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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41)

by 훈 작가 2023. 10. 6.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실종(失踪) 

“어쩌다 Anna양 사태가 이런 상황이 된 거죠?”
“우리가 전임 대통령의 성범죄를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대응만 하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럼, 비서실장은 나 몰라라 해야 했다는 뜻인가요?”
“대통령님! 불편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그 어른을 나름대로 지켜주었습니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을 공정하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오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편이니까 무조건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집단논리에 빠져나오지 못한 거죠.”
“비서실장 얘기를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군요. 차라리  Anna양 교통사고 때 정치적 결단을 내렸으면 이런 혼란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님! 어쨌거나 친딸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얼굴을 들고 국민을 보겠습니까. 우리가 이러려고 정권을 잡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왕 엎질러진 물입니다. 냉정하게 선제적으로 민심을 수습하는 방향으로 나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안보실장 말대로 나라가 더 혼란에 빠져들기 전에 성난 민심을 수습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나누어 봅시다.”
“저는 국민이 받았을 충격을 참작하여 대통령님의 대국민담화 같은 특단의 조치를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보실장은 비서실장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상황은 엎질러진 물입니다. 이제는 불가피하게 결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끌어안고 가면 파멸입니다. …”
“계속 말씀해 보세요.”
“자칫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야당의 공세나 대학가도 그렇고, 민심이 들끓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법의 심판대에 내세우는 방법밖에 없겠군요.”
“정무수석은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어떤 게 있다고 보세요?”
“제 생각에는 지난번 무산되었던 특검(안)을 재추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카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야당도 분명히 이 카드를 다시 꺼낼 테니까요. 여당 내 반대파 의원들도 전임 대통령을 보호할 명분이 없어졌으니 추진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을 겁니다.”
“정무수석 말이 맞습니다. 저도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특검 추진이 성사되면 Anna양 문제로 불편해진 John 의원과의 관계도 해법을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요. 그러면 미 대사관 쪽도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신당 창당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김 원내대표는 망연자실했다. Susan의 기자회견은 전임 대통령의 양심을 정확하게 저격했다. 민심은 그를 인륜을 저버린 파렴치한 위선자라며 등을 돌리며 격한 분노를 토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당 추진은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없다.
  그가 고민 끝에 최지철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판단이 그럴지라도 양평 어른의 의중을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생각 했다. 
“각하는 좀 어떠신가?”
“혼자 술만 드시고 계십니다.”
“아! 그래. 그럼, 지금은 통화할 상황이 아닌 것 같군.”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알았네, 최 실장! 다음에 전화하겠네.”
  전화를 끊은 김 대표는 당분간 관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자칫 오판하면 자신의 정치생명도 끝날지 모르는 일이다.
  야당은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며 여론과 민심을 등에 업고 내각 총사퇴 요구하는 상황이다. 무산되었던 특검 카드를 재차 주장하며 정치공세를 강화했다.

  판도라 상자가 열린 후 일주일이 지났다. 광화문 광장은 연일 주야로 촛불시위로 민심이 들끓었다. 양평 저택은 정적만 감돌았다. 계절은 초여름의 문턱을 넘었는데 이곳은 낙엽 지는 늦가을 분위기였다. 폐허의 성터처럼 적막감만 감돌았다. 
  장마철이 끝난 여름 햇살은 따가웠다. 한강을 바라보며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말이 떠올랐다. 삶을 뒤돌아봤던 시간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없었다. 인생도 권력도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만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딸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옆에 없다. 녀석이‘아빠’하며 살갑게 자신을 따를 때가 엊그제였다. 녀석이 파리로 유학을 떠난 지도 오래되었다. 아들은 아내가 옆에 끼고 경영 후계자로 키우려고 불철주야 열정을 쏟고 있다. 
  가족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로만 존재했다. 서로 다른 삶,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 공유하는 삶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봐도 자신의 탓이었다.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전임 대통령은 아버지로 살기보다 권력자로 살기만 원했다. 
  이 순간 왜 가족이 그리워지는 걸까. 이유는 한 가지다. 외로워 어딘가에 기대고 싶다. 그러나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다. 텅 빈 가슴에 한없는 쓸쓸한 고독감이 밀려든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허무함과 무력감이다.
  아내는 늘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그에게 아내는 대통령이란 자리를 빛내는 의전용에 지나지 않았다. 항상 사업체의 경영 실적에만 관심을 가졌다. 재벌가의 딸답게 금력(金力)에 대한 집착과 승부 근성은 신앙에 가까웠다.
  아내는 정치 기반을 다지는 데 힘이 되었고 대통령 후보 경선과 청와대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일등 공신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사랑과 야망 사이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설은명을 포기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한강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각하! 김 대표입니다.”
“오 그래, 무슨 일인가?”
“좋지 않은 소식을 보고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각하!” 
“이봐, 괜찮아. 이미 마음 다 내려놨어.”
“다름이 아니라~ 저-어~ ~”
“그래, 뭔데 어서 말해봐.”“예, 방금 특검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고생했어, 그게 자네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각하!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자네가 끝까지 의리를 지켜주어 고맙네, 김 대표!”
“아닙니다. 각하!”
“그래, 잘 알았네.”
“각하! 어쨌든 힘내십시오. 제가 곁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 고마워, 김 대표!”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각하!” 
먹구름이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아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야, 여보!”
“아니, 목소리가 왜 그래, 여보!”
“내 목소리가 왜? 이상해.”
“평소 당신 목소리가 아닌데 그래~”
“특검이 통과되었다고 방금 김 대표 전화받았어.” 
“아니, 당신답지 않게 왜 그래, 난 당신을 믿어. 힘내, 여보! 천하를 호령했던 당신이잖아. 안 그래, 여보!” 
“그래도 당신밖에 없군. 그래.”
“기죽지 말아 여보! 돈으로 해결하면 되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난 끝까지 당신 편이야, 여보! 크게 마음먹고 허튼 생각하지 말라고. 술 떨어졌으면 다시 보내 줄게.”
“하하하. 역시, 당신답군 그래”
“여보! 나, 바로 계열사 사장단 회의 주재하러 들어가야 하거든~”
“알았어. 끊을게.” 
아내와 통화를 끝낸 후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무슨 말을 써야 할까. 자판에 손을 올렸다.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는 딸에게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랑하는 혜린아! 
미안하다. 
아빠가 너에게 할 말이 없구나.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지 못해서 말이다.
우리 딸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래도 아빠는 네가 있어서 행복했단다.
미안해.
사랑하는 우리 딸!
잘 있어.

