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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서유럽

탄식의 다리와 카사노바

by 훈 작가 2023. 11. 13.

‘베니스’ 하면 물의 도시 또는 운하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원도심은 베니스와 석호(潟湖) 안쪽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으로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으며 육지로부터 약 3.7 km 떨어져 있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올라가 도시가 물에 잠기고 있지만, 여전히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매혹적인 도시라고 현지 가이드가 설명했다. 서둘러 선택관광으로 수상택시를 타고 운하를  한 바퀴돌며 구경한 후 내렸다. 걷는가 싶더니 다리위에서 멈추었다. 그가 가리킨 곳이 탄식의 다리  (Ponte del Sospri) ’ 다. 뜬금없이 탄식이라니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의 표정을 보니 이곳은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탄식(歎息)은 근심이나 원망 따위로 한탄하여 숨을 내쉰다는 뜻이다. 주로 고통스럽거나 근심이 있을 때 탄식하게 마련이다. 다리를 건널 때 세상을 향해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어야 할 감정의 변화를 일으킬 만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이름을 그렇게 부를 리 없다. 이 다리는 17세기에 만들어졌다.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다리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베니스의 많은 다리가 도시의 여러 지역을 연결해 주는데, 탄식의 다리는 당시 총독부가 있던 <두칼레궁>과 <프리지오니 누오베>라는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였다고 한다. 
 
당시 범죄자들에 대한 재판은 <두칼레 궁전>에서 진행되었다.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자는 <두칼레 궁전> 정문으로 걸어 나올 수 있지만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범죄자는 다리를 건너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때 다리를 건너가면서 창문을 통해 하늘을 마지막으로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죄수들이 <프리지오니> 지하 감옥으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하늘을 볼 수가 없으니, 탄식(歎息)이 나올 만한 상황이라 여겨진다. 19세기 영국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 조지 바이런이 죄수들이 이 다리에서 바깥세상을 마지막으로 지켜보며 탄식할 것이라는 말에 착안하여 ‘탄식의 다리’로 지었다고 한다. <프리지오니> 감옥은 지하 감옥이다. 베니스는 유달리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지하 감옥은 홍수가 날 때 물에 잠겨 버리기 때문에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 감옥에 들어가면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리를 건너는 것이 그들에게는 빛이 있는 세상과 마지막 이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카사노바 초상화(인터넷에서 내려 받음)

 
 
다리가 유명해진 또 다른 일화(逸話)가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일화의 주인공은 희대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카사노바다. 사방이 물뿐인 이 감옥(샌프란시스코 灣의 알카트라즈 교도소와 비슷)에서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유일한 사람이라는데 그가 바로 카사노바라고 한다. 그는 베니스 출신으로 미남에다 화술이 뛰어나 여러 여성과 사귀었다고 한다. 결국 그가 풍기문란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은 지붕이 납으로 되어 있어 여름엔 더위로 겨울엔 추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특히 지붕이 낮아 키가 거의 2미터나 되는 그는 제대로 일어설 수도 없었다고 한다. 투옥된 감옥은 누구도 탈옥할 수 없다는 악명 높은 감옥이었다. 그럼에도 카사노바는 탈출에 성공한다.
 
당시 감옥에 갇힌 죄수도 돈을 내면 요리를 주문할 수 있었으나 그에게는 이런 권리조차 박탈되어 교도소장 부인이 만든 마카로니를 먹어야 했는데 그녀를 유혹해 도움을 받아 ‘쇼생크 탈출’을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모험가이자 작가이고, 시인이면서 소설가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직자, 바이올린 연주자, 병사, 도서관 사서, 번역가, 스파이, 철학자, 도박꾼, 복권의 창안자, 연금술사가 그에게 붙는 수식어다. 그는 체코의 둑스 성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 73세 나이로 죽었다. 
 
‘탄식의 다리’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다. 죽음의 다리는 누구나 건너야 할 다리다. 다만, ‘탄식(歎息)의 다리’는 죄를 짓고 건너 죽음이란 단어를 먼저 마주해야 하는 다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시사(示唆)하는 바가 있다. 감옥은 자유를 박탈하는 공간이다. 자유가 없는 삶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은 죽는다. 다만,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 언제, 어떻게, 어디서 죽음과 마주할지 모를 뿐이다. 죽음은 허무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렇다. 죽음이란 다리를 건널 때 누구든 탄식(歎息)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탄식이 터져 나오는 순간 마음에 남는 언어는 후회다. 죽음과 마주할 때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사실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죽음은 홀로 맞이한다. 죽음은 동행이 아니다. 더불어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다. 그래서 두렵고, 마주하고 싶지 않고, 외면하려 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후회 없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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