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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37)

by 훈 작가 2023. 10. 1.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오만(傲慢)한 권력
  
  최지철 실장이 이른 새벽부터 안절부절못했다. 아침 TV 방송에서 CNN 서울 특파원이 보도한 충격적인 뉴스를 본 것이다. 최 실장은 곧바로 웹사이트 CNN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실 여부를 먼저 확인한 후 뉴스 파일을 내려받았다.
  그는 영어에 능통한 비서관을 찾아 보도 내용을 한글로 번역해 A4용지로 정리했다. 정리한 내용을 빨리 보고해야 하는데 전임 대통령은 취침 중이다.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전임 대통령의 불같은 성격을 전임자로부터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기다리다 못해 침실을 노크했다.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시 두드렸다.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보다 더 세게 두드렸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그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각하! 접니다. 최 실장입니다.”
두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방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최 실장이 들어가자 침대에서 일어난 전임 대통령이 말했다.
“뭔데 아침부터 난리야.”
최 실장이 들고 있던 노트북을 침대 옆 탁자에 놓고 뉴스 파일을 찾아 클릭했다. 전임 대통령이 동영상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지금 뭘 보여주려는 거야.”
최 실장이 준비한 A4용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동영상 내용이 바로 이겁니다.”
전임 대통령이 심기가 불편한 듯 말을 이었다.
“이봐, 최 실장! 다음부터는 글씨체 좀 크게 키워.” 
전임 대통령이 탁자 서랍에서 안경을 꺼냈다. 그가 안경을 쓰고 동영상을 보면서 A4용지에 있는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뭐야? 이게.”
전임 대통령이 정신이 번쩍 든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이것들이 날 못 잡아먹어서 환장을 했군. 환장을 했어. 무슨 근거로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그가 분을 못 참고 최 실장을 보며 말했다.
“당장, 고 변호사한테 연락해서 CNN에 명예훼손과 허위 보도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도록 당장 준비하라고 연락해.”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 대표한테도 미리 전화해. 오늘 오전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해. 안 되겠어. 내가 직접 나서야지.”
“예, 알겠습니다. 각하!”

  출근 시간대 각 언론사도 충격적인 뉴스를 실시간 속보로 내보내느라 정신없이 없었다. 속보를 접한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도 전직 대통령이 1순위로 올라왔다. 
  정치권도 술렁였다. 야당은 전임 대통령의 추악한 성폭력 행위를 맹비난하며 특검을 재차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당은 탈당 분위기와 맞물려 뒤숭숭한 상황에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
  청와대는 전임 대통령과의 관계를 의식한 나머지 침묵 모드로 일관했다. 그렇지 않아도 양측 간에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다. 다만, 자정에 내린 대통령 지시를 받들어 대책 회의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돌아갔다.
  전임 대통령이 몇 달 만에 언론 앞에 등장한다는 말이 여당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오전 9시 30분 당 대변인이 기자실에 나타나 오전 11시 전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를 했다. 세간의 관심사는 CNN이 긴급뉴스로 전한 전임 대통령 성폭행 관련 뉴스였다.
  온 국민의 시선이 여당 당사에서 있을, 전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쏠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에 주재 중인 외신기자들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여당 당사로 몰려들었다. 기자회견장은 그야말로 시장 골목처럼 북새통을 이루었다. 과연 그가 국민 앞에 나서서 어떤 해명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날이다. 
  여당 당사는 오전 10시가 지나자 혼잡할 정도로 북적였다. 전직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당 수뇌부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전임 대통령을 지지하는 회원들이 환영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현수막에는 ‘사랑합니다. ○○○‘ 글귀가 있었고 환영 피켓을 든 지지자들도 곳곳에 있었다. 
  전직 대통령이 도착이 임박했는지 주변에 배치된 경찰들이 무전기를 들고 교신하며 긴박하게 움직였다. 그가 언론과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퇴임 후 처음이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법정은 변호인만 출석한 상태로 재판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30분 의전 경호 오토바이 2대가 나타났다. 뒤로 경호 차량이 따랐고 이어 전직 대통령이 탄 차량이 보였다. 비서관들이 탄 수행원 차량도 뒤를 이어 도착했다. 경호원들이 먼저 내려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중 한 사람이 차량의 뒷문을 열자 전임 대통령이 내렸다. 
  당 대표가 90°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전 청와대 주인이 그와 악수했다. 도열해 있는 여당 지도부가 그를 맞았다. 그를 영접하는 여권 내 인사들이 워낙 많다 보니 당사 건물로 들어가는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
  그는 몰려든 취재진의 질문에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취재진을 막으려 하는 경호원들과 기자들이 서로 엉켜 극도로 혼잡했다. 폴리스라인을 설치했지만, 워낙 많은 취재진이 몰리다 보니 벌어진 진풍경이다.
  기자회견장에 전직 대통령이 들어서자 회견장에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졌다. 당 대변인이 CNN 보도와 관련 전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을 것이라 안내 방송을 
했다. 전임 대통령이 입장하며 단상에 올라가기 전에 국기를 향해 경례한 후 기자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의 신상에 관해 일로 뜻하지 않게 심려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새벽 악의적인 뉴스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CNN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CNN은 제가 인륜을 저버린 추악한 행동을 한 것처럼 허위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Mary Robert 기자와 CNN 방송사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와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만약 CNN 방송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저는 모든 법적인 조치할 생각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CNN 보도가 사실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는 바입니다. 저는 언론이 이처럼 아니면 말고 식의 민심을 호도하는 보도 행위에 대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CNN은 더 이상 언론의 자유를 악용해 대한민국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CNN의 이런 추악한 보도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행동입니다. CNN 보도는 저의 인권과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언론은 사실과 진실을 바탕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CNN은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언론 본연의 업무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주시길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의 일로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전임 대통령은 짧은 회견문만 발표하고 나갔다. 배석했던 여당 지도부와 측근들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 김 원내대표가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벤츠 승용차 뒷문을
열었다. 전임 대통령이 승용차에 오르기 전에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강사 건너편에 있는 지지자들이 환영 피켓을 흔들며 환호성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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