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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39)

by 훈 작가 2023. 10. 4.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판도라 상자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내성적인 성격 탓이다. 하지만 누구든 많은 사람 앞에 서게 되면 떨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두려워야 할 이유는 없다. 딸을 위하는 일이고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설은명’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누군가는 기억할 것 같다. 자꾸만 미스코리아 선이라는 사실이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미혼모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나서기 싫었던 이유다. 지울 수 없는 주홍 글씨였다. 당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문 밖에 나서는 게 두려웠다. 결국 그녀는 조국을 떠났다. 다 잊고 지금껏 살아왔는데 누군가 이를 다시 들추어낼 같아 무서웠다. 그녀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내는 것 같아 어젯밤 잠을 설쳤다.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 당신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래도 왠지 자꾸 떨려요.”
“엄마가 네게 우화(羽化) 얘기를 했잖아.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여보! 당신은 침착하잖아. 평소처럼 하면 돼. Anna와 내가 옆에 있잖아.” 
“알았어요.”
Anna가 두 주먹 쥔 채 팔을 Susan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엄마! 이게 뭔지 알아맞혀 봐.”
“이게 뭔데?” 
“알아맞혀 보라고 했잖아.”
John도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답답하다는 듯 Anna가 다시 말했다.
“엄마한테 오늘 꼭 필요한 거야.”
“나한테 필요한 거라고?”
“그래, 엄마한테 필요한 거~”
“나한테 필요한 건 너하고 John밖에 없어.”
Anna가 주먹 쥐었던 손을 펼치며 말했다.
“우황청심환이야.”
딸의 양 손바닥에 우황청심환 2개가 보였다.
“엄마! 잠 설쳤지. 밤새 이런저런 생각에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을 거야. 기자회견 하기 전에 꼭 잊지 말고 드셔. 알았지?”
Susan이 딸을 안아주자, Anna가 Susan의 귀에 대고 말했다. 
“엄마! 떨 필요 없어.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 알았어.”
미 대사관에 도착할 무렵 들고 있던 휴대전화에 문자 알림 소리를 들었다. 김재형 변호사가 보낸 응원 문자였다. 고맙다는 문자를 바로 보냈다. 대사관에 도착하자 은영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나야, 은영이”
“그래, 은영아!~” 
“떨리지?”
“아니라면 거짓말이지.”
“언니는 침착한 게 장점이잖아.”
“아니, 형부하고 약속했니. 똑같은 얘기하게.”
“형부도 그랬어? 
“그럼, 형부도 언니를 제대로 본 거네. 어쨌든 언니 성격대로 하면 돼.” 
“고맙다, 그렇지 않아도 Anna가 우황청심환을 줘서 먹고 지금 회견장에 들어가는 중이야.” 
“언니! 딸 하나만큼은 정말 잘 키웠어.”
“기자회견 끝나고 점심 한 번 먹자. Anna랑 같이.”
“그래 알았어, 언니! 힘내고~. 파이팅! 언니, 끊을게.”

  오후 2시. Susan이 미 대사관 공보관 안내를 받으며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공보관이 회견 진행 방식에 관해 설명했다. 기자 한 사람이 한 번의 질문 기회가 있고 추가 질문은 없다고 설명했다. 모든 질문과 답변은 영어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질문하려면 손을 들여 표시하고 사회자로부터 지명을 받은 사람은 소속 언론사명 이름을 밝힌 후 질문해 달라고 안내했다. 
  회견이 시작되자 첫 번째 질문자를 사회자가 지명했다. 
“J 일보 서진주 기자입니다. CNN 보도에 따르면 Anna 양이 전직 대통령 딸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전직 대통령과 Susan 부인은 어떤 관계인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Susan은 이 질문이 제일 먼저 나올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질문을 받고 보니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첫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앞에 놓인 물컵이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갔다.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저는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분이 저에게는 첫사랑이었습니다. 제가 연애하는 재주가 없다 보니 사랑에 눈이 멀었던 모양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여자끼리 하는 말이지만 남자는 다 도둑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분을 도둑님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저는 사랑을 믿었지만, 그분은 저의 정조만 훔친 도둑놈이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저는 순결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Anna는 제가 순결을 지키지 못한 첫사랑의 불꽃입니다. 사랑이 꽃을 피울 줄 알았던 저는 남자들이 갖고 있는 늑대의 본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저를 외면하며 멀어져 가는 사이 생명의 씨앗이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 사람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재벌가 여인을 만나 결혼했고, 저는 미혼모의 삶을 걸어야 했습니다.”
