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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따뜻한 슬픔

by 훈 작가 2023. 11. 19.

슬픔을 만져봅니다. 따뜻합니다. 차갑게 느껴질 줄 알았습니다.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아 그런가 봅니다. 아마 품속에 남아있는 그리움이 사그라들면 차가울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눈물이 이슬이 되어 아픔을 돋게 할 겁니다. 그때 서야 만져본 슬픔이 제대로 느껴져 마음에 통증이 전달될 겁니다.

슬픔이란 감정은 따뜻한 온기가 있습니다. 슬픔은 뜨거운 심장에서 흐르는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볼 수도 보이지도 않는 슬픔의 실체를 만지는 일은 감각이 아니라 감정으로 전달됩니다. 감정은 마음의 감각입니다. 그러니 감정으로만 만질 수 있고 느낍니다. 그러나 감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얼어붙은 마음으론 슬픔이 만져지지 않습니다.


사는 동안 숱한 기억에 숨어있는 감정의 퍼즐이 마음의 호수에 흩어져 떠다닙니다. 흩어진 조각 속에 있는 인연이 어느 날 이별로 다가옵니다. 그 이별이 심장을 아프게 할 때 어떤 감정으로 표출되느냐에 따라 슬픔이 만져집니다. 이별 속에 애잔한 추억과 그리움이 담겨있을 때 만질 수 있는 겁니다.


애수에 젖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것 같아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만져본 겁니다. 녀석이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빨갛게 부어 있습니다. 헤어지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이별이 얼마나 싫었으면, 가을과 얼마나 정이 깊게 들었으면, 나뭇가지 언저리에 앉아 울었을까,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모른 척하고 가 버릴까,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다가가 어루만져 봅니다. 가을이 남긴 이별의 감정 때문입니다. 떠나기 싫어도 떠나야만 하는 건 삶의 운명입니다. 어차피 인연은 기쁨으로 시작해 슬픔으로 정의되는 것. 슬픔은 따뜻한 이별에서 만져지는 마지막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한 슬픔은 따뜻해야 합니다. 차가운 이별은 눈물이 없습니다. 냉정한 이별은 마음에 상처와 함께 서러움이 남습니다. 자칫 훗날 앙갚음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을의 이별은 그렇지 않습니다. 슬퍼도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그런 아픔을 남기지 않습니다. 가을과의 이별은 슬퍼도 애잔한 정이 있어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지금의 슬픔이 차갑지만 않은 건 이 때문입니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또 다른 계절에 만날 겁니다. 가을이 남긴 슬픔을 만져도 심장은 여전히 뜨거운 이유입니다. 오늘의 슬픔을 나는 아름답게 기억할 겁니다. 슬프지만 내 안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를 겁니다. 이 가을의 슬픔을 만져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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