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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38)

by 훈 작가 2023. 10. 2.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외길 수순

  우화(羽化) 과정은 고치를 벗고 날개를 펼치며 나비가 되는 마지막 과정이다. 이 순간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 이 과정이 너무 안쓰럽다고 도와주면 나비는 날 수 없다. 고통을 이겨낸 나비는 스스로 날 수 있지만 도움을 받은 나비는 날 수 없다. 날개가 있어도 날개를 펼칠 힘이 없기 때문이다. 
  Susan은 Anna가 이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딸은 이제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다. 이를 지켜보는 엄마는 너무 힘들다. 그래도 딸이 겪었을 아픔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삶은 고통을 이겨내며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응급병동 병실은 고통에 겨워하는 앓는 소리가 가득했다. 밤사이 생과 사의 경계에서 허우적대는 소리가 형광등 불빛에 섞여 날아다녔다. Anna는 그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생각했다. 살려고 버둥대는 인간들의 군상(群像)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았다. 삶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거늘 왜 몸부림치며 살려고 하는 걸까?
  모녀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그새 흰머리가 부쩍 는 것처럼 보였다. 밤새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나온 말이 “엄마” 한 마디였다.
“엄마!”
“Anna야! 많이 힘들었지?”
“난 뭐가 뭔지 모르겠어.”“이제부터야, 너의 삶은…”
“왜, 이제부터야.”
“네가 나비라면 넌 이제 막 날개를 달고 새로 태어난 거야. 우화 과정을 벗어난 거라고.” 
우화(羽化)는 탈바꿈이다. 번데기에서 나비로 탄생하는 과정이다. 생명의 영역이 다르고 삶도 다르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이란 껍질을 벗어야 한다.
“엄마! 어떻게 우화 과정을 생각해 냈어?” 
“사람들은 생명체를 피상적으로 보고, 느끼고, 판단하거든, 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그 생명체가 지닌 가치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 숨어 있잖아. Anna 너도 지금 막 그 과정을 벗어났다고 엄마는 생각하고 싶어.” 
“맞아, 엄마!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Anna야! 앞으로 넌 어떤 고통도 다 이겨낼 거야.”
“다는 아니겠지만, 엄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Susan은 딸이 삶에 대한 열정을 되찾으려는 의지가 살아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녀가 얼굴을 돌려 응급실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계는 삶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희로애락을 무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엄마! 나 세수 좀 하고 올게.”
“그래, 난 원무과 좀 다녀올게.”
  Susan이 원무과에 이르자 대형 TV 화면에 CNN 긴급뉴스 자막이 화면에 지나가고 있었다. 화면 속의 앵커가 전임 대통령이 잠시 뒤 오전 11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고 말했다. 그사이 Susan의 번호표 순번이 떴다. 원무과 창구에서 병원비를 계산하고 나니 기자회견이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당당한 그의 모습이 역겨웠다. 위선의 가면을 쓴 그는 뻔뻔했다. 어떻게 저런 얼굴로 주님을 믿는 신자 행세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주님은 저런 악마를 왜 단죄하지 않는 것일까? 주님에게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응급실에 돌아오니 남편이 와 있었다. Anna는 하룻밤 사이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모녀는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Anna 가족은 어제와 오늘 사이에 거친 폭풍의 바다를 건넜다. 긴 악몽의 터널에서 막 빠져나온 거나 다름없다.

  대사관저로 돌아온 Anna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다. 약하지만 심장을 흔들었던 여진(餘震)이 그녀를 괴롭혔다. 안 되겠다 싶어 비상용 구급약이라 보관하고 있던 우황청심환 한 알을 찾아 먹었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생각했다. Anna는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고 마음을 추슬렀다. 나는‘설은별’이 아니다. 나는‘Anna Edward’다. 나의 정체성을 지배하는 주인은 Anna Edward 이어야 한다.‘설은별’은 이제 잊어버려야 한다.

