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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29)

by 훈 작가 2023. 9. 7.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밀사(密使)

 

실장님! 정 청장을 경질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황 실장까지 손을 대면 양평 쪽에서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하죠?”

그렇다고 황 실장을 그냥 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님 지시로 특별수사본부까지 구색을 갖추어 언론에 발표했으니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그뿐입니까? 저는 대통령님 지시로 스티브 대사까지 만나 Anna 양 진실을 파헤칠 테니 미 하원 외교위원장을 설득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난번 대통령님께서 황 실장 카드는 다음에 쓰자고 하신 말씀은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닐까요?”

저도 듣긴 했습니다만 대통령님 의도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특별수사본부에서 올라온 보고서 한 번 보시죠?”

민정수석이 A4용지 2장 분량의 보고서를 내밀었었다. Anna 양 사건의 몸통은 황 실장이었다.

어쨌거나 양평 어른이 사건에 직접 관여하거나 개입한 정황이 없는 걸 보면 황 실장이 독자적으로 기획한 과잉 충성으로 봐야겠네요.”

아마도 황 실장이 내년 총선을 계기로 여의도 입성을 위해 확실한 눈도장을 찍으려고 저지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한마디로 금배지 야망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셈인데, 패착이 되었다고 봐야겠죠.”

일단 점심 식사하고 집무실로 올라갑시다. 대통령님도 나름 마음속에 숨겨 놓은 카드가 있을 겁니다.”

 

대통령 집무실 분위기가 적막감이 돌 정도로 조용했다. 대통령이 민정수석이 내민 수사 결과 보고서를 읽어 본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참모가 아무 말 못 하고 침묵을 지켰다. 대통령이 결심이 선 듯 입을 열었다.

황 실장을 잡아들이면 분명 저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죠.”

! 그렇습니다.”

! 이렇게 하셨으면 합니다. 언론을 활용하는 카드를 쓰는 겁니다. 언론에 Anna 양 사건의 배후에 전임 대통령의 연루 가능성을 흘리는 겁니다. 그러면 언론에서 마치 양평 어른이 개입된 것처럼 기사를 부풀려 쓸 겁니다. 그럼, 그 어른의 성격상 가만히 있지 않고 황 실장을 불러 노발대발할 겁니다. 그때 우리가 그쪽에 밀사를 보내는 겁니다.”

밀사를 보내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우리가 황 실장 선에서 수사 결과를 마무리하면서 그 어른을 막아주는 거죠. 그럼, 황 실장을 잡아들이는 것은 무난하게 해결될 겁니다.”

대통령님! 그래서 지난번 황 실장 카드를 다음에 쓰자고 하신 겁니까?”

황 실장을 잡아들이는 것은 그 어른의 수족을 자르는 일입니다. 자칫 그 섣불리 다루다가는 우리가 선전포고하는 것처럼 비취질 수 있으니까요. 그쪽에서 전면전으로 받아들이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 여당 내부가 분열되겠지요. 양쪽 다 피만 흘리고 승자 없는 게임이 될 게 뻔합니다. 그래서 황 실장 카드를 가볍게 써서는 득이 하나도 없어서 미뤄놓은 카드였던 겁니다.”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은 대통령이 숨겨 놓은 황 실장 카드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순간 두 참모가 탄복하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민정수석!”

!”

황 실장 카드는 아주 조심스럽게 언론플레이를 하셔야 합니다. , 한 치의 빈틈이 있거나 정보가 새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서 추진하세요.”

특히 유념하겠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장은 적절한 시기에 국정원장에게 밀사 역을 맡아주도록 제 뜻을 비밀리에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에게 악역 아닌 악역을 부탁하는 게 부담됩니다. 정치에는 신경 안 쓰도록 약속해 주었는데 도리어 내가 약속을 어기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좀 전해주시고요.”

잘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대통령의 의도에 따라 황 실장 제거 작전은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Anna 양 사고 배후에 전임 대통령의 개입설이 보도되었다. 양평 쪽에서는 즉각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언론 보도는 사실무근이며 근거 없는 가짜 뉴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임 대통령은 황 실장이 뭔가 일을 저지른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불렀다.

