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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34)

by 훈 작가 2023. 9. 24.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배신(背信)

  전임 대통령은 특검의 칼날을 피했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기습을 어쩌다 당했다. 그것도 자신이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 당선시킨 후임자에게 말이다. 불과 청와대를 나온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그는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었다.
“이봐, 김 대표! 이참에 새살림 차려야겠어.”
“저도 청와대가 배신할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각하!”
“창당 자금은 걱정하지 말고, 조속한 시일 내 창당 준비 작업을 해야겠어.”
“알겠습니다.”
“창당 발기인 대표는 자네가 맡아. 이제 자네도 여의도에서 중진의원 아닌가. 큰 꿈을 한 번 키워 볼 때가 되었잖아. 지금이 딱 기회야.”
“저는 각하처럼 카리스마가 없어서…” 
“이 사람아! 지금 청와대 주인은 카리스마가 있어?” 
“…”
“여의도에 돌아가면 우리 쪽 의원들 하고 세부적인 창당계획을 짜라고, 언론에도 미리 정보를 흘려놔.”
“미리 정보를 흘려도 될까요?”
“무슨 소리야. 이번 특검 추진에 대한 부당성을 부각하면서 정치적 도리를 벗어난 행위로 청와대로 책임을 돌려야지.”
“잘 알겠습니다. 각하!”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청와대와 야당의 야합으로 책임을 돌려야만 해, 알겠어? 특히, 이쪽에 붙을까? 저쪽에 붙을까? 눈치 보는 의원들은 불법 정치자금 카드로 은근히 압력을 넣으라고, 내가 쥐고 있는 국정원 정보를 언론에 흘리면 다 끝이잖아. 말 안 듣는 의원들은 내게 보고해 알아서 마음 돌리게 할 테니까. 어디까지나 정치는 세력(勢力)이야, 세(勢)에서 밀리면 이길 수가 없거든.”
전임 대통령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계속 말을 이었다.
“창당(創黨)에 대한 명분과 이념을 아주 그럴듯하게 논리 만들어야 해.”
“그럼 돌아가는 대로 창당에 필요한 세부 계획을 수립하여 각하께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서둘러서 추진하도록 해.”
전임 대통령이 봉투를 하나 내밀며 말을 이었다.
“우선 이거 갖고 여의도나 영등포 쪽에 사무실 하나를 얻으라고. 아마 창당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자금이 더 필요할 거야. 그리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황 실장 후임으로 온 최 실장을 통해 수시로 연락해.”
  이합집산(離合集散)의 조짐이 여당 내에서 일기 시작했다. 권력 기반에 균열이 생기면서 크게 여의도는 크게 요동쳤다. 여당의 분열은 특검이 무산되면서 이미 예고된 상태였다. 피할 수 없는 배신의 행렬에 여당 의원들은 어느 쪽으로 줄을 서야 할지 정치적 이해관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도 탈당 의원들을 만류하는 물밑 작업에 착수했다. 양측 간 의원들을 포섭하는 움직임이 뜨거워진 것이다. 청와대는 정무수석을 중심으로 동요하는 의원들을 접촉하면서 그들의 약점을 공략했다. 기업이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의원들을 향해서 세무조사 카드로 은밀히 압박했다. 

  대통령 집무실에 비서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이 모였다. 비서실장이 전임 대통령 쪽 동향을 보고하자 민정수석이 입을 열었다.
“현재까지 여당 내 상황을 보면 세무조사 카드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걸로 보입니다. 신당 창당에 동조했던 일부 의원들이 주저하고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가세했다.
“일단 세무조사 카드로 탈당을 막는 데까지 막아야 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부동산 문제나 재산증식을 위한 위장 전입이나 불법 증여, 탈세 등 다양한 카드로 탈당 움직임을 보이는 의원들을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정무수석도 비서실장 의견에 동조하며 말을 꺼냈다.
“의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아킬레스건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의원 자녀들의 병역 비리나 대학 입학 등 불법이나 위법 여부를 철저하게 조사해서 탈당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참모들의 의견에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민정수석이 불쑥 뜬금없는 의견을 꺼냈다.
“이왕 이렇게 사태가 커졌는데 저쪽의 기를 꺾으려면 조금 더 강한 카드로 맞서는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물었다.
“어떤 카드인데요?”
“전임 대통령 처가 쪽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입니다.”
“만약 그 카드를 꺼내면 저쪽에서 같이 죽자고 폭탄선언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정무수석이 제동을 걸며 나섰다.
“세무조사 카드는 좋은 카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유가 뭐죠?”
민정수석의 질문에 정무수석이 우려스러운 듯 대답했다.
“양평 쪽에서는 이미 세무조사 카드에 만반의 준비를 다 했을 겁니다. 탈탈 털어서 빈손으로 끝나면 오히려 역공의 명분만 제공하는 셈이 될 겁니다. 잘 아시다시피 전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정무수석 말이 맞는다. 양측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예상치 못한 문제가 돌출할지 모른다. 바로 정치자금 문제다. 그것은 파국을 의미한다. 나라 전체가 용광로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듣고만 있던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정치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게 본질인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다 보면 공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정치가 배신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해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이 모두가 저의 부덕(不德)이죠. 제가 전임자의 지원에 힘입어 청와대에 들어오다 보니 Anna 양 사건을 너무 가볍게 판단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단호하게 정치적 의리를 고려하지 말아야 했는데 결단을 내리지 못한 저의 책임입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마저 듭니다.…”
대통령이 심경이 고통스러운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전임 대통령의 반발은 어차피 예상되었던 문제입니다. 그쪽으로 갈 사람은 붙잡지 맙시다. 차라리 내년 총선에 대비하여 참신하고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여 영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읍시다. 구시대 정치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회의 분위기를 살피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현 상황을 보면 분당과 신당 창당은 기정사실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당이 둘로 갈라지면 향후 국정을 이끌어 가는데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려하는 상황이 현실이 될 경우에 대비해 야당과의 합당 카드도 미리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석자 모두 놀란 표정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역발상이었기 때문이다. 침묵이 흘렀다. 합당은 고도의 정치적 전략과 분석이 따르는 문제다. 대통령이 이에 대해 방향을 정리했다. 
“합당은 정치적으로 이념과 가치가 맞아야 하는데 근본부터 다르니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새로운 인재 영입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서 앞으로 총선에 대비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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