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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26)

by 훈 작가 2023. 8. 25.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암중모색 

  John Edward 하원이 청와대를 향해 일격을 날렸다. 비서실장이 잔뜩 흥분한 상태로 회견내용을 들도 대통령 집무실을 찾았다. 이를 본 대통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안색을 살피며 흥분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이거 너무 불쾌한데요. 마치 훈수하듯 내정 간섭하는 것 같아 화가 납니다.”
“그렇게 흥분할 일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약점을 보인 게 문제죠.”
“대통령님! 약점이라뇨?”
“성추행 사건 말입니다. 입에 오르내린 것 자체가 부끄럽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이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혔다.
“사실 저도 그건 할 말이 없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터졌는지?” 
“향후 정치적 외교적 파장이 만만치 않겠는데요. 참 부담스럽습니다.”
“그럼,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면담은 받아들였어야 했나요?”
“John 의원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 실수죠.”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현안을 면밀히 분석해 대책 마련…”
“아! 그러지 마시고요. 저녁때 관저에서 소주나 한잔했으면 합니다.”
“참석은?”
“안보실장과 국정원장만 연락해서 함께 오세요. 보안은 지켜 주시고요.”
“민정수석은 어떻게 할까요?”
“민정수석은 교수 출신이라 그런지 정무 감각이 좀 떨어져서…”
“예, 알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합시다.”
“시간은?”
“저녁 식사를 겸해서 밤 8시로 했으면 합니다.”
비서실장이 나가자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쪽으로 다가섰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악재를 만났다. 처음 느껴보는 외로움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이 자리가 이렇게 고독한 자리인가? 막상 권력을 손에 쥐고 보니 중압감 다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가끔은 후회할 때가 있다. 권력의 비정함 때문이다. 전임자의 지지에 힘입어 권좌에 올랐다. 그러나 그 대가로 지분을 양보해야 했다. 무늬만 대통령이다. 전임자와의 관계가 항상 신경 쓰인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하려고 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태릉 골프장에서 전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그를 따르던 측근들과 라운딩을 즐기고 있었다. 마지막 홀을 돌고 걸어 나오는데 청와대 시절 수행비서로 있던 황우민 실장이 저만치서 뛰어오고 있었다. 그가 “각하!” 소리를 연발하며 전임 대통령 앞으로 달려왔다. 
“각하! 긴급히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뭔데,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
황 실장이 A4용지 서너 장 분량의 기자 회견을 정리한 내용을 전임 대통령에게 내밀며 말했다.
“미 대사관에서 있었던 John 하원 의원 기자 회견 내용입니다.”
전임 대통령이 아무 말 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가 라운딩을 끝낸 측근들에게 저녁은 나중에 쏘겠다며 황 실장과 함께 클럽하우스 쪽으로 급히 이동했다. 
“김 대표라도 부를까요?”
“어서, 차나 대기시켜!”
“예, 각하!”
  황 실장은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Anna 아버지가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라는 사실은 충격이다. 그는 뭔가 상황이 예기치 않은 곳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직감했다. 자신도 그런데 전임 대통령 처지에서는 어떻겠는가. 불같은 주군(主君)의 성격을 잘 아는 황 실장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름 주군 밑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한 그다. 이번 고비를 잘 넘겨야 공천 얘기라도 꺼낼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질 진 것일까.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아무래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지난번 교통사고가 마지막 수준이라고 판단했었는데 그게 발목을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하! 어디로 모실까요?”
“양평으로 가.”
  양평으로 가는 내내 전임 대통령은 눈을 감고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는 40년 세월을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누구보다 상황분석이 빠르고 위기 돌파 능력이 뛰어난 정치인이라 평가받았다. 그런 정치적인 역량으로 권좌에 올랐고 때가 되어 내려왔다. 그런데 어떻게 문제가 꼬인 것인지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황 실장도 Anna 양 사건이 별거 아니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Anna가 소송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즉시 전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그의 지시에 따랐다. 하지만 뜻대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검찰과 법원은 물론 언론에 손을 써 파장을 최소화했다.
  다행히 미리 손을 쓴 탓에 국민과 언론의 관심을 비켜 갈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1심을 승소로 끌어냈다. 그러나 Anna 양이 기자 회견으로 정면에 나서면서 상황이 확 달라졌다. 문제는 Anna 양 교통사고부터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전임 대통령은 그 순간부터 여론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이봐, 황 실장!” 
