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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아찔한 작업

by 훈 작가 2023. 9. 23.

영화 클리프 행어는 산악구조대원으로 일하던 게이브가 로키산맥에서 조난 당 한 동료 핼의 애인인 사라를 구하러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관람객은 눈을 떼지 못한다. 아찔하다. 주인공은 자일 하나에 의지해 살고 싶어 외줄에 매달려 몸부림치는 사라의 손을 잡지만 놓치고 만다.  순간 내 마음은 사라와 같이 공포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영화 버티칼 리미트 오프닝 장면도 비슷했다. 크루즈 피터와 애니남매는 세계 최고 등반가인 아버지와 모뉴멘트 밸리 암벽 등반에 나선다. 그들이 정상을 향하던 도중 한 대원의 실수로 모두 아래쪽에 있던 애니의 자일에 매달리게 된다. 자일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칼로 줄을 자르라고 외친다. 그렇지 않으면 다 죽기 때문이다.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아버지는 스스로 줄을 끊는다. 다른 영화는 모르겠는데  두 장면 모두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 영화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아침에 본 아찔한 장면 때문이다. 무심코 거실 창문 밖을 보았다. 외줄에 매달린 사람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베란다로 나가 자세히 보았다. 207동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내가 직접 하는 것도 아닌데 오금이 저려 온다. 고소공포증 때문이다. 어떻게 외줄 하나에 의지해 도색작업을 할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죽어도 못 할 것만 같다.

 

위험천만한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안전한 상황 같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작업자는 능숙하게 좌우를 오가며 아파트 외벽에 페인트칠하는 작업을 아무렇지 않은 듯 멈추지 않았다.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아파트 외벽에 딱 붙어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물론 전문적으로 하는 작업이기에 안전조치는 충분히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보는 사람 눈에는 그 장면이 너무나 아찔해 보인다.

이후로도 베란다를 몇 번을 들락거렸다. 그가 안전하게 끝냈나 궁금해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무사히 작업을 끝내고 돌아간 모양이다. 그가 페인트칠한 아파트 건물만 깔끔하게 단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험하고 아찔해 보였던 작업이 보지 않아 마음 편했다. 사실 남의 일인데 왜  내가 불안했는지 모른다.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신림동과 정자동 쇼핑몰 사건이 TV 화면에 나올 때도 그랬다. 나도 모르게 소름 돋고 내 일처럼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산다. 좋은 것만 보고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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