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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단편소설

살구(4)

by 훈 작가 2023. 10. 20.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벌초를 왜 힘들게 엄마가 해? 아들은 뭐 하고?”
 딸은 남동생이 너무하다며, 할멈에게 투덜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올케가 엄마를 모시지 않으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바빠서 못 온다는 데, 어쩌겠냐? 나라도 해야지.”
할멈은 아들을 감싸며 에둘러 핑계를 댔다.
“장모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저쯤에서 멈칫거리던 사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늙은이 몸이 그렇지. 뭐. 그나저나 자네 사업은 어떤가?”
“미국산이다. 호주산이다, 수입 쇠고기가 워낙 많이 들어와 힘들죠.”
“큰일이네. 이러다 축산농가 밥이나 먹고살 수 있는지 모르겠어. 과수농가도 바나나다 망고다 해서 수입 과일 때문에 힘든데….”
“장모님. 힘들긴 해도 거래처 절반은 농협 매장이라 든든한 편이에요.”
“엄마. 사위가 지난달 한우영농조합 법인을 설립했어. 앞으로 많이 좋아질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위는 건재하니 걱정은 말라고, 딸이 자랑했다.
“여보. 그게 다 아버지 돈으로 한 거야.” 
 죽은 영감의 돈으로 든든해졌다고, 겸손의 말을 했다. 할멈은 은근히 미안했다. 결혼할 때 형편이 어려워 예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아들은 죽는시늉할 때마다 땅 판 돈 보태주면서, 딸이라고 한 푼도 주지 않아 더욱 미안했다. 그런 딸은 할멈에게 불평 한 번 안 했다.
딸이 할멈의 마음을 읽고, 남편 옆구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장모님. 이제 자식 걱정 그만하시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드시고. 하시고 싶은 것도 하시고. 건강 챙기시면서 즐겁게 사세요.”
사위가 알아채고 얼른 할멈을 달랬다.
“사위 말처럼 해야 하는데. 시골구석에서 쉽지 않아.”
할멈은 딸과 사위가 눈물이 글썽하도록 미안하고 고마웠다.
“엄마. 요즘도 아침마다 산책 다녀?”
“늙으면 잠이 없잖아. 저절로 새벽에 눈이 떠지는데 뭐 해. 그냥 운동 삼아 바람 쐬고 오는 거지.”      
“아들과 며느리가 엄마 모실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지?”
“설마 그러겠냐.” 
“야금야금 돈 뜯어만 가고. 그 나이에 철이 들기나 한 건지….”
“복숭아밭 정리하면 너도 좀 챙겨 줄게.”
“난 괜찮아. 치매 약은 잘 챙겨 드시지?”
“자식들에게 폐 끼칠까 봐. 꼬박꼬박 잘 먹고 있어.”
“아직은 초기 증상이라니까, 더 나빠지지 않게 엄마가 신경 써야 해.”
“그래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저 개는 뭐야. 지난번에 왔을 땐 없었잖아?”
“우리 살구?”
“이름이 살구야. 똘똘하게 생겼네. 장날 사 왔어?” 
“누가 버리고 간 모양이야. 며칠 전 느티나무길 정자 아래서 쫄쫄 굶고 있는 거 같아 데리고 왔어. 적적했는데 잘 됐지 뭐니.” 
“주인이 찾으면 어떡해?”
“그야 당연히 돌려줘야지. 그런데 피멍 든 채 있던 걸 보면, 누가 밤에 몰래 버리고 간 거 같아.”
딸은 추석 때 시간이 없을 것 같다며, 미리 다녀가려고 왔다. 할멈은 늦은 점심을 먹여 보냈다. 딸과 사위가 보약은 한 첩과 현금 봉투를 주고 갔다. 딸과 사위를 배웅하고 돌아오는데, 아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결혼 전에는 안 그랬다. 아들을 빼앗긴 것 같아 며느리가 미웠다. 당직이란 말도 며느리 비위 맞추느라, 거짓말한 줄 알고 있었다. 며느리가 누추한 시골집에 오기 싫어하는 것을. 할멈을 익히 알았다.
과수 농사가 이상기온 탓인지, 병충해로 점점 힘들었다. 수입도 전년보다 형편없이 줄었다. 인건비가 매년 올라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칠십 중반이 훌쩍 넘어서, 일도 힘에 부쳤다. 농사일을 정리하고 싶어도, 죽은 남편을 생각나서 그러지 못했다.
작년 추석에 제사를 며느리에게 넘기려 했다. 며느리가 교회 다닌다는 핑계로 딱 잘라 거절했다. 앞이 캄캄했다. 앞으로 조상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하는지 할멈은 시시때때로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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