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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야경 사진

by 훈 작가 2023. 9. 6.

서울야경은 아름답다. 한 여름밤 남산타워 회전 전망대 식당에서 본 야경이 그랬다. 후암동에서 하숙하던 시절이었다. 하숙집 노총각 3인방이 우연히 의기투합에 간 곳이 남산타워였다. 주말이면 산책 삼아 남산을 자주 찾았다. 남산 식물원 뒤쪽 길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면 숨이 찼다. 하지만 탁 트인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가슴이 시원해졌다. 하숙집에서 팔각정까지는 15분이면 충분했다. 등산이 취미였을 때다. 직장 내 산악회 회원이기도 했고, 나 홀로 등산도 자주 다녔다. 그러다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그때 사진을 좀 배웠다면 프로 수준의 경지에 이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행 때문에 카메라를 샀다. 그러나 카메라는 장롱에 있는 날이 많았다.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카메라를 손에 쥔다. 여행 가서 사진을 찍을 때도 그냥 자동으로 세팅하고 누른다. 디지털카메라는 설명서를 대충 읽어 보고, 셔터를 눌러도 잘 나온다. 굳이 뭘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아쉬운 대목이다.

서유럽 여행 때였다. 파리야경이 아름답다는데 제대로 찍지 못했다. 마음 같지 않았다. 사진에 대한 무지의 결과다. 그때는 전혀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동유럽 여행 때 부다페스트 도나우강과 프라하 야경도 그런대로 찍을 수 있었다. 미 서부 여행 라스베이거스의 야경도 어려움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가이드들이 흔하게 하는 말이 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즐거움이 커지는 법인데 사진에 관해 관심이 없었던 탓에 지난 시절 멋진 사진을 많이 즐기지 못한 것이다.

슈퍼 블루문이 뜬다는 지난 8월 31일, 달 사진을 찍기엔 날씨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이 아니면 14년 이후에 볼 수 있다기에 집을 나섰다. 달 사진을 검색해 보면 거의 똑같다.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 명절 때 사진을 찍어 보니 특별할 게 없다. 차라리 야경 포인트가 좋은 곳에서 사진을 즐기는 게 낫다 싶었다. 하지만 야경 사진도 날씨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물빛에 반영된 야경 사진은 같은 장소, 같은 위치에서 여러 번 찍어도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바람이 잔잔하길 기대하면서 먼 도심의 마천루를 바라보았다.

흐릿한 구름으로 덮인 밤하늘, 호수 위로 일렁이는 바람의 숨결, 그 위로 춤추는 빌딩의 불빛이 아름답다. 잔바람이 멈추길 기다리며 숨죽이다 셔터를 눌렀다. 그러길 반복한다. 어느 순간 잡아낸 찰나의 시간이 아름다운지 나는 모른다. 사진은 기다림 속에 건지는 나와의 싸움이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다. 어떤 때는 수십 장, 많을 땐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달 대신 야경을 그렇게 카메라에 담았다. 

야경 사진은 어둠과 빛을 극명하게 대비되어 찍힌다. 낮과 달리 자연의 빛이 아닌 인공의 빛이다. 어둠은 단지 배경이다. 빛은 어둠 속에 도드라지게 표현된다. 태양이 지배하는 시간은 빛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밤은 피사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절실하게 느낀다. 렌즈로 잡아낸 빛을 어설프게 다루면 야경 사진은 엉망이 된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빛을 다루어야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어차피 사진은 빛을 담아내어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미학이다. 이것이 인중 샷과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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