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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25)

by 훈 작가 2023. 8. 22.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미 대사관 기자 회견

  미 대사관 기자실이 붐비기 시작했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기자 회견을 한다고 하니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기자들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대한민국 인권상황과 관련한 짧은 성명서 발표를 한 후에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사전에 예고한 상태였다. 질문의 횟수나 시간에 제한이 없다는 점도 미리 공지했다.
  John Edward가 회견장에 들어왔다. 대사관 공보 담당 직원이 기자 회견을 시작하겠다는 말과 함께 미 하원 외교위원장을 소개했다. John이 미리 준비한 회견문을 신사복 정장 상의 안쪽에서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최근의 한국에 체류 중인 미국인 여성의 성추행과 관련한 소송에 대하여 저는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번 소송이 과연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상식과 공정의 가치에 어긋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소송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애당초부터 공소장에 주요 피의사실에 관한 내용을 검찰 측에서 누락시킨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최근 일어났습니다. 성추행 피해 여성에게 테러로 보이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이르는 말입니다. 관계 당국은 이 사고를 단순 교통사고로 축소해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수사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구체적인 정황을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배후에 모종의 권력이 작용했다는 정보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수사당국이 사건의 실체를 감추려 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피고인 전임 대통령을 감싸며 모든 상황을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원만하게 해결하고자 비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면담을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한마디로 면담을 거절했습니다. 제가 불가피하게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입니다.
  저는 한국 정부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기를 촉구합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말하는 공정과 정의 그리고 평등의 원칙에 맞지 않게 처리하면 미 하원 외교위원장으로서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하여 바로잡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대로 법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주의 가치가 지켜져 상식과 정의가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회견문 발표가 끝나자 사회를 맡은 공보관이 회견문을 한국어로 다시 통역해 읽어 내려갔다. 기자들의 질문과 미 하원 외교위원장의 답변은 공보관의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국내 유력 일간지 C일보 기자가 먼저 질문을 했다.
“이 기자 회견이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공정, 정의, 평등의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미국 국민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죠. 국적이 다르다고 법이 차별 적용된다면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습니까? 민주주의 가치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습니다. 기자의 내정간섭이라는 지적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신분에 따라, 국적에 따라 제멋대로 적용된다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 스스로가 민주국가임을 부정하는 모순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답변이 끝나자 국내 지상파 K 본부 TV 방송국 기자가 질문을 했다.
“수사가 축소되었다는 주장과 배후에 권력이 작용했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한 증거 가 있습니까?”
“우리가 조사하고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관계 당국에서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를 직접 언론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차원에서 스스로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본 사건에 대해 꼬리 자르기 관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해외언론에 먼저 공개한 다음 한국 내 언론에 공개하겠습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W 신문기자가 다음 질문을 했다.
“모든 외교적 수단이란 어떤 의미인지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인권에 대한 사항입니다. 인권은 민주국가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인간의 권리입니다. 저는 대화로 원만하게 해결되길 희망했습니다. 대화를 거부한 것은 청와대입니다. 대화를 거부한 이상 저는 미국이 가진 외교적 역량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입니다. 외교는 나라 간에 상호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를 상호협의해 풀어나가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뜻합니다. 여기에는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문제가 해당합니다. 따라서 외교적 수단이라는 표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이 자리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 CNN 서울 특파원이 다음 질문을 했다. 서울 주재 외국 특파원 중 유일한 여성 기자였다.
“전임 대통령과의 소송 중인 Anna 양이 위원장님께서 입양한 따님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John Edward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그는 이 같은 질문이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잠시 질문에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주님께서 인연을 맺어 준 딸입니다. 하지만 딸이기 전에 미국 국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더불어 여러분이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의 딸 Anna는 순수한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잠시 기자회견장이 술렁였다. 답변이 끝나자 분위기가 술렁였다. 
“그렇다면 따님 문제이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직접 나서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도 한국 사회에서는 엄마 찬스다. 아빠 찬스다. 하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질문에 다시 묻고 싶습니다. 지금 이 기자 회견이 아빠 찬스라면 저의 기자 회견을 통해 Anna가 어떤 특혜를 얻을 수 있는 거죠? 특혜를 받는다면 혜택을 받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불이익 돌아가는 겁니까? 우리 딸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 중에 누가 피해를 보는 겁니까? 만약 Anna 양 때문에 그 누군가가 불이익을 받거나 피해를 본다면 그 피해를 본 당사자에게 본인이 무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John Edward는 말을 멈추었다. 기자의 질문에 그가 잠시 흥분해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John Edward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컵에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제 입장이라면 이 문제를 모른 척하고 외면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저에게 딸의 문제를 모른 척하라고 강요하시는 건가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공직자(公人) 신분으로 기자 회견을 하는 것이지 Anna의 아버지로 기자 회견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John Edward가 강한 어조로 말하자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다시 국내 일간지 H 신문기자가 질문을 이어갔다.
“청와대에 비공식적으로 면담을 신청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이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단지, 비공식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를 청와대가 무시했습니다. 애당초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었다면 면담을 요청하지 않았을 겁니다.
  여성신문 기자라고 소개한 여기자가 질문했다. 그녀가 질문하자 John은 Anna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기자의 단아한 모습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의원님이 아빠찬스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만 더 부탁드립니다.”
“서울에 오지 전까지‘아빠찬스다, 엄마 찬스다.’라는 의미를 저는 알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의 신분이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위치에 있다 보니 딸을 위해 그런 힘을 행사하려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걸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법부는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법이 공정하게 적용될 때 법을 신뢰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이를 집행하는 공직자들의 도덕적인 가치관과 윤리 의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Anna 사건이 경찰청 고소인 조사과정에서 왜 실시간 피고인에게 유출되었죠? 검찰 공소장에는 왜 주요 피의사실이 누락되었습니까? 최근 사법부 수장은 거짓말 파문으로 권위가 땅에 떨어져 이 나라 전체가 시끄럽습니다. 이 모든 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은 체면도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입니까? 법을 어기고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입니까? 지금, 이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 현란한 정치적 언어로 국민의 마음을 숙이고 있지 않은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제가 충격을 받고 실망한 것은 우리 Anna를‘피해 호소인’이라고 그들 스스로가 지지층과 민심을 선동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반성하면 됩니다. 그런데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사과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한국 민주주의는 그만큼 공정하지 못하다, 그만큼 정의롭지 못하다, 그만큼 평등하지 못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Anna가 이런 현실에서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결과가 뻔합니다. 우리 Anna를 응원하지 못할지언정 이를 아빠찬스라 지적하는 것에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저는 우리 Anna가 제대로 된 헌법 가치와 헌법정신이 살아있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당당하게 싸우기를 원합니다. 기자님 질문에 충분한 답변이 되었으면 합니다. 시간상 마지막 질문받겠습니다.”
  기자회견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D 신문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했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이 반칙하면 심판은 게임 규칙에 따라 벌칙을 적용합니다. 그러나 심판이 공정하지 못하면 경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승부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흘러가겠죠. 심판은 규칙을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경기에 적용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게임입니다. 문제는 심판이죠. 국민은 공정한 심판을 보라고 심판을 선출합니다. 당연히 심판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심판을 봐야 합니다. 그게 헌법의 정신이고 가치입니다. 어떤 권력도 이를 흔들 수 없고 흔들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심판을 공정하게 봐야 할 당사자가 죄를 짓고도 이를 덮으려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심판을 심판하겠습니까? 올바르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심판은 국민이 심판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국민 스스로가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숙한 국민만이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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