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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가까운 사이일수록

by 훈 작가 2023. 9. 30.

/추운 겨울날,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의 바늘이 서로를 찔러서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추위는 다시 고슴도치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서로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고슴도치들은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거나 잠을 잔다고 합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최고의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

 

위 이야기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나오는 우화로 <고슴도치의 딜레마> 용어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실제 고슴도치 한 마리에 보통 5천 개의 가시가 있다고 합니다. 고슴도치는 이렇게 많은 가시를 가지고도 서로 사랑을 하고 새끼를 낳고 산다고 하는데,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가시와 가시 사이를 조심스럽게 잘 연결해서 서로 찔리지 않도록 사랑을 나누어서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람은 친밀도에 따라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한답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가족이나 연인끼리 허용하는 친밀한 거리는 0.45m, 친구나 지인에게 허용하는 개인적 거리는 0.45~1.2m, 친하지 않은 사람(업무 관계, 낯선 사람)이 접근을 허용하는 사회적 거리는 1.2~3.6m, 대중연설같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공적인 거리는 3.6m 이상이라고 합니다.

 

요즘도 만원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와 앉으면, 반사적으로 몸을 반대로 피하게 됩니다. 신체적 접촉이 되면 불편하거든요. 이럴 때 보통의 경우 팔짱을 끼거나 핸드폰을 보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공간'에 다른 사람이 침입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불쾌하게 느끼는 것을 속으로 감추고 참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가시를 갖고 있습니다. 이 가시가 상대방을 찌를 때 상처를 줍니다. 어쩌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특히, 연인 사이라면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게 되면 세상은 장미꽃처럼 아름답지만, 실연당하면 가시에 찔린 것처럼 상처받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아픔과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우린 그걸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슴도치 딜레마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시가 있더라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안아줄 수 있을까? 바로 그것은 배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사랑의 거리를 좁히는 좋은 방법일 겁니다. 그것이 연인이 지향해야 할 사랑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가까울수록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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