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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32)

by 훈 작가 2023. 9. 18.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요한 신부
  
   Susan은 특검이 부결된 후 딸의 표정에서 실망을 읽었다. 딸이 예전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그림자가 있어 보였다. 아직 정신적으로는 사고의 충격을 다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Anna가 김재형 변호사와 저녁 식사하러 나간 후 혼자 남았다. 여전히 딸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Anna를 지켜보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Susan이 거실 창 쪽으로 다가가 화창한 봄 하늘을 바라보았다. 
  요한 신부님이 생각났다. 샌프란시스코 그레이스 성당에 다닐 때 일이다.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어 성당을 다녔다. 요한 신부님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동양계 여성이 늘 미사만 마치고 조용히 성당을 빠져나갔다. 
  어느 날 요한 신부님이 Susan을 불렀다. 신부님은 혼자 오는 Susan을 보고 커피 한 잔 나누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당시 자연스럽게 자신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후 요한 신부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Susan은 미소를 되찾기 시작했고, 신도들과도 어울렸다. 신도들에게 자신이 소아과 의사라고 직업을 말하자 그들이 일부러 자기 자녀를 데리고 와 진료 상담을 하는 등 도움을 주었다.
  남편을 그때 만났다. 그를 평범한 신도로 알고 지냈다. 그러던 남편이 어느 날 청혼을 했다. Susan은 거절했다. 남편은 왜 거절하는지 이유를 말해 달라고 했다. Susan은 당신의 아내가 되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말했다. 
  남편은 포기하지 않았다. Susan은 고민 끝에 청혼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판도라의 비밀을 신부님에게 말했다. 요한 신부는 이해하며 위로해 주었다. 남편이 한동안 나타나지 않자 Susan은 그가 청혼을 단념한 줄 알았다. 
  포기한 줄 앗았던 남편이 다시 나타나 재차 청혼했다. Susan은 망설였다. 남편의 사랑이 진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래전 교사였던 아내와 사별했고 하나 있는 아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농장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Susan은 신부님을 찾아 고민을 털어놓았다. 신부님이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판도라의 진실 때문인지 물었다. 그게 이유라면 하나의 다짐을 약속하고 청혼을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다고 신부님이 말했다. 그것은 사는 동안 판도라 상자를 절대 열지 않겠다고 주님 앞에 맹세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다. 지금까지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남편에게 판도라의 진실을 숨기는 게 죄짓는 기분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Ann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밖에 없다.
  그러기 전에 남편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John Edward도 마음이 복잡했다. 한국 내 정치 상황은 격랑 속에 빠져든 상태다. 스티브 대사와 의견을 나누어 보았으나 묘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Anna 2심 재판도 흐지부지 패소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청와대는 스티브 대사를 통해 한 차례 만나자고 연락이 왔었다. 그러나 스티브는 아직 면담 제의를 수용할 때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이 신뢰할 만한 카드를 보이지 않는 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스티브 판단이 맞았다. 그들은 뭔가 보여주는 척 시늉만 했다. 특별수사본부 발표는 알맹이가 없었다. 다만 특검법(안) 추진은 기대할 만한 카드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결되었다.
  그가 스티브 대사와 Anna 문제를 논의하고 있던 시간에 전화가 왔다. 아내가 단둘이 저녁을 함께하자는 말에 잘됐다 싶었다.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전화를 한 것이다. 
“여보! 지금 출발했으니 10분 후에 봐요.”
“알았어요. 여보!”

