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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28)

by 훈 작가 2023. 9. 3.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경질(更迭)

  비서실장이 민정수석과 함께 급히 대통령 집무실로 올라갔다. 대통령이 두 사람을 맞으며 자리를 권했다. 
“긴급 보고사항이 뭐죠?”라고 대통령이 묻자 비서실장이 민정수석 얼굴을 보며 말했다.
“민정수석이 보고 하시죠?”
“Anna 양 수사 중단은 정호길 경찰청장이 지시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누가 압력을 넣은 거죠?”
“전임 대통령 수행비서실장입니다.”
“황 실장 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황 실장을 향한 수사를 중단시킨 거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Anna 양 사건은 황 실장 작품인 거네요?”
“그래서 언론이 수사를 축소하고 은폐했다고 연일 비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임 대통령과 직접 연루된 정황은 없습니까?”
“아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어쨌든 황 실장 목에 칼이 향하는 걸 정 청장이 막은 걸 보면 이미 몸통이 황 실장인 걸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군요.”
“…”
“두 사람이 어떤 사이죠?”
“정 청장을 적극 추천한 인물이 황 실장입니다.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같은 고향에 고등학교 후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덕분에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죠. 
민정수석 말이 끝나자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번에 경질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Anna 양 부실 수사 책임을 묻는 형식으로 경질시키면, John Edward 의원 체면을 살려주는 측면도 있고, 우리 쪽 사람을 앉힐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닐까 판단됩니다.”
“임기는 얼마나 남았나요?”
“8개월 남았습니다.”
“정 청장을 경질시키면 양평 쪽에서 전면전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텐데…”
“대통령님! 경질시킬 명분이 충분합니다. 민심과 언론 공격도 고려해야 하고요.”
“그럼, 이번에는 정 청장 경질 카드는 이번에 쓰고 황 실장 카드는 상황 추이를 지켜보면 쓰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비서실장은 인사수석과 함께 후임자를 물색해 보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민정수석은 후임 청장이 결정되면 Anna 양 부실 수사 의혹은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수사하도록 지침을 내려 John 의원의 체면을 세워주는 방향으로 정리합시다.”
“알겠습니다.” 
“비서실장!”
“예”
“조용히 스티브 대사를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를 만나서 지난번 면담 무산 건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Anna 양 사고에 대해서는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진실을 밝히도록 하겠다는 청와대의 메시지를 전하면 John 의원도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잘 알겠습니다. 바로 스티브 대사를 만나보겠습니다.”

  북악산 동향을 예의주시하던 정 청장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경질 소문이 나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가 눈치를 챌까 노심초사 불안했다. 어쩔 수 없이 황 실장을 지키느라 수사 중단 지시할 수밖에 그였다.
“황 실장님! 저, 호길입니다.”
“아니 무슨 일인데 다 죽어가는 목소리야.”
“형님! 저 좀 챙겨줘요.”
“뭔데 그래?”
“조만간 Anna 양 부실 수사 책임을 물어 경질시킬 거란 얘기가 들리거든요.”
“무슨 소리야, 뭐 잘못 안거 아냐?”
“제 목이 왔다 갔다 판에 거짓말하겠어요.”
“이봐, 호길이! 어디서 들은 얘기야.”
“민정수석실에 경찰대 동기가 있거든요.”
“만약 청와대가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와 맞짱을 뜨자는 얘긴데…”
“아무튼 형님이 각하께 잘 말씀 좀 드려 줘요.”
“으~응 그래, 알았어.”
황 실장은 일단 상황 파악을 해 보려고 모처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길게 이어졌다. 통화가 끝나자 다시 어디론가 전화했다. 조금 전보다 통화가 짧았다. 뭔가 낌새가 안 좋았는지 그가 전임 대통령이 있는 서재로 향했다. 
  그가 노크하며 서재로 들어갔다. 전임 대통령이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일어났다. 황 실장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책의 표지를 힐긋 보았다. 표지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보였다. 마이클 샌델 지은 책으로 몇 년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다.