답변이 끝나자, 사회자가 두 번째 질문을 받았다.
“S 방송 윤세영 기자입니다. 부인께서는 Anna 양이 전직 대통령의 친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사자는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한 마디로 음주 운전에 걸린 사람이 술 마신 것은 인정하면서도 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한국 사회 전반에 거짓말 논란이 뜨겁습니다. 이른바 ‘엄마 찬스다, 아빠 찬스다.’하며 많은 젊은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당사자들은 정작 본인들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는 걸 여러분들도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자신의 거짓말을 정당화하려는 행동은 그들이 갖고 있는 권력과 그들을 지켜주고 옹호해 주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억지를 부린다고 거짓말이 진실이 될 수는 없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어제 그분의 기자회견을 봤습니다. 권력으로 자신의 추악한 위선을 가리려는 모습을 보고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추악한 행동인지 얼마나 패륜적인 행동인지 인간의 양심과 대한민국 헌법 앞에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무릎 꿇고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워싱턴 포스트 제임스 힐 기자입니다. 부인께서는 그동안 진실을 숨기다 왜 지금 와서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당연히 사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정의로운 심판을 하리라 기대했습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우리 모녀에게 테러를 가했습니다. 그것도 교묘하게 교통사고를 위장해서 말입니다. 경찰 수사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진실에 접근조차 못 했습니다. 저는 실망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시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오만한 권력이 겸손해지길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S 신문 송태영 기자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부인의 남편이 미 하원 외교위원 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정치적인 문제로 부각해 대한민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남편이 미 하원 외교위원장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질문의 요지에 대해 제가 답변할 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안 하고는 언론의 자유입니다. 남편의 일에 대해서는 저는 단 1%도 개입하거나 관여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도 없습니다. 그런 질문은 기회가 되면 John Edward 의원님에게 하시길 바랍니다.
“M 방송 진수경기자입니다. 얼마 전에 미 하원 외교위원장께서 기자회견 당시 Anna양 사건을 인권 문제로 보는 견해를 밝히셨습니다. 부인께서 보시는 미국과 한국의 인권 문제를 비교하신다면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시는지 개인적인 견해를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인 John Edward 의원은 정치를 하시는 분입니다. 당연히 정치지도자로서 자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수행했다고 봅니다. Anna는 제 딸이기도 하고 남편의 딸이기도 합니다. 또 미국 국민이기도 합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방금 미국과 한국의 인권을 다루는 관점에 대해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궁금해하셨습니다.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래전에‘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상영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인권을 어떻게 다루는지 그 영화를 보시면 답이 있습니다. 과연 이 나라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할 수 있는 나라인지 아닌지 여러분이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기자님의 질문은 이걸로 대신하겠습니다.” 
“아사히신문 고바야시 기자입니다. 부인께서는 조국을 떠나서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택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렇게 결정한 배경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가치관이 오랜 세월 국민의 삶을 지배해 왔습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죠. 여성에게는 엄격한 도덕과 윤리적인 가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주홍 글씨로 낙인찍혀 이 땅에서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질곡의 삶을 사느니 차라리 새로운 삶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은 저를 따가운 시선으로 냉대하거나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주홍 글씨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조국을 떠난 이유입니다. 
“ H 신문, 안기만 기자입니다. 부인께서는 Anna 양이 전직 대통령의 친자인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여기 두 사람의 DNA 분석 비교표가 있습니다. 유전자가 99.99% 일치하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거짓과 진실을 증명하는 것은 과학입니다. 이를 믿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유전자 검사에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C 일보 정은미 기자입니다. 따님의 사건은 인권유린 본질을 넘어 정치적인 이슈로 한국 사회에서 큰 파문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따님의 사건과 관련하여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래전 영향력 있는 어떤 기업인이 ‘경제는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라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한국을 떠난 지 30년이 된 제가 한국에 정치의 흐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게 가당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가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치인의 말을 믿습니까? 제가 한국에서 경험한 정치인들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며 4년에 한 번 표를 구걸합니다. 그때만큼은 국민을 섬길 것처럼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죠. 
