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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남유럽

벨렘 탑

by 훈 작가 2024. 1. 17.

벨렘탑

 
리스본의 젖줄인 타호강이 눈길을 끈다. 그 위로 회색 구름이 띄엄띄엄 지나가고 있다. 기울어진 해가 구름을 타고 타호강을 내려다본다. 우리는 광장 한쪽 한적한 곳에 내렸다. 앞서가는 가이드를 따라 타호강을 걷다가 벨렘 탑이 있는 곳에서 다 같이 멈추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오후 태양이 만든 역광 때문에 벨렘 탑의 모습과 그 주변 관광객들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그림자로 다가왔다. 강가엔 조그만 성루가 보였고 탑의 아래쪽이 강물에 잠겨 있다. 벨렘 탑 쪽으로 그리 길지 않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탑은 3~4층 높이다. 탑 왼쪽 선착장에 요트들도 눈에 띄었다. 

수신기를 귀에 꽂았다. 가이드 목소리가 들린다. 설명도 들어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한다.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머리가 아프다. 한꺼번에 두 가지를 다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들어야 기행문을 쓸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벨렘탑


길지 않은 설명이 끝났다. 주어진 자유시간도 짧을 것 같다. 두바이에서 비행기가 제시간보다 늦게 출발한 탓이다. 이 때문에 가이드도 서두르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기야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려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이해는 되지만, 여행자로서는 불만이다. 그냥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여행은 소비지를 우롱하는 거다. 

모두 인증 사진을 담느라 바쁘다. 벨렘 탑을 배경으로 아내의 사진을 먼저 찍었다. 그런데 역광이라 만만치 않다. 검게 나오는 것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한 장만 제대로 찍었다. 기행문에 담을 사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역광 때문이다. 참으로 답답한 시간이 지나간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좀 둘러보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자유시간을 주지 않는다.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아무도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2시간이나 늦게 이륙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비행기가 뜰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여기며 마음을 다스렸다. 

벨렘탑


3층의 벨렘 탑은 1층은 19세기까지 정치범 수용소로, 2층은 포대로, 3층은 망루 및 세관으로 사용되었고, 리스본의 벨렘지구 타호강 변에 남아 있는 포르투갈 전성시대의 유적이다. ‘타호강의 귀부인’이라 불리며, 등대이자 요새였다. 이곳에서 탐험가들은 미지의 세계로 떠났고, 먼 항해에서 돌아온 탐험가들 또한 이곳에서 내려 왕을 알현했다. 

마누엘 1세에 의해 1515년 테주강 위에 세워진 탑으로 지금은 강물의 흐름 때문에 탑이 강물 위로 노출되어 있다. 원래는 외국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며 통관 절차를 밟던 장소였다고 한다. 스페인 지배 당시에는 정치범과 독립운동가들을 지하에 가두었던 물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는 내부 관람이 가능하며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왕의 거처였던 벨렘은 16세기 초 마누엘 양식의 건축물로 유명한데, 특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499년 마누엘 1세 때 건립된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1515~1521년에 타구스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립한 흰색의 벨렘 탑이 타우가의 명소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4월 25일 다리(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아쉬움을 남기고 투어버스가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타호강에 걸쳐진 다리가 보인다. 아쉬움을 달래 주듯 가이드가 다리에 잠깐 설명했다. 그도 미안한 모양이다. 얼굴이 편치 않은 듯 보이는 표정이 그의 마음을 엿보는 듯했다. 다리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이내 타호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타호강은 스페인 중부에서부터 대서양으로 흐르는 1,008km에 이르는 강이다. <4월 25일 다리>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아주 흡사하다. 길이는 2,278m다. 가이드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만든 회사에서 1966년에 건설했고, 완공 당시, 독재자 이름을 붙여 <살라자교>라고 명명했다가 1975년 4월 25일의 민주화 혁명을 기념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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