“이리 앉지. 황 실장!”
“예, 각하!”
“뭐야 보고할 사항이?”
“정호길 청장이 경질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아직 임기가 남았잖아.”
“8개월 남았습니다.”
“그런데 왜 경질시킨다는 거야?”
“여의도 김 대표에게 전화해 봤더니 Anna 양 부실 수사 논란과 미 하원 외교위원장 기자회견에 대한 수습 차원으로 보인답니다.”
“그건 명분이지. 이거, 나하고 한 번 붙자는 거 아냐.”
“어쨌든 정 청장을 지켜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하!” 
“그래야지…”
“정 청장이 경질되면 우리 정보채널의 핵심축이 무너지는 셈입니다.”
“맞아.”
“이봐, 황 실장!”
“비서실장 전화 연결해.”
“알겠습니다.”
  황 실장이 청와대로 전화를 걸었다. 그가 비서실장과 잠시 인사를 하고 나서 전임 대통령을 바꾸어 주었다. 전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으로 정 청장 경질 건을 언급했다. 비서실장이 John Edward 의원을 언급하며 논리적으로 설득에 나섰다. 전임 대통령은 명분에 밀려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아! 이거 참, 망할 놈의 미국 놈들 핑계를 대니 이거 할 말이 없고 먼 그래.”
“각하! 타격이 너무 큰데요.” 
“맞아.”
“그건 그렇고 국세청 쪽은 특별한 움직임 없어?”
“세무조사건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거 말고 뭐가 있어?”
“없습니다.”
“그럼, 아직은 우리와 전면전을 할 뜻이 없다고 봐야 하나, 어쨌든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즉시 보고해.”
“알겠습니다. 각하.”
“나가봐.”
“각하! 저….”
“뭐야, 할 말 있으면 얼른 해.”
“내년 총선에는 꼭 한 번 챙겨 주십시오. 각하!”
“임자! 그렇게 금배지를 달고 싶어?”
“한 번만 챙겨 주십시오. 각하! 이 한 몸 각하께 다 바치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나가서 일 봐.”
“예, 각하!”
  황 실장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토록 원하던 여의도 입성의 꿈이 이제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그가 평생 모신 주군(主君)이다. 처세에 능한 그가 드디어 금배지를 단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 중단됐던 수사가 재개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다. 정 청장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호위무사였다. 정 청장 경질되면 자신의 상황도 녹록지 않을 것 같다. 그가 빨리 금배지를 달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임 대통령에게 황 실장은 한마디로 버리기는 아깝고 가까이 두자니 신경이 쓰이는 계륵 같은 존재다. 언제든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인물임을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를 버리지 못한 이유는 우직한 그의 충성심 때문이다. 그가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눈치껏 궂은일을 알아서 잡음 없이 잘 처리해 온 건 사실이다.
  
  결국 정호길 청장은 Anna 양 수사 은폐 의혹을 책임지고 경질됐다. 대통령은 신임 경찰청장으로 청와대 서민혁 사회 안전 비서관을 전격 발탁했다. 서 청장은 곧바로 Anna 양 사고와 관련하여 경찰청장 직속으로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그는 신속한 진상규명을 위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서산경찰서 홍재범 경정과 최정수 형사가 특별수사본부로 불렀다. 홍 경정은 수사본부장으로 명을 받아 수사를 총괄하게 되었고, 수사 인력도 보강되었다. 홍 본부장 지휘 아래 Anna 양 수사가 탄력을 받게 되었다.
  맨 먼저 소환된 인물은 양무진이었다. 그는 여당지지 인터넷 동호회 회장이다. 그는 Anna 양 테러를 교통사고 피의자 안영재를 사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불려 와 범행 사주 혐의를 추궁받자 줄곧 부인했다. 최정수 형사가 범인 안영재의 진술서를 들이대며 추궁했다. 
“이봐, 당신이 안영재 계좌로 1억 원을 입금한 거 어떻게 설명할 거야?”
“저는 심부름만 한 것뿐이라고요.”