“예, 각하!”
“일단 김 대표 좀 들어오라고 해.”
“예, 각하!”
황 실장이 여당 원내대표에게 막 전화하려는데 전임 대통령이 뭐가 생각났는지 다시 말했다.
“아~ 저기. 그래, 정호길 청장도 들어오라고 해.”
황 실장이 전화를 걸다 말고 “예, 각하!” 대답부터 했다.
“김 대표님! 저 황 우민입니다.”
“예, 황 실장님!”
“빨리 양평으로 좀 오셔야겠는데요.”
김 원내대표가 감을 잡았는지 알겠다며 짧게 대답하고 끊었다. 이어 정호길 경찰청장에게 한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전임 대통령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Anna 아버지라니 이게 도대체 뭐지.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 권력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쥐와 새를 통해 세상의 흐름을 읽는다. 그러나 자신들은 쥐와 새를 피해 은밀하게 움직인다. 그게 그들의 속성인지 모른다. 
  청와대 관저에 어둠이 스며들었다. 영부인이 준비한 안주를 사이 두고 네 사람이 앉아 식사를 겸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분위기만 선술집으로 옮겨 놓으면 월급쟁이들이 퇴근하며 한 잔 기울이는 자리 나 다름없다. 다만, 주인공이 다를 뿐이다.
“답답해서 소주나 한잔하려고 오시라 했습니다. 미리 시간을 두고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미 하원 외교위원장 기자 회견을 보고 왠지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이렇게 오시라 했습니다.”
“뜻밖에 일격을 당했습니다. John Edward 의원이 상당히 격노한 것 같습니다. 예기치 않은 일로 한미관계가 삐걱거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죠. 어쨌거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해서 대응하셔야 합니다.”
“저도 국정원장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저의 안보실 내 분위기도 자칫 한미 동맹 관계가 영향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일은 양평 어른이 원인제공을 한 거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이제 더 이상 전임 대통령과 결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비서실장께서는 양평 쪽과 일전불사(一戰不辭)도 각오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대통령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안보실 내 실무진과 잠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미 간의 동맹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사안을 다루어야 하나도 점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본질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점입니다.”
“국정원장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Anna 양 사건은 John 의원이 지적했듯이 자국민의 인권에 관한 사항입니다. 따라서 권력이 Anna 양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다는 거죠. 어떤 식이든 양평 어른과 힘겨루기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럼, 국정원장도 비서실장 의견처럼 그쪽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얘기네요?”
“어쩌면 전화위복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결별을 하지 않으면 재임 기간 내내 양평 어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대화가 차분하고 진지했다. 분위기가 너무 딱딱한 것을 감지한 대통령이 건배를 제안하며 소주를 들었다. 대통령이 집사람이 만든 안주 맛이 어떤지 모르겠다며 생태찌개 국물을 한 수저 떠서 맛을 보았다. 국정원장이 삼겹살 한 점을 상추에 싸서 입에 넣었다. 옆에 앉은 비서실장은 생태찌개 맛이 일품이라며 한마디 보탰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의 빈 소주잔을 보고 한 잔 권하며 술을 따랐다.
“아마 양평 쪽도 비상이 걸렸을 겁니다. 그쪽도 지금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을 게 뻔합니다.”
“비서실장님! 그 어른도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 9단 아닙니까. 나름대로 예상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특검 문제나 처가 쪽 기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 같은 조치에 미리 대비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장님도 정치 9단이시잖아요. 저는 하산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인 저로서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데 상황이 절대 녹록지 않다 보니 답답합니다. 안보실장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양평 어른은 청와대가 자신들에게 큰 빚을 졌으니 당연히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죠. 그런 관점에서 서로 타협의 접점을 찾기는 힘들 겁니다. 그렇다면 사태 해결의 초점을 양평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의 국민 눈높이 수준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보실장님께서 언급하는 방향이 옳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원칙에 부응하는 명분을 이용해 언론의 호응과 민심을 얻어야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국정원이야 정치에 손을 뗀 상황이라 도움이 못 되지만 말입니다.”
“그 공백은 우리 비서실 내 정무수석에게 일임해야죠.”
  대통령은 참모들의 의견을 들으며 고민에 잠겼다. John Edward 의원의 면담 거절은 자신의 실수다. 짧은 순간 자존심을 내세우느라 냉정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청와대로서는 미 하원 외교위원장도 달래야 하고 전임 대통령과 얽힌 Anna 양 사건도 수습해야 한다. 

