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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서유럽

빅벤(Big ben)

by 훈 작가 2023. 10. 29.
의사당

영국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많다. 먼저 런던의 빅벤, 타워브리지,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영박물관, 버킹엄 궁전 등이 생각난다. 그뿐만 아니다. 템스강, 2층 버스, 빨간 공중전화 부스도 생각난다. 좀 더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안개, 비,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떠오르고, 역사 속의 인물인 처칠,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여왕도 생각난다. 심지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도 생각난다.     

런던 투어가 시작되었다. 마음속으로 투어 첫 일정은 ‘빅벤’ 아니면 ‘타워브리지 ’ 일 것으로 생각했다. 런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부슬부슬 겨울비가 가늘게 날리는 날씨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여행자로서는 낭만적이라 여길 수 있는 정도로 비가 날렸다 그쳤다 반복한다. 그러나 비가 그칠 조짐은 전혀 없어 보였다.

예상대로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템스강 변에 도착했다. 아주 전망 좋은 곳이다. 잠시 가이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먼저 빅벤(Big ben)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의사당 건물 북쪽에 있는 시계탑이 빅벤이다. 빅벤은 ‘크다’라는 뜻을 지닌 ‘Big’와 설계자 벤저민 홀의 이름을 딴 ‘Ben’을 합해 만든 말이다. 처음에는 시계탑의 이름이 아니라 시계탑 안의 13.5톤에 달하는 종이 있던 종루였다고 한다.

시계는 높이 96m, 둥근 시계 판 지름 7m, 시침 2.9m, 분침 4.2m 크기라고 한다. 이 시계는 처음 작동한 이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시간의 정확성에 대해 런던의 자부심을 상징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빅벤이라고 부르는 명칭이 2012년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엘리자베스 타워(The Elizabeth Tower)’로 변경되었고 한다.

빅벤


일반적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라는 말하면 영국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의 원조는 영국이 아니란다. 이 표현은 원래 유럽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영토를 보유한 합스부르크제국 카를 5세의 통일 왕조를 가리키는 데 먼저 사용되었고, 이후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펠리페 2세와 이후의 스페인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영국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확장에 나서면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게 된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까 20세기 이전까지는 ‘해가 지지 않은 나라. ‘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고 그 후 미국이 독립하여 세계의 패권국으로 등장하면서 영국이란 나라를 수식했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알고 있었던 상식이 힘없이 무너졌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은 오로지 영국이란 나라에 한정된 수식 문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빈약한 상식의 창고에 쌓여있던 밑천이 다 드러난 것 같아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 든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괜히 남들 앞에서 영국 역사에 대해 아는 척했다가는 개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여행을 통해 새삼스레 배우는 게 많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영국을 일컫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빅토리아 여왕(Victoria, 재위 1837~1901)이 재위하던 시절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앞서 나가며 자리 잡았다. 빅토리아 여왕은 강력한 제국주의 정책을 통해 아프리카, 인도 등을 식민지로 삼아 대영제국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영국 역사상 가장 황금기나 다름없던 시대였다.

런던 아이


그러나 대영제국의 황금시대는 이때만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1558~1603) 시절 영국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대서양의 해상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 당시 셰익스피어로 상징되는 영국은 르네상스 같은 꽃을 피우고, 절대왕정 기의 절정을 맞는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바다로 진출하여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구축하여 황금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 때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영국과 스페인이 황금기였다고 부르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 대한 평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영국은 강한 해군력과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러나 스페인이 유럽대륙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을 당시 때에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략적인 왕실의 결혼을 통해서였다는 사실이다. 

16세기 유럽대륙은 두 왕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실과 프랑스의 발루아 왕실이 주인공이었다. 특히 합스부르크 왕가는 이미 여러 정략적인 혼인 관계를 통해 네덜란드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합병하여 제국의 꿈을 키웠다. 그러다 기회가 오자 합스부르크 왕가는 스페인 왕국과도 이해관계가 맞아서 떨어져 정략결혼을 통해 결합했다. 

운이 좋게도 스페인 왕위계승자들이 차례로 요절하자 1516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실 출신인 카를이 스페인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왕위에 오르자 바로 그는 “나의 왕국에는 해 지는 날이 없다.”라고 선언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스페인 왕이 아니다. 합스부르크 왕이다. 게다가 그는 1519년에 프랑스 왕을 물리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선출됨으로써 카를 5세라 불리기도 했다.

템스강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는 스페인 왕으로서 실질적인 황금기를 누렸다. 그는 무적함대를 앞세워 대서양을 안방처럼 지배했다. 거기에다 나중에 영국의 메리 여왕과 결혼까지 한다. 영국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신앙심이 깊었던 가톨릭이 이었다. 여왕은 ‘피의 메리’라고 불릴 정도로 영국 국교를 탄압했다. 그런 그녀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 왕과 결혼한 것은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펠리페 2세는 메리 여왕의 나라인 영국과 사사건건 갈증을 빚었다. 갈수록 스페인의 정책에 반기를 들자 펠리페 2세는 영국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더구나 영국의 메리 여왕이 죽자,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1세는 가톨릭이 아니라 신교도였다. 그럴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의 해적들이 신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스페인 상선을 습격하여 약탈을 일삼아 펠리페 2세는 골치가 아팠다. 

결국 펠리페 2세는 영국을 손보기로 마음먹고 공격을 지시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이에 대응해 해적 대장이었던 그레이크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스페인 무적함대에 맞섰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터키함대를 격파하여 위용을 자랑하던 무적함대가 영국함대에 오히려 무참히 참패하고 만다. 스페인은 해가 진 나라로 전락하면서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다시 등극하게 되었다.

2층 버스


가이드는 엘리자베스 1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금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2세(여행 당시)다. 빅벤(Big ben)이라고 부르던 의사당 시계탑 이름을 엘리자베스 타워로 명칭이 작년에 바뀌었다고 시작한 말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이어졌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든 주인공이 엘리자베스 1세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여전히 하늘은 흐리다. 신경통 증세가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이 오늘 같은 날씨를 만나면 무릎이 쑤셔서 짜증스러울지 모르겠다. 신경통과 날씨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행 날씨치고는 그리 좋은 날씨가 아니다. 예전에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는 해를 볼 수 없는 나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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