크지는 않죠. 다만 우리가 작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난감하지요. 사실 이 문제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좀 껄끄러운 문제인 건 사실입니다. 권력 공학 측면도 그렇고 전임 대통령과 미묘한 관계도 있으니까요. 저도 전에 대통령님을 모시고 일해 보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는 항상 예기치 못한 사안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데 대부분 사소한 문제라고 지나친 문제가 화근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Anna 양 사건을 사소한 문제로 보지 말라는 뜻이네요?”“최근 Anna 양이 교통사고는 보도를 통해서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사건에 전임 대통령이 개입되었다는 소문이 항간에 파다합니다. 모종의 권력이 작용해 수사가 중단되었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그래서 사실 여부를 비공식적인 경로로 알아봤습니다. 배후에 전임 대통령이 개입되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일부 정황이 사실인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국정원장의 설명이 여기에 이르자 참석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서실장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국정원 보고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던데요.”
“제가 국정원에 부임한 이후로는 정치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일체 보고내용을 빼도록 지시했습니다. 대통령님 업무보고에도 대외 정보와 관련된 업무만 수행하겠다고 했고요. 앞으로 국정원은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더 이상 정치에 휘말리지 않는 국정원을 만들겠다고 대통령님과 약속했습니다. 조직개편도 이에 맞추어 새로 개편되었고요.”
“그러면 Anna 양 사건은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일부 직원들이 아직도 과거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보고서를 올렸기에 직원을 불러 질책하는 과정에 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와대를 염려하는 차원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Anna 양 사건을 잘못 다루면 전임 대통령과 청와대 간의 파워게임으로 번질까 걱정하는 겁니다.”
두 사람 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국가안보실장이 나서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국정원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비서실장님께서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셔서 대통령님께 보고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국정원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비서실장님 전화를 받고 회의에 오기 전 이상하다 싶어 Anna 양 보고서를 다시 확인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더라고요. Anna 양 이름이 Anna Edward입니다. 미 하원 외교위원장 이름이 John Edward이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잖아요. 이름만 보면 부녀관계인데 외모는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입양아로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 제 생각이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제 육감으로는 뭔가 미스터리예요.”
  비서실장 표정이 어두워졌다. 듣고 보니 국정원장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무엇보다 전임 대통령이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마음에 걸렸다. John Edward 하원과 면담이 있을지 없을지 예단할 수 없다.
  밤 깊은 청와대 비서동 건물은 적막감이 들었다. 유일하게 비서실장 집무실만 불이 켜져 있다. 그가 담배 하나를 꺼내 물고 흡연실로 향했다. 허공에 날린 담배 연기가 길게 뻗어나가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화장실에서 양치질하며 세면대 앞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갈수록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 것이 눈에 보였다. 

  비서실장이 아침 일찍 부속실 비서관에게 전화하고 대통령 관저로 올라갔다. 가급적 결과를 빨리 보고하고 싶었다. 부속 비서관의 안내로 비서실장이 거실로 들어왔다. 대통령이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가 비서실장을 맞이했다. 
“이른 아침부터 웬일입니까?”
“어젯밤 회의 결과를 일찍 보고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아니, 긴급한 현안도 아닌데.”
“오늘 일정 확인해 보니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비서실장이 보고서를 대통령 앞쪽으로 밀었다. 보고서를 든 대통령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대통령이 얼굴이 굳어지며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전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Anna 양 소송 때부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사고와 관련된 배후에 관련된 내용은 신빙성이 있는 건가요?”
“윗선의 압력이 있었던 부분까지는 확인했습니다. 다만, 몸통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John 의원이 온 것은 Anna 양 때문이라 이거죠?”
“단언하기 어렵지만 개연성 충분합니다. 의문은 두 사람 관계입니다. 부녀(父女) 관계인지, 입양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목입니다.”
“국정원은 알고도 왜 보고하지 않은 거죠?”
“대통령님의 지시에 따라 정치 분야에서는 손을 뗐다며 관련 내용은 하나도 없고 대외 정보만 올라오고 있습니다.”
“…”
“면담 요청이 오면 어떻게 하실 건지?
“아! 이런 일로 John 의원을 만나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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