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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27)

by 훈 작가 2023. 8. 30.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아버지와 딸

  얼마나 서울에 머물러야 할지 John 의원은 알 수 없었다. 당분간 청와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 한다. Anna와 관련된 당국의 수사가 재개될지도 변수다. 그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향후 자신의 일정을 결정하기로 John은 마음먹었다. 
  Anna 건강 회복 여부도 마찬가지다. 궁금한 나머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에 가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서둘러 저녁을 먹고 대사관저를 나왔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근처 꽃집에 들러 Anna가 좋아하는 장미꽃을 나이에 맞추어 샀다. John은 Anna가 꽃을 받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떠올렸다.
  차 안에서 생각했다. 딸의 성격으로 보아 자신의 기자 회견에 대해 한마디 할 게 뻔했다.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기자 회견이 Anna 입장에서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아버지가 개입하는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병실 앞에서 John은 꽃다발을 뒤로 숨긴 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김 변호사도 와 있었다. 그녀와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Anna를 보았다. 옆에 있던 Susan은 꽃을 보고 모른 척했다. John이 침대로 천천히 다가서며 꽃다발을 딸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Anna가 환하게 웃으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와! 장미잖아. 아빠 고마워.”
“컨디션은 어떠니?”
“아빠 많이 좋아졌어.”
“여보! 난 꽃 없어?”
John은 그 말을 듣자 아차 싶었다. 그가 순발력을 발휘해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턱을 받치며 돌아섰다.
“여기 있사옵니다. 여-왕-폐-하!”
“여보! 당신이 꽃이라고? 호호호.”
“그럼 어떡해. 이 꽃이라도 바쳐야지. 하하하” 
병실 안에 웃음꽃이 퍼져 나갔다. 이런 장면을 지켜보던 김 변호사가 Susan에게 남편이 로맨틱한 분이라 치켜세웠다. 
  Susan과 김 변호사가 잠깐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부녀가 주고받는 대화가 크게 들렸다. 조금 전 상황과 대조적이었다. 김 변호사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표정이 달라졌느냐고 Susan에게 물었다. 그녀가 기자 회견에 대해 Anna가 불만을 얘기하는 상황이라 말했다. 
“아빠! 기자 회견은 내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한 거 아냐?”
“아빠는 동의할 수 없어.”
“이건 전적으로 내 문제잖아.”
“개인의 문제이기 전에 미국 국민의 문제지.”
“전에도 미 대사관 직원이 찾아와 미 국민의 인권 문제라며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냐고 내 의견을 물어 온 적이 있었어. 하지만 내가 알아서 할 문제라며 거절했지. 그런데 아빠는 내 의견도 물어보지도 않고 기자 회견했잖아. 아빠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야?”
“넌 환자야. 아빠는 네 건강 상태를 고려한 것뿐이야.”
“아빠! 그건 핑계지.”
“그건 네가 아빠 처지에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어쨌든 내 문제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 싶지 않아. 아빠의 정치적 영향력을 내 문제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고. 어디까지나 내 문제이니까. 내가 기분이 나쁜 건 아빠가 내 동의를 받았다는 점이야.”
“그건 인정해. 아빠는 넓은 관점에서 판단했어. 네 문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야. 네 문제를 미 대사관에서 보고 받았어. 여기 계시는 김 변호사에게도 상세한 설명을 들었지. 이 문제는 심각한 인권 문제이잖아. 거기에 교통사고를 위장해서 널 죽이려고까지 했어. 네가 아빠라면 참겠니?” 
“…”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 아빠는 정말 충격을 받았어, 아니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었어. 나름 좋게 해결하려고 대통령 면담을 하려고 했는데 이마저 거절당했지. 참 어이가 없더군. 그나마 네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자제하고 냉정하게 대응한 거야. 알겠니?”
  Anna는 아빠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말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럴 수 있다 싶었다. 부녀지간의 언쟁에 Susan과 김 변호사도 놀랐다. 흥분을 가라앉힌 John이 다시 말을 이었다.
“게임은 서로가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어있어. 그러나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면 결과는 당연히 정의롭지 못하지.”
“아빠! 그건 나도 동의해.”
“그럼, 아빠를 이해해 주는 거니?”
“아빠가 나를 잘 알고 있듯이, 나도 아빠를 잘 안다고 생각해. 아빠는 자존심이 강하잖아. 난 아빠가 자존심 상해서 그랬다고 생각해. 청와대가 아빠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던 분노가 벌떡 일어난 거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아빠를 잘 알거든.”     
“없지 않아 그것도 있지, 아빠도 인간이야, 완벽할 수가 없어.” 
“아빠! 요즘‘아빠 찬스다, 엄마 찬스다.’ 하는 말로 한국 사회가 너무 시끄러워. 내가 그 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모르겠어. 난 지금껏 내 아빠의 사회적 신분을 내 삶에 끌어들인 적이 없어. 누가 아빠 직업을 물어보면, 우리 아빠는 평범한 공무원이라고만 했어. 아빠도 날 그렇게 교육시켰잖아. 누가 아빠 직업을 물어보면 그냥 공무원이라 대답하라고… 아빠 맞아, 안 맞아?”
“그랬지.”
“특히, 대학 때부터 철저하게 네 운명, 네 행복은 너 스스로 만들어가는 게 인생이라고 아빠는 강조했어. 난 아빠의 가르침을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그런 아빠를 항상 진심으로 존경했어. 아빠 기자 회견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다만, 공사(公私)를 구분이 모호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아빠 말대로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국 국민의 인권 문제라는 말이 당연히 맞지.”
“…” 
Anna가 잠시 말을 잇지 않다가 아빠를 보며 감정이 북받쳤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라기 시작했다.
“아빠!”
“계속해.”
“난 아빠가 하는 기자 회견을 보며 아빠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 알게 되었어. 아빠한테 큰소리쳤지만 사실 난 아빠를 정말 사랑해….” 
“Anna야! 아빠도 그래.”
두 사람의 언쟁은 끝났다. John이 훌쩍거리는 Anna를 안아 주었다. 이를 지켜보던 Susan이 손수건을 꺼내 딸에게 주었다. 김재형 변호사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녀도 돌아서서 눈물을 참으며 창밖을 보았다.
“변호사님! 죄송해요.”
“아니에요, 어머님! 저 눈물 나서 혼났었어요.”
“예?”
“세상에 이런 딸, 이런 아버지가 어디 있어요. Anna 양이 왜 이렇게 훌륭한지 이제 알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짤막한 감동 드라마 한 편을 본 느낌이에요. 어머니! Anna 말이 맞아요. 요즘 대한민국이 아빠 찬스다. 엄마 기회 다 한참 시끄럽잖아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리 현상이 부모찬스거든요. 빨리 근절되어야 하는데….” 
  