  세상일이란 변화무쌍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정치에 몸담고 평생 살았던 전임 대통령이 본능적으로 변화가 몰고 올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그는 가볍게 생각했던 Anna 양 사건이 이처럼 부메랑이 되어 위기를 불러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사건의 파문이 사법부 영역을 벗어나 청와대 쪽으로 번진 것에 관해 부담스러웠다. 칼을 잡은 쪽은 청와대다. 단지 전임 대통령이 손에 쥔 것은 권력 지분과 정치자금 문제란 보험뿐이다. 자칫하면 모든 것을 일거에 잃을 수도 있다. 
  그는 마음이 심란했다. 앞으로 움직임에 골몰하며 한강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거실 인터폰이 울렸다.
“황 실장입니다. 각하!”
“오 그래”
“김 원내대표와 정호길 청장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공교롭게 두 사람이 비슷한 시간에 양평별장에 도착했다. 김 원내대표 뒤를 따라 경찰청장이 사복 차림으로 들어왔다. 
“앉지, 그래.”
“예, 각하!”
“김 대표! 청와대 분위기는 어때?”
“청와대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 같습니다. John Edward 의원을 홀대하는 바람에 자처한 일이죠. 어쨌든 외교적으로 흔들면 당할 제 간이 없거든요. 항간에 들리는 얘기로는 각하와 결별 얘기도 들립니다. Anna 양 사건이 각하 작품이라는 소문 때문에 곤욕스러워서 나오는 말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날 압박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거야. 그 방법이 국회 쪽이면 특검 카드일 것이고, 권력기관이면 아마 내 처가 쪽 세무조사 카드일 거야. 아무쪼록 움직임이 감지되면 즉시 김 대표가 보고해.” 
“알겠습니다. 각하!”
“나도 청와대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그래도 칼은 그쪽에서 쥐고 있으니 대비해야지. 만약 이도 저도 아니면 정치자금을 터트릴 수밖에 없지 뭐.”
“각하! 다른 건 몰라도 정치자금은 안 됩니다. 그건 다 죽자는 얘깁니다.”
“이봐, 김 대표! 내가 어린애인가,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각하! 아무튼 제가 아무 일 없게 잘 처리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봐, 정 청장!”
“예.”
“지난번 교통사고 배후로 날 의심하고 있는데 누구 소행이야.”
“그 건은 수사를 중단시킨 상태입니다.” 
“그건 나도 알아. 현재까지 수사 상황이라도 보고해 봐.”
“피의자는‘안 영재’란 사람인데 해고 노동자로 노모와 함께 사는 삼십 대 총각입니다. 집시법과 폭력 전과도 있고요. 수사 과정에서 파악된 바로는 피의자 안 영재 통장에 1억 원이란 거액이‘양무진’이란 이름으로 입금이 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 뒤를 추적해 봤더니 ‘양무진’ 뒤에 여당지지 인터넷 모임을 총괄하는 ‘명동찬’이라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추적을 해 보니 실체가 없는 인물입니다. 아마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가명으로 행세하는 걸 보면 보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호길 청장은‘명동찬’의 실체를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을 경찰청장 자리에 오르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준 의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 믿을 만한 베테랑 수사관에게 지시해 비공식적으로 수사를 계속해서 조속한 시일 내 나한테 보고하도록 해. 알겠나?”
“알겠습니다, 각하!”
전임 대통령이 봉투 2개를 꺼내 밀었다.
“기름값이나 해~”
두 사람이 일어나면서 봉투를 챙겼다. 두 사람이 나가자 전임 대통령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여보! 웬일이세요?”
“어! 아무 말 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처남한테 전해.”
“말씀하세요.”
“처남한테 전화해서 국세청 세무조사에 미리 대비하라고 해. 아주 빈틈없이 단단히 챙기라고 말이야. 당신도 계열사 사장들에게 그렇게 지시하고.”
“세무조사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죠?” 
“당장 나오는 거 아냐,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알았어요. 여보!”
“아들은 경영수업 잘 시키고 있지?”
“아들 일은 신경 쓰시지 말고 당신 일이나 잘 챙기세요. 요즘 Anna 사건으로 시중 여론이 시끄럽던데…. 그나저나 통장에 돈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그래, 알았어. 당신 신경 안 쓰도록 할 테니 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아.”
“30년 산은 아직 있어요?”
“있어.”
“그럼, 알았어요. 전화 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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