이봐, 황 실장 언론에서 자꾸 배후에 내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각하! 죄송합니다.”

황 실장!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이실직고(以實直告) 해 봐.”

언론에서 자꾸 날 들먹거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Anna 양 사고. 이거 자네 작품이지? 맞아 안 맞아?”

죄송합니다. 각하!”

자네 작품이니까 배후에서 내가 지시한 걸로 자꾸 뉴스에 나오는 거 아냐.”

 

이 사람아! 자네 충성심을 내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은 없어. 그러나 이런 건 충성이 아니야.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지.”

각하!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알았어. 나가 일 봐.”

 

저녁 무렵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양평 저택에 어둠 속에 멈추었다. 대기하고 있던 비서관이 손님을 안내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기다리던 전임 대통령이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짧게 덕담이 오갔다. 건강과 골프 등을 주제로 대화가 끝나자 전직 대통령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국정원이 정치는 손을 뗐다면서?”

, 각하! 제가 오래 살고 싶어서 좀 몽니를 부렸습니다.”

하긴, 정치에 휘둘리면 언제 옷 벗을지 모르지.”

국정원장이 날 보러 온 것 보면 아직 정치에서 손을 뗀 것 같지 않은데~”

전임 대통령이 농담하듯 웃으며 말하자 국정원장이 말을 받았다.

각하! 오늘은 고수 앞에서 감히 제가 잔머리 굴리려고 온 거 아닙니다.”

그러겠지. 하하하. 그건 그렇고 3030년 산 한 잔 어때?”

술값 안 받으시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아하! 모처럼 국정원 돈 좀 만져보려고 했는데. 역시 당신은 고수야!”

“On the Rock으로 주시면 술값은 내겠습니다.”

이봐, 당신이 술값을 내면 난 술집 주인이 되는 거잖아.”

각하! 그렇게 됩니까?”

내가 술값을 받으면 국세청 세무조사 나올까 겁나.”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카드로 안 긁고 현금으로 결제하겠습니다.”

하하하, 졌네, 졌어.”

전임 대통령이 직접 일어나 30년 산 밸런타인 두 잔에 얼음을 넣어서 들고 왔다.

, 한잔하지.”

감사합니다. 각하!”

뭘 갖고 왔는지 가져온 보따리 좀 풀어 봐.”

각하! Anna 양 건 때문에 청와대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전직 대통령이 마음이 불편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을 말했다.

그래서 지난번 정호길 청장 경질도 양보했잖아.”

각하!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뭐가 따로 있어.”

사실, 청와대도 정호길 청장으로 수습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각하께 체면 때문에 차마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청와대가 각하를 지키느라고 알리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래, 그게 뭔데?”

황 실장 문제입니다.”

아니, 우리 황 실장이 왜?”

지난번 Anna 양 사고에 황 실장이 범행을 사주한 걸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를 정호길 청장이 수사를 중단시킨 거죠. 청와대도 자칫 각하에게 누를 끼칠까 봐 그냥 지나갔던 겁니다.”

그럼, 황 실장을 내놓으라는 거야. 그건 안 돼.”

각하! 각하 심정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청와대가 각하를 지키려면 달리 쓸 만한 카드가 없습니다. 게다가 언론에서 연일 각하까지 들먹이고 있지 않습니까?”

! 이거 참

황 실장을 양보하셔야 각하께서도 이번 일을 깨끗하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결단을 내려주셔야 하겠습니다.

난 청와대가 내 수족을 다 자르려고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 정호길 청장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각하! 정치적으로 접근하시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야?”

“Anna 양 사건은 정치적 관점을 떠나 명백한 테러이자 범죄입니다.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청와대가 언론에서 자꾸 각하가 거론되는 게 부담이 되니까 이를 빨리 해결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전임 대통령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앞에 놓인 양주를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다시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그의 얼굴이 벌게지기 시작했다.

각하! 야당도 이 문제를 들먹거리며 특검 카드를 꺼낼 분위기입니다.”

각하!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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