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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24)

by 훈 작가 2023. 8. 19.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데이트와 나이트

  해 질 무렵 부부가 H 호텔 19층 라운지에 도착했다. 예약된 테이블에 두 사람이 안내받아 앉았다. 남산이 보이는 창가 쪽이었다. John은 면담 무산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Susan은 좋아하는 메뉴를 알아서 주문했다. John은 아무 말 없이 남산 쪽을 보며 남산타워에 관심을 보였다.
“여보! 저 타워에 올라갈 수 있지?” 
“가 보고 싶으세요?”
“밤에 올라가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아요. 정말 환상적이죠.”
“그럼, 당신이 시간 내서 한번 안내해 주지 그래.”
“당신이 원하면 그래야죠.” 
“당신은 내가 하고 싶다면 항상 OK야. 거절하는 법이 없어.” 
“잘 아시네요. 호호호…”
Susan이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자 John도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 사이 T-Bone 스테이크에 와인이 나왔다. John이 빈티지를 보자 놀라며 말했다.
“와우! <샤토 몬텔레나> 아냐, 당신은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 이러니 내가 당신한테 푹 빠져 눈을 못 뜨는 거라고. 어쨌든 내가 당신하고 결혼한 건 일생일대 최고의 결정이었어. 확실한 건 내가 여자 보는 눈이 있다는 거야.”
“당신, 그 말 미리 준비해 온 거 아니죠?”
“난 당신처럼 치밀하지 못해. 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은 언제든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유권자에게 표 얻으려고 하는 정치적 발언 아니죠?”
“선거 때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자존심 상했던 기분 다 풀리셨죠.” 
“당신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까 대사관저 접견실에서 나올 때 눈치챘어요.” 
“그야말로 당신은 도사군 그래. 하하하”
  <샤토 몬텔레나>는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와인이다. Susan은 남편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특별히 주문한 와인이었다. John의 와인에 관해서는 전문가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주제가 와인이 되었다. 남편은 와인 이야기를 꺼내면 끝이 없다. Susan은 마르고 닳도록 들은 얘기지만 또 귀를 진지한 태도로 들어야 했다.
  John이 와인병을 들었다. 환한 표정으로 Susan에게 먼저 빈티지 보는 법부터 이야기했다. 그가 환한 표정으로 강의하듯 말을 이었다. 그의 표정이 밝다는 것은 그가 Susan을 그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잘 안다. 
  빈티지 보는 방법에 이어 펀트(Punt)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 주었다. 간단한 상식이지만 펀트(Punt)는 와인 병 밑바닥에 움푹 들어간 곳을 말한다. 그곳이 깊이 들어갈수록 좋은 와인이다. 펀트(Punt)는 와인의 침전물이 고이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펀트(Punt)가 없는 와인도 있다. 브랜딩 와인의 경우 펀트가 없다. 브랜딩 와인(Blending Wine)은 두 가지 이상의 와인을 혼합하여 만든 와인이다. 더 맛이 좋고 향긋한 맛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조합하여 만든 와인을 말한다.
  John이 와인 마시는 에티켓을 설명하려다 멈추고 가족을 위하여 건배하자고 말했다. John이 와인 한 모금을 마셨다. Susan도 와인을 혀를 굴려 와인을 음미하며 조금씩 와인을 식도로 넘겼다. 와인 향이 입안 가득했다. 와인을 마신 후 T-Bone 스테이크를 잘라 입으로 가져갔다. 
“여보!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 맞지?”
“그럼요. 미국 덕분에 이렇게 발전하고 자유를 누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CIA 한국 지부장으로부터 Anna와 관련된 사건을 보고받으며 민주주의가 많이 오염되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어.”
Susan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국가가 맞기는 한 것 같은데 아직 먼 것 같아?”
“미국에 비해 역사가 얼마 안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왜 권력이 추악한 사건을 저지르고도 사과하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그건 권력이 오만하고 독선적이란 뜻이거든, 어떤 권력이든지 오만해지면 문제가 생기지. 국민을 우습게 보면 권력은 오래가지 않아, 권력이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지.”
“당신 오늘 크게 실망하셨나 봐요.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한국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 같아.”
“사실, 대사관에서 Anna 문제 보고 받고 엄청나게 충격받았지. 짧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처음엔 뜨거운 맛 좀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Anna 변호사 만난 후 마음을 바꾸었지. 김 변호사가 제시한 의견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청와대 면담을 요청한 건데, 청와대가 너무 오만한 거 같아.”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청와대의 오만함에 미국의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줘야겠어. 그래서 기자회견을 할 생각이야. Anna 일에 내가 직접 개입하도록 청와대가 자처하고 있어. 당신이 날 이해해 주었으면 해. Anna 일에 드러내 놓고 관여하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을 충분히 이해했다. 딸 문제는 진정성을 갖고 용서하고 화해하면 끝날 일이다. 문제는 권력의 오만이다. 남편 말대로 권력이 좀 더 겸손해지면 될 텐데 권력을 잡으면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Susan은 Anna 문제가 자꾸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끌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걱정되었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생각보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Susan은 그런 남편을 의식해 좋은 분위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싶었다.
“여보! 서울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어요?”
“난 서울이 이렇게 멋진 도시인 줄은 몰랐어. 도시가 매우 역동적이야. 긍정적으로 보면 활기찬 도시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뭔가 바쁘게 쫓기며 사는 도시야.”
“맞아요,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요.” 
이야기 도중에 John이 휴대전화를 꺼내 스티브 대사에게 전화했다.
“스티브! John이야.”
“목소리가 즐거워 보이는군. 좋은 일이라도 있나?”
“아내와 함께 로맨틱한 시간을 즐기고 있지.”
“아! 모처럼 두 분이 오붓하게 데이트하고 있다고, 부럽군 그래.”
“아니, 데이트가 아니고 밤이니까 나이트지.”
“그런가?”
“다름 아니고 부탁이 있네.”
“말해 보게.”
“내일 오후 2시쯤 기자회견 좀 하고 싶은데 실무진에게 준비시켜 주겠나?”
“그렇게 하지. 걱정하지 말게.”
“고맙네, 스티브!”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게.”
  John이 전화를 끊자 Susan이 남편의 빈 잔에 와인을 부었다. 그녀가 자신의 와인잔을 내밀며 남편에게 와인을 채워달라고 말했다. 와인 잔을 채워주며 John이 Susan의 얼굴을 보았다. Susan이 잔을 들어 건배하자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부의 얼굴빛이 와인빛으로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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