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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달과 별

by 훈 작가 2023. 11. 1.

달밤이 싫은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별 볼 일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별 볼 일 없다.’라고 하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달마저 환하게 뜨는 밤이면 말 그대로 별 볼 일이 없게 만드니 싫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달을 보는 것보다 별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밤이 이 가을엔 더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같이 보름달이 뜬 날은 싫습니다.

달에 대한 추억은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별에 대한 어릴 적 추억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시골 고향 집 마당이 떠오릅니다. 한 여름밤,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 하늘의 무수한 별을 세다가 잠이 들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떻습니까. 별 보기가 어렵습니다. 많던 별이 다 어디로 갔을까요. 정말 말장난 같은 표현이지만, 별 볼 일 없는 밤입니다.


별은 우리에게 특별한 서정이 있습니다. 꿈에 대한 동경, 순수했던 시절의 사랑, 가슴에 품었던 희망 등을 담았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문학에서는 별을 소재로 한 시나 소설은 그 시절의 자아 성찰을 일깨워 주는 주제였습니다. 윤동주의 서시가 그랬고, 알퐁스 도데의 별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별을 볼 줄 아는 선각자였던 겁니다. 그들이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별이 있어도 별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별들이 수난받는 시대에 살고 있어, 별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별 볼 일 없다고 하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거나, 나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을 일컬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이럴 때 별은 본의 아니게 굴욕을 당하는 처지로 내몰립니다. 별은 아무 죄가 없는데 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 볼 일 없는 밤을 만든 건 우리 탓입니다. 별을 보는 것보다 영화나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 볼거리가 많아진 겁니다. 빛 공해로 별 보기가 힘든 데다 별 볼 시간마저 빼앗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별을 더 볼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이 별을 관심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러다가 영영 별이 우리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달이 떴습니다. 산책길에 만난 보름달이 반갑지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밤하늘을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보름달 때문에 별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데, 자세히 보니 보름달 옆에 별 하나가 반짝입니다. 녀석이 잃어버린 추억을 갖고 찾아온 모양입니다. 오늘 밤 꿈에서라도 별과 지난 추억을 꺼내 정담을 나누어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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