  김재형 변호사가 돌아간 후 John은 Anna에게 일이 마무리되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물었다. Anna는 한국에서 꿈꾸었던 모든 걸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간 청와대에서 받은 급여 일부를 성금으로 내고 싶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니?”“Give and take라는 말이 있잖아.”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많은 사람한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누구한테?”
“김 변호사님을 포함해 내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도와준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의 전화 등 여성단체 관계자 등등…”조금이나마 신세 진 것을 갚고서 떠나야지.
 받기만 하는 인생은 너무 이기적이잖아.”
“성금은 얼마나 할 생각인데?”
“아직 거기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어.”
“어쨌든 정말 훌륭한 생각인데.”
“미국에 돌아가면 계획은 있니?”
“얼마 전 Bill 회장한테 전화 왔는데, Bill 회장이 뭐라 한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왜 인생을 과거에 얽매여 열정을 소비하느냐며 빨리 미국으로 돌아와 같이 미래의 변화를 선도하는데 자신과 함께 하자는 거야. 아마 내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들었나 봐.”
“그래서 뭐라 했어?”
“알았다고 했어.” 
“Bill 회장도 좋아했니?”
“물론이지.” 
“지금 보니 우리 Anna 알아주는 인재였네.”
“아빠, 지금 알았어? 나, 이래 봬도 AI & IT 분야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프로야. 몰랐어, 아빠?”
“하하하”

  대사관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John Edward는 마음이 흐뭇했다. 딸이 자신의 피를 받지 않았지만, 녀석은 남다르다. 녀석이 남자였다면 큰일을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아들인 Thomas에게는 그런 점을 찾아볼 수 없다. 
  부녀관계는 묘한 함수관계가 있다. 어느 순간 녀석에게 소녀 시절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운 매력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딸로서 자신의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잔 다르크 같은 매력이 Anna에게 있다. 그가 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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