“그럼, 심부름은 누가 시킨 거야?”
“…”“양무진 씨! 누가 시킨 겁니까?”
 “…”
“묵비권 행사하시는 거예요?”
“…”
“사실, 입 열면 보복당할까 봐. 무섭거든요?”
“보복이라고?”
“양무진 씨! 조폭이 이 사건에 연루된 거 아니면 걱정할 필요 없어.”
“정말요?”
“빵에서 평생 살 각오 없으면 보복 범죄는 아무나 못 해.”
“…”
“당신도 털어놓아야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다고. 맘고생 그만하라고. 어서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라고.”
“저- 저어, 파랑새모임 후원회장이요?”
“파랑새모임 후원회장이면 명동찬 씨를 말하는 건가?”
“명동찬이라고요?”
“그럼, 명동찬 회장 말고 누구야?”
“명동찬이라고 하는 이름은 가명이에요. 외부에서 그렇게 알려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황 회장이라고 불렀어요.”
  양무진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연말 여당을 지지하는 외곽단체인 파랑새모임 송년회에서 후원회장인 황우민 실장을 알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어느 날 황 회장이 연락해 와 만났다고 했다. 그가 골치 아픈 일 하나를 처리해 줄 해결사를 찾아 달라며 자신에게 부탁했다고 털어놓았다. 
  황 실장은 회원 중 여당 충성도가 높으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여당지지 인터넷 동호회 영등포와 구로지역을 맡고 있는 남성욱 지부장에게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고 남성욱 소개로 안영재가 범행에 나서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왜 당신 통장에서 돈을 계좌 이체시켰어?”
“그건 황 실장이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어떻게 시켰는데?”
“안영재가 돈만 먹고 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남성욱 지부장에게 일이 성사되면 제가 결과를 확인한 후에 직접 안영재 통장으로 1억을 입금하라고 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황 회장한테는 얼마 받았어?”
“2억 받았어요.”
“그럼 정리해 보자고, 당신은 범행 대가만 보냈고, 남성욱은 소개 명목으로 후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안영재에게 범행을 사주했다는 이야기네. 지금 내가 한 말이 맞아, 안 맞아?”
“맞아요.”
“남성욱한테는 얼마 줬어?”
“지부 후원금 명목으로 5천 입금했어요.”
“어쨌든 당신은 안영재를 전혀 만난 사실이 없다는 얘기네.”
“그래서 심부름만 했다고 말했잖아요.”
“나머지 5천은 심부름으로 받은 거네?”
“….”
  최정수 형사가 조사실을 나왔다. 처음부터 단순교통사고가 아닐 거란 자신의 판단이 맞았다. 윗선에서 지연시켰던 이유도 짐작하고 남았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성역 없이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최 형사가 그런 생각을 하며 본부장에게 갔다.
“최 형사! 어서 와. 수사는 진척이 있어?”
“처음엔 입을 안 열더니 마음이 바뀌었는지 슬슬 불던데요.”
“그래.”
“본부장님! 그런데…“
“최 형사! 말 안 해도 뭔지 알겠어.”
홍 본부장이 눈치를 챈 듯 최 형사를 보았다. 그가 퇴근 시간 지났다며 일어섰다.
“최 형사! 답답하지. 소주 한 잔 어때?” 
“말씀 안 하셨으면 혼자 마시려고 했습니다.”
“혼자 무슨 맛으로 술을 마셔.”
“가끔 그럴 때가 있어요.”
“이번에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저는 의문이 드네요.”
“어느 선에서 꼬리를 자르나 하는 문제만 남은 건가.”
“그렇잖아요. 배후에 권력이 있는 사건은?”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미 하원 외교위원장 딸과 부인이라 적당히 뭉갤 수가 없을 것 같아.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 거지.”
“청와대가 어떻게 교통정리를 할지 골치가 아프겠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최 형사! 이 집 와 봤어?”
“아니요.”
‘얘기 들어 보니 이 집 곱창이 끝내 준다는 거야, 자 들어가 한 잔 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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