  이 메일을 전송하고 서재를 나왔다. 위스키가 보이지 않았다. 최 실장을 부르려다 말고 가벼운 아웃도어 겉옷을 걸치고 거실을 나왔다. 부속실에서 컴퓨터를 보고 있던 최지철 실장이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각하! 차 대기시킬까요?”
“아니야, 그럴 거 없어, 오랜만에 나 혼자 바람도 쐴 겸 소주나 한 병 사 와야겠어.”
“각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야! 이 사람아~ 나 혼자 오랜만에 바람도 쐴 겸 다녀온다는데. 왜들 그래~”
“알겠습니다. 각하! 그럼 다녀오십시오.” 
검은색 벤츠 승용차 시동을 켰다. 정말 오랜만에 운전석에 앉았다. 경호원들이 저택 대문을 열었다. 전직 대통령이 탄 승용차가 나 홀로 별장을 빠져나와 양평 읍내로 쪽으로 사라졌다.

  각하가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돌아오지 않는다. 최 실장이 느낌이 안 좋았다. 전화를 해 보았다. 신호음은 가는 데 받지를 않는다. 그가 다급하게 비서관들과 경호원들을 불러 각하의 행방을 찾아보도록 지시했다. 
  한 시간 만에 돌아온 경호원들이 각하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 실장은 불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가 먼저 경찰에 실종신고부터 한 후 사모님께 전화했다.
“사모님! 저, 저, 저~ 최 실장입니다.”
최 실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천천히 말씀하세요. 최 실장!”
“예, 사-모-님! 저-저- 다름이 아니라”
“뭔데요?”“가~ 각하 행방이 묘연합니다.”
“무슨 말씀이에요. 행방이 묘연하다니? 한 시간 전에 저와 통화했는데.”
“잠깐 바람 쐬고 오신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됩니다.”
“경호원들은 뭐 하고요?”
“그게, 각하께서 잠깐 나갔다 올 건데 뭐 하러 따라오느냐며 야단치시는 바람에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경찰에 연락했나요?”
“예, 했습니다.”
“최 실장님! 경찰과 협조하여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최 실장은 전화를 끊고 청와대와 김 원내대표에게 연락을 취했다. 대통령은 실종 상황을 보고 받자, 가용인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수색작업을 펼치라고 지시했다.
  전임 대통령의 실종 소식은 긴급뉴스로 실시간 보도되었다. 국민은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속보를 접한 시민들은 Susan 여사의 기자회견을 보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극한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수색작업은 늦은 밤까지 진행되었지만, 진척이 없었다. 다음 날 경찰은 양평 주변의 도로망과 CCTV 화면을 통해 차량 추적 작업을 병행하였다. 수색작업이 별다른 성과 없이 또 하루가 지나갔다. 
  수색작업 사흘째 강원도 영월군과 충북 단양군 경계 지역 인근 인적이 드문 도로변에서 전직 대통령의 승용차가 발견되었다. 휴대폰과 신고 있던 구두가 발견되었다. 시계와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도 차 안에 남아 있었다. 수색작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갔다. 수색작업이 장기화할 조짐이 커졌다. 사건이 미궁(迷宮)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국은 수색작업을 중단할 수도 없고 계속 진행하자니 끝이 안 보이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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