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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그리움

by 훈 작가 2023. 12. 6.

가만히 눈감고 가을을 안아 보시기 바랍니다. 살포시 떠오르는 그리움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추억이 무엇인지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움은 추억의 앨범 속에 묻어둔 시간의 흔적이자 아물지 않은 아쉬움의 상처입니다. 어쩔 수 없이 미련을 버리고 돌아서야 했던 후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 그 속에 머물러 있는 아련한 흑백사진 같은 내 모습이거나 아득한 고향 풍경이 그리움의 실체이고, 때론 헤어지기 싫은 이별의 아픔이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그림자가 그리움으로 홀연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가슴에 사무치거나 눈에 어른거리는 그리움이라면 당신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큽니다.

처음 경험한 그리움은 아주 어릴 적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시골에서 도회지로 이사와 학교를 전학 가게 되었습니다. 텃새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얄궂은 동네 형들이 싸움을 부추겨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까까머리라고 약 올리고, 촌놈이라 따돌림당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시골 친구들이 생각나 혼났습니다. 그때가 가을이었습니다.


어떤 그리움이든 가을은 뒤돌아보게 합니다. 자연의 사계 중 가을만이 시간을 숙성시키고 완결된 생명의 결실을 거두는 시점입니다. 꽃으로 머물렀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뜨거웠던 태양과 거친 비바람의 시간을 거치면서 얻어낸 삶의 시간입니다. 이제 서야 슬그머니 못다 한 아쉬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삶의 궤적도 비슷합니다. 인생이란 여정 속에 봄과 여름은 KTX처럼 지나갑니다. 어느 순간 가을인가 하고 느낄 때가 옵니다. 그리움이 뭔가에 따라 당신이 서 있는 계절의 가을이 다릅니다. 그리움의 대상이 첫사랑이라면 초가을쯤일 것이고, 아련한 시골 고향 마을 언덕이라면 코스모스가 한창일 때 일 겁니다.

어느 날 친한 친구의 부모님 부고 소식이 하나둘 접하게 되면 당신은 늦가을을 지나고 있는 겁니다. 그리움의 대상이 낭만과 감성이 아니라, 내 정체성을 반추하는 인생 가을 역에 서 있는 겁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나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허무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시기입니다.


붉은 노을이 오늘도 어김없이 일상을 안고 떠나고 있습니다. 여운이 가득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태양은 삶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떠날 땐 아쉬움을 남깁니다. 오늘의 삶이 언젠가는 그리움으로 내 삶 속의 추억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때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저 노을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진 속의 새 한 마리가 보입니다. 우리는 가끔 새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가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새가 된다면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어쩌면 그냥 날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새가 되어 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막상 날 수 있다면 갈 곳이 마땅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꿈속에서 라면 다를 겁니다. 

오늘밤만이라도 꿈속에 새가 되어 보고 싶습니다. 그리움이 있는 그곳으로 날아가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보고 싶고, 가슴앓이하며 짝사랑했던 그 소녀도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 하늘로 떠나신 아버지도 잘 계시는지 보고 싶습니다. 그리움이 저미는 가을이 깊어갑니다. 가을엔 왜 그리움에 젖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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