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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남유럽

플라멩코(Flamenco)

by 훈 작가 2023. 8. 24.

‘정열의 도시’라 불리는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고장이다. 플라멩코(Flamenco)와 플라밍고(Flamingo)는 다르다. 자칫 이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 나도 한 사람이다. 플라밍고(flamingo)는 서남아시아 · 유럽 남부 · 아프리카 등지에 서식하는 홍학과 새를 플라밍고라고 한다. 한글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이를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플라멩코(Flamenco)는 19세기 집시(Gypsy)들의 음악과 춤을 일컫는다. 집시(Gypsy)는 코카서스 인종의 유랑 집단을 말하며, 현재는 유럽을 중심으로 마차를 타고 다니며 점쟁이, 땜장이, 조련사, 가축 중개인 등의 일을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 

14세기부터 발전한 플라멩코(Flamenco)는 집시·안달루시아인, 아랍인, 유대계 스페인인의 민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플라멩코는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내려온 춤 (Baile), 노래(Cante)와 기타 (Guitarra) 세 파트로 구성된 민속예술이다. 주로 집시들과 가난한 하류층 서민들이 즐기던 음악과 무용이 접목된 예술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가진 형태로 구분된다. 현대에 들어서는 세 파트가 모두 합쳐진 형태보다 플라멩코 스타일의 기타 음악이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플라멩코는 집시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매우 열정적인 춤으로 구두가 마루에 닿아 내는 소리(사파테아도)와 연주자들 사이에 앉아 손뼉으로만 장단을 맞추는 점이 특징이다. 플라멩코를 출 때 남성들의 발놀림은 발끝과 뒤꿈치로 탁탁 소리를 내는 것을 포함해 복잡하게 펼쳐진다. 여성들의 춤은 전통적으로 발놀림보다는 손과 전신의 아름다움에 의존한다. 특히 '심오한 춤'의 팔·손·발동작은 인도 고전 춤의 동작과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플라멩코(Flamenco) 공연장을 찾은 시간은 해가 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세비야의 명소 세비야 대성당, 히랄다 탑, 스페인광장을 구경하고 해 질 무렵 황금의 탑을 둘러보고 나니 오후 6시가 다 되었다. 공연은 저녁 6시 30분부터 시작되어 밤 8시 30분에 끝날 예정이다. ‘EL PATIO SEVILLANO’라는 플라멩코(Flamenco) 공연장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공연장이었다. 공연장 객석의 불은 꺼지고 무대 쪽만 조명이 들어왔다. 조용한 침묵이 흐르면서 집시(Gypsy) 특유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기타를 연주하는 두 남성이 의자에 앉아 있다. 기타를 치는 두 명의 남자 옆에 두 명의 남자가 서서 구슬픈 가락의 노래를 부른다. 기타 줄에 튕기는 리듬이 강하게 가슴속으로 강렬하게 파고든다. 아주 잘 다듬어진 선율에 담긴 리듬이 객석을 휘감아 돌더니 이내 객석 분위기를 침묵으로 가라앉힌다. 그 선율 속에 묻은 노랫소리가 귓전을 진동시켰다. 이어 구슬픈 노랫소리가 흉금을 두드렸고 슬픈 표정의 무희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가냘픈 몸매의 댄서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절도 있고 격렬한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강약에 맞춰 현란한 동작을 선보인다. 무희가 입에 물고 있는 한 송이 장미는 집시(Gypsy) 여인의 애틋한 사랑과 정열이 함축된 상징처럼 보였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조명 빛에 묻어 반짝인다. 손동작의 선율, 때로는 캐스터네츠로 박진감을 더하기도 하고 부채를 접었다 폈다가 하면서 화려하게 춤 동작이 무대 위를 수놓았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플라멩코 의상이다. 치마 밑단의 주름장식은 마치 공작 깃털처럼 굉장히 풍성한 데다가 길어서 무게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이런 옷을 끌고(?) 다니는 것만 해도 힘들 텐데 입고서 춤까지 추다니! 무게도 무게지만 댄서가 격렬하게 돌면 치마가 다리를 휘감는데,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다리가 꼬여 꼼짝 못 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조바심마저 들었다. 치마가 다리를 친친 휘감을 찰나, 그녀들은 발로 치마를 탁 찬다. 그녀들의 숙련된 율동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게다가 플라멩코 의상은 또 얼마나 관능적인가! 상체와 엉덩이 부분은 꽉 끼고, 치마 밑단의 풍성한 주름장식은 춤 동작에 맞춰 치마를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며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을 살려낸다. 허리를 뒤로 젖히거나 몸을 휘는 동작 또한 유혹적이다. 플라멩코는 여성의 춤이지만, 응축된 에너지를 폭발한다는 점에서는 마초 이미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거기에 곡선을 드러내는 춤으로 여성의 관능미를 극대화한다고나 할까. 투우사가 뿜어내는 강렬한 이미지에 필적하는 강렬한 유혹의 춤이다. 

세비야가 ‘정열의 도시’라는 별칭을 달게 된 것은 플라멩코(Flamenco)의 영향이 크다. 붉은 드레스와 격정적인 춤사위, 스페인 예술의 꽃으로 대변되는 플라멩코의 발원지가 바로 안달루시아 지방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플라멩코를 단순히 춤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플라멩코(Flamenco)는 본래 칸테(Cante)라 불리는 노래 위에 바일레(baile·춤), 토케(toque·음악적 기교), 할레오(jaleo·손뼉과 추임새)가 합쳐진 종합예술이다. 

플라멩코(Flamenco)는 흔히 집시의 음악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집시(Gypsy) 민족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플라멩코(Flamenco)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시(Gypsy)만의 음악이 아니라고 한다. 이베리아반도에 집시(Gypsy)가 처음으로 이주한 것은 15세기경. 인도 라자스탄을 떠나 유럽의 끝까지 건너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환영이 아니라 핍박과 냉대였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집시(Gypsy)들의 한(恨)과 운명 그리고 그들이 핍박받았던 숙명과도 같은 삶을 그들은 그렇게 춤으로 승화시켜 플라멩코(Flamenco)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러나 이 땅에서 비참했던 것은 비단 집시 민족뿐만이 아니었다. 그라나다를 마지막으로 아랍 왕조가 무너지면서 무어인들은 800년 동안 빚어온 삶의 터전을 잃었다. 유대인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톨릭 왕조의 탄압을 피해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동굴에 숨어서 견뎌내는 것뿐. 그들은 절망으로 울부짖고, 땅을 구르며 증오와 갈망을 표현하고, 팔을 휘저으며 고통을 이겨냈다. 그러니까 플라멩코(Flamenco)는 이 땅에서 설움에 몸부림쳤던 민족들의 슬픔과 각자의 문화, 그리고 안달루시아의 토착문화가 융합된 결정체다. 

진정한 플라멩코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안달루시아 대지의 귀신인 ‘두엔데’를 넣어야 한다고 한다. 정확히 ‘두엔데’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 이는 없지만, 무엇인지는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정서인 ‘한(恨)’을 딱히 설명할 길이 없지만 마음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달루시아에서도 플라멩코(Flamenco)의 본고장이라 주장하는 세비야에는 크고 작은 공연장이 즐비하다. 하루 전 예약한 후 오후 느지막이 공연장을 찾아야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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