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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단편소설

살구(6)

by 훈 작가 2023. 10. 22.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마당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있어?”
할멈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문을 열었다. 용식 할멈이 왔다.
“해가 중천인데 자고 있었어?”
“들어와.”
“술 마셨어? 소주 냄새가 나는데.”
“어제저녁 하도 적적해서 월류정에서 조금 마셨어.”
“아이고 나라도 부르지. 할망구야.”
“요즘. 내 맘을 나도 모르겠어. 자꾸만 허전한 게. 이 나이에 내가 계절을 타나?”
“아직도 청춘이구먼. 하하하.”
“내일모레. 수요일. 읍내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녹화방송이 있다는 데. 같이 구경이나 가지.” 
“전국노래자랑?”
“다들 송해 오빠 보러 가자는데.”
“그럼 나도 가지 뭐.”
모처럼 단장하고 나섰다. 살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할멈 뒤를 따라왔다. 동네 노인들도 한껏 멋을 내고, 버스정류장에 모였다. 마을이 텅 비다시피 했다. 
“살구야. 오늘은 심심해도 혼자 있어야겠다. 동네 사람과 읍내에 갔다 올 테니. 집에 들어가 있어. 알았지?”
살구가 손자 손녀라도 되는 것처럼, 할멈이 다독다독 말했다.
“어이구. 개가 말 들을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추석 전 장날 있잖아요. 내가 장에 갔다 오는 데 정류장 옆에 앉아 종일 할멈 기다리고 있는 걸 봤거든요?”
“우리 살구가요?”
“이 동네 얘 말고. 개가 또 있남?”
“….”
“얘가 태생만 개지, 사람보다 난 거 같아.”
동네 노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할멈은 마음이 짠했다. 노래자랑 녹화에 가야 할지 말지 망설였다. 살구가 종일 정류장에서 기다렸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녀석이 얼마나 적적했을까, 고맙고 안쓰러웠다.
시내버스가 정차했다. 용식 할멈이 같이 가자고 말했다. 할멈은 살구만 두고 가서 마음이 씁쓸했다.
녹화 현장은 흥이 넘쳤다. 축제 같았던 노래자랑 녹화가 끝났다. 동네 할아범들이 막걸리 술집으로 어울렸고, 동네 할멈들은 터미널로 향했다. 살구 할멈만 볼 일이 있다며 읍내 시장으로 갔다. 정육점에 들러 사골을 사고, 슈퍼마켓에서 소시지도 챙겼다.
시내버스에서 내리니, 동네 노인들 말처럼 살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멍멍 짖으며 달려와 할멈의 바지에 몸을 비비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네가 개냐? 사람이냐? 도대체 네가 뭔데 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어?”
할멈이 쪼그려 살구를 품에 안았다. 멍멍 살구가 품에서 짖었다.
“집에 가자. 뼈 국물에 밥 말아 줄게. 소시지도 사 왔어.”
살구가 껑충껑충 뛰며 앞장섰다. 할멈이 느릿느릿, 눈물을 훔치며 살구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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