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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서유럽

진실의 입과 영화 "로마의 휴일"

by 훈 작가 2023. 10. 22.

처음 본 순간 요정인 줄 알았다.  ‘세기의 연인’ 또는 ‘불멸의 연인’이라 불리던 오드리 헵번에 대한 첫 느낌이다. 그녀는 <로마의 휴일>에서 여주인공인 앤 공주역을 맡았고, 미남 배우 그레고리 펙이 신문기자 역인 조 브래들리 역을 맡아 열연했던 영화다. 이 영화를 서너 번은 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긴 여운이 남았던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대사관에서 기자회견하는 장면이다. 기자인 줄도 모른 채 아쉬운 이별의 포옹을 하고 헤어진 앤 공주는 대사관 기자회견장에서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를 마주한다. 앤 공주는 놀란 표정이었지만, 극도로 감정을 조절하며 우아하게 품위를 잃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눈빛으로 두 사람만의 교감을 나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가슴이 짜릿하게 뜨거워지는 장면이다. 

단상에 있는 공주는 겉으로 나타낼 수 없는 감정 속에 사랑의 눈빛이 역력하다. 조 브래들리도 공주의 눈빛에 눈을 떼지 못한다. 짧은 순간 두 사람 간의 주고받는 무언 속에 깃든 사랑의 언어는 애틋함의 절정이다. 한평생 살면서 영원히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운명적 사랑이라 생각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보통 사람의 감정이라면 눈물을 삭이며 감추지 않고는 보지 못할 명장면이다. 

'로마의 휴일' 마지막 장면(인터넷에서 내려 받음)


앤 공주가 마주한 사랑의 주인공이 기자인 걸을 그전까지 몰랐다. 가장 앞줄에 자리한 브래들리와 공주는 수없이 눈을 마주치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더 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이번 방문일정 중 어디가 가장 인상에 남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로마, 살아 있는 동안 로마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라는 앤 공주의 답변은 그녀의 심정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앤 공주가 예정에 없었던 기자들과의 악수를 청한다. 한 기자가 로마를 방문한 기념 선물이라며 작은 봉투를 건넨다. 어빙이 건네준 봉투 속에는 브래들리와 앤 공주가 함께했던 로마의 추억이 깃든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앤 공주는 브래들리에게 다가가 조용히 악수하며 마지막 사랑의 눈빛을 나눈다. 브래들리는 짧은 재회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공주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예정된 기자회견이 끝나고 공주가 회견장을 나가자, 썰물같이 빠져나가는 기자들 속에 조 브래들리는 마지막까지 남는다. 그가 혼자 남은 후 기자회견장을 천천히 걸어 나오다가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조 브래들리의 모습.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사랑이란 이룰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로마의 휴일' 진실의 입 앞에서 (인터넷에서 내려 받음)


로마는 영화 <로마의 휴일>로 더욱 유명해진 관광 도시다. ‘진실의 입’도 그중 한 곳이다. 영화 속에서 그레고리 펙이 오드리 헵번을 이곳으로 데려와 여기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린다고 능청스럽게 장난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이 잘린 것처럼 모습을 보여주자 화들짝 놀라는 오드리 헵번의 표정에 영화 속 스토리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진실의 입은 산타 마리아인 코스메딘 성당의 입구에 있는 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로마 시대 헤라클레스 신전의 하수구 뚜껑이었다고 한다.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리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데 영화〈로마의 휴일〉 덕분에 유명해졌다. 진실의 입에 손 넣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곳은 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입장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낼 수 있는 모금함이 놓여 있어 보통 50센트 정도 내고 사진을 찍는다. 진실의 입이 있는 산타 마리아인 코스메딘 성당은 7층 높이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아름답다. 성당은 ‘밸런타인데이‘의 유래가 된 성 밸런타인의 유골이 묻혀있는 성당이다.

' 로마의 휴일'오드리 헵번(인터넷에서 내려 받음)


진실의 입에 새겨진 원형의 얼굴 석상은 원래 코스메딘 성당이 아닌, 길 건너편 진실의 입에 새겨진 석판 부조다. 진실의 입은 크기가 지름이 160cm 되는 석판이다. 입의 크기는 20cm가량 된다. 진실의 입에서 기념사진을 그 안에 손 한번 넣으려면 보통 한 시간은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 한 편이 보여주는 위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끼지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오랜 머무르는 것은 눈치가 보인다. 뒤편에 길게 늘어선 관광객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운 우리 새끼가 되기 때문이다. 적당히 눈치껏 사진을 찍는 게 에티켓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여행지에서 도대체 인증 사진 때문에 자칫 서로가 얼굴을 붉히는 것이 없어야 마음이 편하다. 여기서는 누구나 <로마의 휴일>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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