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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12)

by 훈 작가 2023. 7. 15.

본 이미지는 인토넷에서 내려 받았음

 

분노

  김재형 변호사는 각 언론사 법조팀과 사회부에 기자회견 계획을 알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 여성의 전화 등 유관 단체 관계자들과는 직접 만나 지원을 요청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비롯한 인권변호사 모임을 이끄는 관계자들과도 만나 Anna 문제에 뜻을 같이해 달라고 요청했다. 
  여성 법조인 모임 선후배들과도 접촉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유일하게 여당 소속 여성 정치인들만 Anna 문제에 대해 미온적이었다. 그들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만남 자체를 피했다. 그나마 야당 여성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이기는 했으나 그 숫자가 많지 않았다.

  기자회견 당일 Anna는 오전 일찍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김재형 변호사가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녀는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이라 아니라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당사자라면 얼굴이 공개되는 자체가 두려울 것 같은데 Anna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사무실 직원 인사를 받으며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복도를 걸으며 김 변호사가 말했다.         
“Anna 씨! 오늘 패션이 괜찮아 보여요.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아한 느낌이 있어요. 말로 표현하기 그런데, 기품이라고 할까. 뭐 그런 느낌,”
“왜 이러세요.”
“어머님 닮아서 미모도 그렇고, 이건 불공평해.”
“변호사님! 질투 아니시죠?”
“같은 여자로서 부러움, 뭐 그런 거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열렸다.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서너 명이 타자 두 사람은 지하 주차장에 내려갈 때까지 아무 말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남자들이 먼저 내리고 두 사람이 뒤를 따라 내렸다.
  기자회견 장소로 이동하는 내내 김 변호사는 Anna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부담스러운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여자들끼리 할 수 있는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와중에 그녀가 불쑥 Anna에게 결혼 얘기를 꺼냈다. Anna는 결혼은 두 사람 간의 사랑 문제고 일은 자아(自我)에 대한 사랑 문제라 말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아직 남자를 사랑할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사랑은 좋아하는 감정이고 이기적인 감정이라 그녀의 생각을 말했다. 결혼은 사랑하는 만큼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버려야 하는데 그녀는 그 속에 품고 있는 꿈까지 잃을까 봐 아직은 결혼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두 사람이 회견 장소인 한국 여성의 전화 사무실에 들어섰다. 먼저 회견 장소로 가 보았다. 탁자와 의자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직원 두 명이 기자회견 현수막을 설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때 뒤에서 누군가 김재형 변호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전화 대표를 맡고 있는 박미숙 대표였다. 
“김 변호사! 오셨으면 내 얼굴부터 봐야지 거기서 뭐 해?”
“아이고, 이걸 어쩌나 들켜버렸네.” 
“이것만 하면 모든 준비는 끝이야.”
“박 대표님한테 신세 진 거 어떻게 원수를 갚지.”
“원수는 사랑으로 갚으면 돼. 자, 들어갑시다. 다들 와있으니까.” 
두 사람이 박미숙 대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대표 사무실에 앉아 있던 관계자들이 일어나 김재형 변호사를 맞았다. 김 변호사가 Anna를 일일이 인사시켰다. 그중 한 관계자가 말했다.
“어머! 미국인인 줄 알았는데… 힘내세요. Anna 씨!”
“감사합니다.”
“자, 서 있지 말고 앉아서 얘기합니다.” 
  박미숙 대표가 자리를 권하자 모두 앉았다. 김 변호사가 Anna 사건 개요와 그간의 과정을 참석자들에게 설명했다. 기자회견을 하게 된 배경도 언급했다. 참석자들이 Anna의 아픔을 어두운 표정으로 공감했다. 갑자기 밖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회견 시간이 임박해 기자들이 몰려드는 소리였다. 
  오전 11시. Anna가 관계자들과 함께 회견장에 들어섰다. 맨 뒤쪽 TV 카메라 기자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의자에 앉지 못한 일부 기자들은 앞쪽 밑바닥에 노트북을 들고 앉아 있었다. 몇몇 외신기자들도 눈에 띄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Anna Edward야, 전부 한국 사람뿐인데.”
  회견이 시작되자 사회자가 질문은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먼저 김재형 변호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 변호사는 전임 대통령의 비도덕적 성추행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며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촉구했다.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부당성도 언급하며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전 여성계가 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동석한 한국 여성의 전화와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차례로 성추행 사건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참석자들은 공동으로 Anna 양 사건에 대한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성명서 발표가 끝나자 김재형 변호사가 피해자인 Anna를 소개했다. 그녀가 준비해 온 A4용지 회견문을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꽃뱀이 아닙니다. 저는 전임 대통령 성폭력 피해자 Anna Edward입니다. 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견디다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여자이기에 두려웠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수치스럽고 창피해 어둠 속에 숨어 살다시피 했습니다.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때 소리를 지르지 못했고, 울부짖지 못했는지 미련했습니다. 더 이상 후회하지 않으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를 존중하고 믿고 싶습니다. 
  헌법의 가치는 어떠한 권력도 침해하거나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고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 국민은 어디에 호소해야 합니까? 민주주의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사법부에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추악한 권력과 맞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와 제34조에 의거한 헌법의 가치가 살아 있는지 사법정의에 호소했으나 지난 1심 재판에서 패소했습니다. 사법부는 정황상 일부 피의사실이 인정될 소지가 있기는 하나 이를 증빙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므로 이에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묻고 싶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서 그렇게 판결했나요? 제가 패소한다면 많은 여성은 헌법이 정한 행복추구권을 누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또 누군가 권력에 의해 성폭력이나 인권을 유린당하고도 아무 말 못 하고 음지에서 죄인처럼 살 것입니다.
  저는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외면했습니다. 아니 오만한 권력의 가면을 쓰고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그분이 법의 심판을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제 문제가 한국과 미국 간에 정치나 외교적 문제로 불편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존경하며 모시고 일했던 그분은 인권운동가로, 페미니스트로,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이 나라의 지도자로 많은 국민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도 처음엔 믿을 수 없었고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고 믿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인간은 잘못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완전체가 아닙니다. 자기 잘못과 거짓된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유행하고 있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과 직위를 이용해 거짓을 덮으려는 위선과 오만이 한국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청와대에 조회 시간에‘지기추상(持己秋霜), 대인춘풍(待人春風)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정반대였습니다. 실망이 컸습니다. 국민이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받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왜 저에게 악몽이 일어났는지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의와 공정을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처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 공정, 평등은 모든 사람이 공감할 때 비로소 빛나는 가치입니다. 권력이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은 오만한 권력이 아니라 겸손한 권력을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권력이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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