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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남유럽

파도가 아니라 파두(Fado)

by 훈 작가 2024. 1. 24.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여행에 나서면 생소한 문화와 만나게 된다. 그 생소함이 여행자를 당혹스럽게 만들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당혹스러움은 무식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그런데 가이드는 그것을 아는 전제로 말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속으로 얘가 무얼 말하는 거지, 하면서 겉으로는 애써 고개만 끄덕인다. 나만 그런 걸까 하고 눈치를 본다. 그러나 다른 사람 표정을 봐도 잘 모르겠다. 이럴 땐 침묵이 최고다.

 

리스본에서 처음 만난 가이드가 파두(Fado)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의 내가 경험했던 일이다. 처음에는 ‘파도’라고 들렸다. 뜬금없이 ‘파도라니?’ 갑자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는 것처럼 들렸다. 솔직히 말하면 통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속으로 이 자식이 너무 잘 난 척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기야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였던 아닌가. 그저 침묵을 신앙으로 여기며 듣기만 열중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리스본 시가지를 막 벗어나자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투어버스 안에서 포르투갈을 여행하려면 3가지는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하늘에 있는 태양의 빛이고, 둘째는 에스프레소(커피)이며, 셋째가 “Fado”였는데, 나는 이 “Fado”를 대서양의 파도 정도로 알아들었다. 무지의 결과가 빚은 착각이다. 그것도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야말로 포르투갈 전통음악의 장르인 파두(Fado)를 바보처럼 엉뚱하게 이해한 것이다.

 

가이드는 ‘리스본’에서 ‘까보다 로카’로 가는 버스 안에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음악인 파두(Fado)를 들려주었다. 슬픈 단조로 리듬에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Fado)는 포르투갈의 역사가 녹아있는 음악이다. 잘 모르지만, 무엇인가 애달픈 사랑의 한이 맺혀 있는 것 같은 노래로 들렸다. 우리나라 전통의 “한(恨)과 비슷한 정서”라고 하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들렸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Fado’는 무엇보다 포르투갈 민중의 한을 담은 구슬픈 가락이 특징이다. 가히 그 애절함은 젊은 세대들이 들을 때는 청승맞다고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청승은 파두의 분위기를 압축한다. 파두는 '숙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툼(fatum)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뱃사람의 노래'라는 이야기를 비롯해 죄수의 노래, 브라질과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래라는 둥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음악인 모디냐(Modinha)의 영향과 인접한 아프리카의 요소가 오랜 세월에 걸쳐 영향을 준 사실이 분명해 보이는 음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아랍 문화의 영향이다. 8세기 초반 포르투갈의 이베리아반도는 아랍 무어인의 침략을 받아 550여 년의 지배를 받았다. 파툼(fatum)에 이슬람인 삶의 의식이 깃들어 있듯이 포르투갈에는 이슬람의 문화가 산재해 있다.

 

애초부터 숙명적인 정서를 토대로 한 ‘Fado’가 한층 애조를 띠게 된 것은 격동의 포르투갈 현대사와 무관하지 않다. 1932년부터 1968년까지 36년간 포르투갈은 재정학자 출신인 안토니우 살라자르의 철권 독재 통치 아래 신음했다. 국민적 저항을 무력화하고 관심을 정치 아닌 딴 곳에 돌리기 위한 일종의 우민화 정책으로 그는 축구(football) 종교(fatima) 그리고 파두(fado) 이른바 3F 정책을 폈다. 정치적 경제적 고통과 절망에 눈물을 흘린 포르투갈 사람은 파두에 더욱 그들의 슬픔을 아로새길 수밖에 없었다. 독재정치 하에서 '사우다데'는 국민적 정서로 내재화되었다. (인터넷에서 옮김)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남자는 운명적으로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을 뒤로한 채 바다로 떠나야 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을 보고 싶어 불렀던 노래에는 여인의 한이 담겨있다. 그래서 Fado를 잘 감상하려면 포르투갈 사람들의 정서인 ‘Saudade’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곧 ‘그리움, 향수, 갈망, 애틋함’ 같은 뜻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이 바다와 살아온 애환을 모두 담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가이드 설명으로만 ‘Fado’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듣고 넘어간다. 그냥 이런 게 포르투갈에 있나 보다 하는 정도다. 어쩌면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지루한 시간을 대체하려고 설명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fado’는 감성에 숨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다만, 그 차이는 문화에 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좀 더 깊은 여행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스쳐 지나가는 패키지여행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달리 생각하면 ‘Fado’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여행은 의미가 있다. 이런 면에서 여행은 ‘Tour’ 개념을 벗어나야 한다. 아쉽지만 우리의 여행 문화는 한계가 있다. 그게 현실이다. 시간적인 면도 그렇고 경제적인 면도 그렇다. 이 때문에 기성세대의 패키지여행보다 MZ세대의 배낭여행은 가치가 있다. 그저 젊음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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