나는‘Anna Edward’다. 나는‘Anna Edward’다. 나는‘Anna Edward’다.…
   
  메아리 소리가 들렸다. Anna! 넌 이제 ‘설은별’이 아니야. 맞아. 네 생각이 맞아. 힘내~, Anna! 너는 해낼 수 있어, 더 이상 울면 안 돼. 언젠가 엄마가 말했을 거야. 울음은 너의 행복을 다 빼앗아 갈 거라고. 잘 기억해 봐. 
  눈을 뜨며 생각했다. 오늘부터 오늘의 Anna로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그래야 행복이 도망가지 않을 거야. 그래, 날마다 그렇게 살아야 해. 책상 앞에 앉아있다 일어나서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 속에 나를 향해 웃음을 던졌다. 거울 속의 Anna가 웃음으로 답했다.
  Anna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핸드백 속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우리 커피 한잔할래?”
“…”
“블랙 맞지?”
Anna는 엄마 말에 대답하지 않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
“블랙 아니니?”
“엄마! 그냥 불러 보고 싶었어.” 
Susan이 얼굴을 돌려 Anna를 보며 말했다.
“Anna야! 엄마보고 한 번 웃어봐.”
“웃어보라고, 왜?”
“네가 그냥 엄마를 불러 보고 싶은 것처럼 엄마는 네가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Anna가 엄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Susan이 가가 말없이 딸을 안았다. 그 상태로 Anna에게 말했다.
“엄마가 보기엔 지금 네 모습이 모나리자 미소보다 더 아름답게 보여.”
순간 Anna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Susan을 밀치며 쳐다본다.
“하하하…, 엄마도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그럼, 우리 Anna를 위한 일이라면 뭘 못하겠니.”
소파에 앉아있던 John도 같이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여보! 당신한테 그런 센스가 있었어?”
“제가 한때 문학소녀였다는 거 모르죠?”
“문학소녀였다고? 당신이 그 길로 갔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군. 당신을 못 만났을 테니까 말이야. 어쨌거나 나한테 행운이니 천만다행이군 그래.” 
“엄마! 아빠 알고 보니 이기적인 데가 있는 것 같아. 엄마가 속은 거 아냐?”
“그럼 반품시켜야 하니?”
“뭐라고 반품이라고? 하하하…”
John이 Susan의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여보! 당신한테 그런 유머 감각이 있는 줄 몰랐어.”
“아빠! 나도 엄마가 이런 모습은 처음이야.”
“Anna, 너도 그러니?”
“아니, 부녀가 왜들 이러실까?
 Anna가 소파로 가면서 휴대전화를 보았다.
“엄마! 김 변호사님한테 부재중 전화가 많이 왔었네.”
“아니, 전화 온 걸 몰랐니?”
“진동모드로 해 놓아서 듣지 못했나 봐.”
John이 Anna를 보며 말했다.
“CNN 뉴스 때문일 거야
“엄마! 김 변호사님에게 지금 전화할까?”
“커피 갖고 가서 이야기하자.” 
Susan이 커피를 가져와 두 사람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여보! 커피 드세요”
“땡 큐.”
“엄마! 블랙은 어느 거야?”
“양 많은 거.”
Susan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말했다. 
“Anna야, 어차피 김 변호사님도 알아야 하겠지. 넌 어떻게 생각하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보! 당신 생각은?” 
“나도 Anna와 같은 생각이야.”
“엄마! 내가 전화해서 자세한 건 내일 찾아뵙고 얘기한다고 할게.” 

이튿날 오전 모녀가 서초동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Anna 씨! 이게 얼마 만이에요.”
두 사람이 반갑게 포옹하는 것을 Susan이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머니! 이쪽으로 앉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어~머 어떡해, Anna 씨! 얼굴이 많이 상했네. 많이 힘드셨죠.” 
“예,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마음으로 뭐라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데 저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너무 슬펐어요. Anna 씨한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고….”
김 변호사의 눈이 촉촉해지면서 목소리가 젖기 시작했다.
“변호사님! 제가 갖고 있던 걸 버렸어요. 그걸 훌훌 털어 버리니까 이젠 홀가분하고 괜찮아졌어요.”
“Anna 씨 뭘 버리신 거예요?” 
“제 정체성에 깃들어 있던 제 이름이요. 그간 저는 제 이름‘설’ 자,‘은’ 자, ‘별’ 자를 너무 사랑하고 집착했었거든요. 사실 전 ‘설은별’을 알고 싶어서 서울에 왔어요. 그런데 그게 꿈이었나 봐요. 제 꿈은 한국 땅과 안 맞아요. 아무래도 미국인 거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제가 짝사랑했나 봐요.”
“Anna 씨!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사실 저도 Anna 씨의 그런 마음을 읽고 있었어요. Anna 씨가 왜 서울에 왔을까? 자신의 정체성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서울에서‘설은별’이란 이름으로 삶의 꿈을 펼치고 싶었던 거죠. 저도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어요. 제가 힘이 되어 주고 싶었는데 그게 내 맘대로 안 되네요.”
“저도 변호사님 마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변호사님의 힘이 되어 주셔서 용기를 잃지 않은 거고요.”
“어머님! 전 믿어지지 않았어요. 아니, 어떻게 참고 지내셨어요. 그 오랜 시간을…”
“변호사님!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김 변호사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어머님! 아, 아닙니다.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이 못 된 것 같아 너무 죄스러웠어요. Anna 씨 용기와 신념을 실망하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제가 너무 부족해서 두 분을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하니 자괴감마저 들었더라고요.”      
“아닙니다. 변호사님! 우리 Anna가 변호사님같이 훌륭한 분을 만나 이렇게 버티고 싸울 수 있었던 겁니다.”
“아! 내 정신 좀 봐 손님이 오셨는데 차 한 잔도 준비 안 하고…”
김 변호사가 일어나 집무실 밖 여직원에게 커피를 부탁하고 자리에 다시 돌아왔다.
“어머니! 기자회견 보셨죠?
“예, 봤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어머님 몫입니다. 칼을 빼셨으니 심판을 하셔야죠?”
맞다. 칼을 뽑아야 내리쳐야 한다. 그런데 언론 앞에 나설 생각을 하니 Susan은 두렵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 것도 같고, 손가락질할 것 같다. 오래전 미스코리아 선이었던 경력과 미혼모라는 운명의 덫이 마음에 걸린다. 이런 사실을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낼 것만 같다. 
“어머님! 외길수순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 나서시는 게 많이 힘드시겠죠. 하지만 어머님이 진실의 당사자입니다.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심판자가 어머님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어차피 외나무다리를 건너야만 하는 상황이죠.”
Susan이 잠시 크게 숨을 쉬었다.
“예, 용기를 내겠습니다. 그럼, 기자회견은 어디서 하는 게 좋을지…?”
“제 생각엔 미 대사관입니다. 미국인의 인권 문제이고, 가해자가 대한민국이거든요. 외교적 문제이기도 하고요. 기자회견의 효과 측면에서도 그렇고요. 그래야 청와대가 번쩍 정신 차리게 될 겁니다.”
  이때 노크 소리가 나면서 여직원이 커피를 들고 들어와 커피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나갔다.
“자, 드세요, 어머님! Anna 씨도요.”
“예, 잘 마시겠습니다.”
“엄마! 내일 바로 하는 게 어때?”
“맞아요. 어머님! 한국말에 쇠뿔도 단김에 빼란 말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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