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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단편소설

살구(5)

by 훈 작가 2023. 10. 21.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추석에도 할멈은 설에 이어 혼자 성묘를 다녀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고향을 누가 지키며 살 것인가. 시골은 고령화되어, 나이 육십이 면 청년이라는 말을 듣는 게 현실이다. 이대로 가다간 농촌이 사라질지 모른다. 걱정이다.
점심을 거른 채 TV를 켰다. 추석 특집 전국노래자랑이 방송되고 있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달래주는 프로였다. 재미있게 TV를 보는데, 살구가 멍멍 짖었다. 문을 열자 옆집 용식 할멈이 왔다. 
“뭐 해?”
“뭐 하긴 송해 오빠 보고 있지. 용식이 올라갔어?”
“고속도로 막힌다고 차례상 물리자마자 바로 올라갔어.”
“할멈 아들은 안 왔어?” 
“부잣집 며느리 얻었다고 다들 부러워했는데. 장가가니까 소용없구먼.” 
“품 안에 자식이래잖아.”
“예전엔 마을회관에서 윷놀이에다가 막걸리 한 사발 기울이며 추석 명절 분위기가 났었는데….”
“옛날얘기지.”
할멈 혼자 적적하다며 늦은 오후까지 있어 준. 용식 할멈이 돌아갔다. 찬바람 돌면서 날아간 제비의 빈집이 눈에 들어왔다. 보잘것없는 미물도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뭐가 틀어져서 안 오는가. 전화라도 오겠지, 했는데 이마저도 없었다.
마당에서 공을 주둥이로 밀며 놀던 살구가 할멈에 천천히 다가왔다.
“살구야! 넌 고향에 가고 싶지 않니?
살구가 물끄러미 할멈만 쳐다본다.
“할멈이랑 바람이나 쐬러 갈까?”
녀석이 말귀를 알아들은 듯 멍멍 짖었다.
“가만있어 봐. 이왕 갈 거면 안주라도 챙겨야지.” 
할멈이 냉장고에서 부침개와 고기산적 몇 점을 꺼내, 소주와 함께 비닐봉지에 쌌다.
“좀 멀긴 해도 월류정으로 가자.”
냇물이 굽이치며 경치가 기막힌 봉우리, 월류봉에 월류정 정자를 마을에서 세웠다. 멀리 월류정이 보이는 마을 입구에서, 살구가 느티나무로 뛰어갔다가 할멈에게 돌아왔다. 들녘에 고추잠자리가 군무를 이루며 춤춘다. 살구와 할멈은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개울가 다리를 건너 둑길로 걸어갔다. 
은은하게 들리는 개울 물소리가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정겹게 만들어 냈다. 가을 햇빛에 하얀 억새가 은빛 파도로 출렁였다. 앞서가던 살구가 억새 숲으로 사라졌다가 한참 만에 둑길로 올라왔다. 
월류봉 가는 길에 붉은색, 하얀색, 연분홍색 코스모스꽃이 어울려 넘실댔다. 둑길 끝머리에 다다르자 냇물이 넓어지면서 강을 이루었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야트막한 산언덕을 휘감고 돌아 내려간다. 좁은 산길을 오르니 월류정이 보였다. 오랫동안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바닥에 먼지가 뽀얗다. 할멈이 먼지를 쓸어내고 신문지를 펼쳤다.
“살구야! 여기가 월류정이란다.”
할멈은 고기산적 한 조각을 살구에게 주었다. 살구가 산적을 물고 구석으로 갔다. 할멈이 소주 한 잔을 종이컵으로 한 모금 마신 후, 얼굴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쓰지.”
할멈이 부침개를 안주로 소주를 마저 마셨다. 살구가 멀뚱멀뚱 할멈을 쳐다보았다. 
“살구야. 할미가 걱정되냐?”
살구가 할멈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살구야. 너도 한 잔 어떠니? 너도 사내잖아,”
할멈이 소주 한 잔을 장난 삼아 살구 입술에 갖다 댄다. 살구가 큼큼 냄새를 맡더니 뒷걸음쳤다. 할멈이 희미하게 웃었다. 살구가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할멈을 쳐다봤다. 
술에 취한 탓인지, 서글픔이 밀려왔다. 울적한 마음을 누르며 다시 소주를 마셨다. 눈 감고, 먼저 간 영감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드니 보름달이 눈에 들어왔다. 달에서 영감이 어른거렸다. 살았을 때 잘해주었어야 했는데…. 후회만 가득했다. 
시집살이하느라 친정집도 잊고 살았다. 멀지도 않은 친정의 부모를, 어쩌다 보니 불효막심하게 살았다. 할멈은 저절로 솟는 눈물을 그냥 흐르게 했다.
“모두 내 팔자여. 사는 게 별거 있나.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할멈이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치고 살구를 보았다. 
“살구야! 내 팔자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살구도 할멈을 쳐다봤다.
“이 할미가 청승맞게 보이니?”
신기하게도, 할멈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살구가 멍멍 짖었다.
“청승맞지 않다고? 할미는 살구가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할미 마음 알지?
할멈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자, 살구가 또 멍멍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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