저는 손을 내밀지 않았는데 먼저 다가와 손을 잡습니다. 그들은 항상 그때뿐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처럼 영혼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항상 국민 위에 군림하며 특권을 누리려 하는 사람들이죠. 물론 그중에는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아마도 깊은 산속에서 산삼 찾기 하듯 드문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정치권에서 저의 딸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꽃뱀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언론에서 받아 우리 딸을 꽃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뿐입니까? ‘피해 호소인“이라고 듣도 보도 못한 말을 만들어 우리 딸을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먼저 국민이 반성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누가 여의도로 보냈습니까? 국민입니다. 저는 한국의 정치 상황을 탓하기 전에 국민이 정신 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국민이 선택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요? 기업은 일류로 도약하고 있는데 정치는 일류로 도약할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작은 바람이지만 ’ 내로남불‘이란 말부터 미국에서 듣지 않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기자회견장은 싸늘하리만큼 조용했다. Susan은 작심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하고 싶은 말 좀 더 할까요. 어제 기자회견을 하신 그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지금 당장 이 자리에 나와 친자 확인에 응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법은 절대로 도덕과 인간의 양심 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권력 뒤에 숨어 비겁한 처신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루빨리 친자 확인에 나오길 촉구합니다.” 
“D 일보 신인성 기자입니다. 이번 따님의 사건과 관련하여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이 기회에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이 국민에게 너무 공허하게 들릴 거로 생각합니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말이 많은 서민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더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국민의 아픔을 치유해 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상처만 주는 게 지금의 한국 정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벌어진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결과와 불평등한 일들을 저는 지켜보았습니다. 우리 딸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정치인들의 추악한 범죄에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이들 사건을 법이 심판하는 과정에서 정의가 지켜졌습니까?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지켜졌습니까? 
  민감한 병역이나 교육 문제에 왜 많은 학부모와 젊은 학생들이 분노하는지 여러분 모두 아실 것입니다. 이런저런 사례를 늘어놓다 보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최소한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지켜지는 나라, 국민의 눈높이에서 상식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때 누군가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Get out, Go home”하는 고함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대사관 직원이 달려가 제압하며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전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회원이 가짜 기자 신분증을 지참하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왔던 소란을 피운 것이다. 잠시 회견장에서 벌어졌던 소동이 진정되자 Susan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는 사법부의 정의를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사법부의 수장이 거짓말까지 하며 염치도 모르고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나라 아닙니까? 이게 나라다운 나라입니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분들! 제 질문에 대답해 보시길 바랍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나라다운 나라 만들어 주십시오.” 
  회견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질문을 더 받을 건지 Susan의 의견을 물었다. Susan은 괜찮다며 질문이 있으면 끝까지 받겠다고 말했다. 사회자가 다시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K 방송 이세영 기자입니다. 부인의 말씀을 듣고 보니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부인께서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 가장 힘들고 힘들었던 점이 어떤 것이었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딸아이의 출생과 관련된 X-파일을 세상에 공개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평범한 엄마로 딸을 지키고 싶었고, 가정의 행복이 흔들리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이를 지키려면 위선의 탈을 쓴 권력과 맞서 싸워야 하는데, 자신도 없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고작 할 수 있는 게 주님께 기도하는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영혼 속에 양심을 불어넣어 주셨죠. 그래서 인간은 이때부터 양심에 거스르는 일은 하면 스스로 수치심도 느끼고 고통을 느끼게 되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적어도 인간의 탈을 쓰고 태어났다면 영혼은 양심의 통제와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하겠지요. 이 때문에 우리는 도덕과 윤리를 배우고 지키며 삽니다.
  권력자에게는 엄격한 도덕과 윤리를 요구하는 자리입니다. 상식이죠. 그런데 그분은 끝까지 자신의 추악한 행동을 도덕과 윤리를 저버렸습니다. 지금도 국민을 속이고 있습니다. 저는 고심 끝에 그분의 양심에 칼날을 꽂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분의 양심을 심판할 수 있는 칼이 제 가슴속에 있었습니다. 칼을 꺼내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딸에게 몹쓸 짓을 한 가해자가 그분인 것을 알고 난 후, 저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이런 패륜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Susan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딸에게 출생의 비밀을 말할 수밖에 없는 저의 심정이 어땠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녀는 북받치는 감정이 조금씩 끓어올랐다. 