  남산타워에 옅은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하늘은 스모그 현상으로 흐렸다. 뿌연 미세먼지가 엉겨 붙은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Susan과 John이 7층 프렌치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시가지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직원이 다가와 이름을 확인하고 테이블로 안내했다. John이 “와~우!”하고 탄성을 질렀다.
 “Fantastic!”
John Edward가 돌아서며 Susan에게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Susan! 날 위해 깜짝 이벤트를 한 거야?”
“그럼 누굴 위해서 해요.”
“예약한 메뉴로 준비해 드릴까요?” 하고 여종업원이 Susan에게 묻자 Susan이 바로 “예”라고 말했다.
“여보! 왜 나한테 물어보지 않고 주문하는 거야.”
“오늘 여기 간다니까, Anna가 랍 스타 요리를 시키라는 거예요.”
“왜?”
“Anna가 당신이 좋아하는 거니까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John이 Anna라는 말에 표정을 바꾸었다. Susan은 남편을 보며 싫으면 메뉴를 바꾸겠다고 하자 그럴 필요 없다는 듯 John이 말했다.
“그래, Anna가 그렇다면 먹을 만하겠군.”
“Anna 말이라면 무조건 패스잖아요. 그래서 물어보고 시킨 거예요.”
“여보! 미안 난 그런 줄 몰랐어. 어쨌든 여기 너무 좋은데.”
“당신이 실망하면 어쩌나 했어요?” 
“확실히 내가 당신을 만나건, 신이 내리 신 축복이야.”
“여보! 그 말 뻥 아니죠?”
“뻥이라니? 진심이야. 진심”
요리가 나오자, Susan이 오늘은 자신이 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John은 뜻밖의 서프라이즈에 기분이 좋았다. Susan은 어떤 타이밍에 판도라 얘기를 꺼내야 할까 생각하며 남편의 분위기를 살폈다.
“여보! 맛은 어때?”
“To top it off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네.”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요?”
“환상적인 야경, 맛있는 요리, 그리고 당신이 있잖아.”
남편은 기분이 좋은 듯 말을 이어갔다.
“사실, 마음이 심란했거든.”
“Anna 문제 때문이죠?”
“맞아, 뭔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했는데 당신이 이렇게 이벤트를 해주니 내가 감동을 할 수밖에 없지.”
“당신이 만족스러워하니 저도 고마워요.”
“그런데 당신 아까부터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Susan은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말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녀가 마음속으로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말을 꺼냈다. 
“저~, 당신한테 용서받을 일이 있어요.” 
“뜬금없이 용서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전 당신한테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아니, 당신 오늘따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여보! 이 말만은 평생 않겠다고 주님 앞에 맹세했는데 더 이상 숨기는 건 당신에게 죄짓는 것 같아 말해야겠어요.”
순간 John은 감을 잡고 말했다.
“판도라 얘기 아냐?” 
Susan이 깜짝 놀라 말을 하려다 말고 남편을 보았다.
“여보! 판도라 얘기라면 하지 않아도 돼. 다 알고 있으니까.”
“다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그레이스 성당 기억나?”
“물론이죠. 당신을 처음 만난 곳이니까.”
“난 평생 잊을 수 없어.” 
“…”
“그때 당신이 청혼을 받아주지 않아 너무너무 괴로워 요한 신부님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어. 신부님께서 누구냐 묻더군. Susan 당신 얘기를 했지. 신부님이 아무 말하지 않고 오늘은 그냥 돌아가라고 하시더군.”
“…”
“난 그냥 올 수밖에 없었어. 신부님을 이해할 수 없었지. 다음에 다시 찾아갔는데, 신부님이 진실로 Susan을 사랑하는지 더 고민해 보고 오라고 말씀하시더군.”
“…”
“또 그냥 돌아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 봐도 생각이 바꾸지 않더군.”
John이 멈칫하며 창밖을 보았다. 얼마 동안 서울의 밤을 내려 보다 다시 말했다. 남편의 눈가에 이슬이 보였다.
“신부님을 다시 찾아갔지, Susan 때문에 왔냐며 웃으시더군.”
“웃으셨다고요. 신부님이?”
“그냥 웃으시며 날 쳐다보시기만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말했지. 신부님! 제가 이 여자에게 너무 미친 건가요? 하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아니야, John! 그 정도면 자넨 자격이 있어. Susan을 아내로 맞아 평생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시면서 나에게 약속을 하나 해줄 수 있냐고 묻더군. 난 두말하지 않고 대답했지. 그리고 판도라 얘기를 들었어.… 지금 자네는 주님 앞에 맹세한 거라네… 그러니 앞으로 Susan 입에서‘판도라’라는 말이 나오면 절대 듣지 말라고 하셨어. 그러면 평생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거라고.”
John이 오른손을 뻗어 아내의 손을 잡았다. 
“여보! 당신이 왜 판도라 얘기를 하려는 지 알아. 당신 운명이지. 난 남편으로서 당신의 상처를 건들지 않고 Anna 문제가 해결되기를 노력했는데 그게 내 마음 같지 않네. 미안해, 여보! 당신의 그것만은 내가 지켜주고 싶었는데… 내가 단숨에 서울에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야. 그걸 막아주고 싶었어.” 
  Susan의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심장이 뛰었다. 남편의 말에 입술이 떨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마음속의 언어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진실의 언어를 찾지 못했다. 표현할 수 있는 게 눈물밖에 없었다. 
“…”
Susan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간 핸드백에서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Anna 전화였다. Susan이 다급하게 감정을 추스르며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야.”
“으-응, 저녁은 맛있게 먹었니?”
“그럼, 먹었지. 엄마는?”
“지금 먹고 있어.”
“좀 늦었네.”
“그나저나 변호사님한테 안부 좀 전해주지 그랬어.”
“당연히 했지.”
“지금 대사관저로 오는 중이니?”
“아니.”
“그럼, 어디야?”
“오피스텔이야, 너무 오래 비워놓은 것 같아서 와 봤어.”
“그래”
“나 오늘은 여기 잘 거니까 기다리지 말라고 전화했어. 아~참, 아빠 좀 바꿔줘.”
Susan이 남편에게 전화를 건네주었다.
“Anna!”
“아빠! 랍 스타 맛 어때?
“네가 추천해 준 요리니까 당연히 맛있지.”
“뻥 아니지?”
“아빠는 Anna 공주님한테 뻥 같은 거 안쳐.”
“그럼 됐어, 아빠! 엄마 많이 사랑해줘야 해, 이건 공주님 명령이야. 알았지?”
“잘 알겠습니다. 공주님!”
“아빠!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그래, 고맙다. Anna야.”
“아빠! 엄마 좀 다시 바꿔줘.”
“잠깐만, 여보! 전화받아.”
Susan이 다시 전화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너, 혹시 술 마신 거 아니니?”
“엄마한테 그 말 나올 줄 알았어.”
“안 마셨니?”
“안 마셨어. 지금 막 엄마 생각나서 지난번 엄마가 가져온 와인 한 잔 마시고 있어. 그래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럼, 잘 자고 내일 보자.”
“엄마! 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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