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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낙엽이 되어 보다

by 훈 작가 2023. 11. 18.

낭만이라 할 때가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이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나 봅니다. 떠나는 것도 아프고 슬픈데, 모두 외면합니다. 나 보기가 싫은 건지, 지겨운 건지, 사람들은 어느 순간 낭만을 슬그머니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외롭고 쓸쓸한 이 계절에 애물단지 취급받는 처지가 되어버린 나를 골칫덩어리로 여깁니다. 여기저기 볼멘소리가 들립니다. 이리 쓸고, 저리 치워도 끝이 없다고.


비가 내립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하늘이 내 마음을 알았나 봅니다. 이별이 슬픈 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가을이 낭만이라 생각했습니다. 헤어짐을 공감하며 노래할 땐 날 위로해 주는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 사랑에 빗대어 이 가을에 이런저런 노래까지 불렀던 그들이니까요. 착각이었나요. 아니면 변심인가요. 낭만이라 했던 그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변덕스러운 그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기대하려 않으렵니다. 단풍으로 예쁘게 단장한 모습일 땐 그렇게 환호 작약하며 호들갑 떨던 당신. 위선과 진실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보여주었던 당신에 대한 사랑을 이젠 접으렵니다. 당신에겐 뜨거울 땐 사랑이고, 찬 바람 불면 떠나야 하는 인연이 사랑이 아니었나 봅니다. 당신이 보여준 사랑과 낭만은 늘 그랬던 겁니다. 낭만을 노래하며 내게 왔던 당신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바람둥이였습니다.


그리움은 남겠지만, 어차피 이별이 운명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슬퍼하지 않으렵니다. 하얀 계절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 당신이 버리고 간 낭만을 그곳에서 만나렵니다. 그때까지 남은 시간, 이렇게 나 홀로 남아 불꽃을 피울 겁니다. 태우고 또 태워서 빨갛게 낭만을 노래할 겁니다. 가을이 아름다웠다고. 당신이 날 버리고 갔어도, 난 이 계절과 함께 마지막 낭만을 끝까지 지켰노라고. 


낙엽이 되어 떠나가는 이 시간, 난 낭만이란 단어를 꼭 껴안고 이 계절과 함께 마지막 사랑을 나누렵니다. 당신이 날 버리고 떠났어도 내가 당신에게 한 때는 사랑과 낭만이었던 사실은 잊지 않을 겁니다. 사랑이 남긴 추억은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으니까요. 부디, 이별하더라도 내가 당신의 천덕꾸러기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연은 항상 소중하고 언젠가 다시 또 만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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