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당신의 향기를 바꾸세요.

by 훈 작가 2023. 11. 17.

당신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한여름엔 다른 나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노랗게 단장한 당신의 모습을 보니 아름답습니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습니다. 한편으로 당신이 오래도록 장수하며 이 세상을 지키고 있으니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떤 이는 당신을 영원함과 불변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종종 사랑과 결혼의 상징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안타까움도 느낍니다. 듣기 싫을지 모르지만, 신의 미움을 받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다른 나무들은 자웅동체(雌雄同體)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닙니다. 무슨 사연이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종족을 번식시킬 수 없도록 태어났으니, 신의 미움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을 겁니다. 숲 속의 다른 동물들이 당신의 열매를 먹지 않는것을. 새들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다람쥐나 청설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녀석들에겐 치명적이니까요. 심지어 벌레조차도 거의 먹지 않습니다. 그만큼 녀석들에겐 가까이하기엔 당신은 너무 먼 당신입니다. 왜, 당신의 품에 새들이 보금자리를 만들기를 싫어하는지도 반성해야 할 겁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을 사랑하지만, 미워하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입니다. 여자로서 외모도 중요합니다. 그래도 모름지기 여자라면 향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당신에게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향기가 너무 불쾌합니다. 좋게 말해 향기지 사실은 역겨운 냄새입니다. 다가가고 싶어도 기분 나쁜 냄새이다 보니 가까이 가기가 싫은 겁니다.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본능적으로 남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당신은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습니다.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남자들이 당신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이에 그치지 않고, 당신의 종족을 멸종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당국자들이 거리의 파수꾼이었던 당신의 친구들을 없애기 시작한 겁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현재 당신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위기(EN)’ 등급 수종(樹種)으로 지정되어 국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입니다. 

당신에겐 생명을 유지하고 오래 살기 위한 본능일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신의 노여움을 풀어드리고 역겨운 냄새가 아니라, 남자들이 매료 될 수 있는 매혹적인 향기로 바꾸어 달라고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지금의 냄새가 아닌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처럼 당신에게 다가가 함께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언제일지 몰라도 당신에게 좋은 향기를 느끼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Photo 에세이 > 감성 한 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따뜻한 슬픔  (10) 2023.11.19
낙엽이 되어 보다  (6) 2023.11.18
걷다 보면  (12) 2023.11.15
달과 별  (2) 2023.11.01
가을 무곡  (4) 2023.10.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