남편과 상의 끝에 판도라 상자를 열기로 했지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휘몰아쳤습니다. 우리 Anna가 받을 정신적 충격은 말할 것도 없지요. 혹시나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 어쩌지…? 하는 괴로움은 저를 지옥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결국 딸아이는 실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흥분된 목소리를 높여갔다.
  저는 속 좁은 여자이자 보통 엄마일 뿐입니다. 그저 평범하게 행복을 가꾸며 살고 싶습니다. 그런 저에게 조국인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가혹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저는 대한민국을 힘들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이 저를 힘들게 하는 건가요? 제 물음에 어떤 답변을 해주실 건가요? 어디 한번 말 좀 보세요.”
  Susan이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회견장이 숙연해졌다. 공보관이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그는 더 이상 기자회견을 할 상황이 못 되니 여기서 회견을 끝내겠다고 말한 후 Susan을 부축하며 일어났다. Susan은 자신이 너무 비참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를 지켜보던 John과 Anna가 회견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Anna는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엄마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인생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Anna는 모든 엄마가 다 그런 줄 알았다. 엄마의 진정한 모습을 오늘에서야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 아빠에 관해 물으면 엄마는 얼음이 되었다. 엄마는 그 질문을 싫어했다. 왜냐 하고 물으면 행복이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간다고 했었다. 그런 엄마에게 행복이 뭔지 물었었다. 행복은 웃음이라고 말했다. 웃음이 도망가면 그 자리에 울음이 대신한다는 말에, 아빠에 관한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Anna는 청와대가 금단의 땅이라는 걸 몰랐다. 그녀는 미래의 꿈을 조국에서 펼치고자 서울에 왔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다. 천주교 신자였기에 그분을 믿었고 인권운동가 출신 대통령이기에 존경하고 따랐다. 그런 그가 악마의 미소와 늑대의 손을 숨기고 있던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 중에도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 청와대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은 Anna를 위해 환영 회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Anna의 청와대 근무를 축하해 주었다.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각하! Anna 비서관이 따님처럼 보입니다.”
Anna는 그 말이 분위기를 띄우려는 동료 비서관의 말치레로 생각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분이 그 말을 받아 정말 그렇게 보인다며 맞장구쳤다. Anna는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은 이에 개의치 않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 말을 이렇게 받아넘겼다.
“어허, 이봐. 사실이라면 나야 얼마나 좋겠나. 한데 말이야 우리 혜린이는 누굴 닮았는지 얼굴도 그렇고 머리도 그렇고 참! 나…, 이거 다 우리 집사람 들으면 나도 밥 얻어먹기 힘들지도 모르지. 자고로 말이야, 남자는 여자를 조심해야 해, 자네들도 집사람한테 잘하라고.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잖아. 하하하 ” 
그때 Anna는 무심결에 한마디 말을 툭 던졌다.
“남자들이 여자가 한을 품지 않도록 잘하면 되잖아요.”
Anna 말에 대통령은 박장대소했다. 
“Anna 비서관 말이 정답이야, 이봐! 여자가 한을 품지 않도록 잘하라고. 알았나?
그날 자신의 환영 회식은 대통령이 주도하며 분위기를 이끌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전임 대통령이 한 말이 소름 끼쳤다. 대통령과 닮았다는 말이 그냥 스치는 바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판도라 상자의 진실이었다. 이미 그때부터 비극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던 걸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이 엄마의 판도라 상자를 열게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판도라 상자가 있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는 여는 순간 인간의 모든 고통을 세상에 나오게 했다. Anna는 엄마의 판도라 상자가 가족의 행복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인 줄 몰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판도라 상자는 전임 대통령의 양심에 칼을 꽂았다. 
  Susan은 판도라 상자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이제 진실게임은 끝났다. 권력은 하룻밤 꿈같은 것이다. 권력은 물거품이다. 다만, 그것은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을 때 허무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권력자 대부분은 그것을 내려놓지 않아 불행을 자초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인 것은 영원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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