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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바람을 담다

by 훈 작가 2023. 12. 5.

보이지 않습니다. 잡을 수 없고, 잡히지도 않습니다. 항상 공중에 떠돌아다닙니다. 땅에 내려오는 일도 없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름은 있으니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실체도 없고, 그가 어디서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나그네처럼 유랑생활을 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람입니다.

가을에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외로움, 쓸쓸함, 고독, 나그네, 방황 같은 단어가 생각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을이면 나도 모르게 앞에 언급한 단어가 품고 있는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 단어의 공통적인 뉘앙스는 ‘우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이런 이유로 ‘가을 탄다’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같은 바람이라도 가을에 만나는 바람은 감성을 파고듭니다. 거리에 흩어진 낙엽, 바람은 나그네가 되어 이들과 동행합니다. 때론 마지막 잎새마저 떨구게 하는 냉정함도 있습니다. 앙상하게 마른 나목(裸木) 사이로 부는 바람은 쓸쓸하다 못해 마음마저 우울하게 만듭니다. 이때 부는 바람은 낭만적이고, 시적인 감성을 담아 음악과 문학이 됩니다.


가을바람도 포근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코스모스 꽃밭에 부는 바람이 그렇습니다. 코스모스꽃이 만발한 가을날, 바람과 꽃은 서로 그대가 되어 춤추며 가을 향연을 즐깁니다. 아침 안개가 만든 분위기는 바람의 숨결을 따뜻하게 해 주며, 그의 손길은 어느 때보다 부드럽습니다. 바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가을아침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도해봐도 코스모스꽃만 찍힙니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투명망토를 입었는지, 바람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애초부터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계속 셔터를 눌러봅니다. 무모한 시도입니다. 그러나 카메라가 지닌 고유의 기능을 믿고 계속 찍어 봅니다. 역시 마음 같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아침 안개가 짙게 깔린 걸 이용하면 바람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카메라로 즐길 수 있는 사진 놀이입니다. 단순한 호기심 차원입니다. 처음 사진은 바람을 표현해 보고자 찍은 사진입니다. 한참 생각하다 제목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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