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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외로움과 이별하기

by 훈 작가 2023. 12. 10.

외로움은 마음의 통증입니다. 혼자 있을 때 느낍니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로 가을에 옵니다. 누군가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느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를 보고 가슴을 저밉니다. 가을은 가지고 있던 걸 내려놓으며 우리에게 이별을 예고합니다. 외로움의 서막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겁니다.

떠난다는 것은 홀로 남는 것이고, 떠난 자리는 아무도 채워주지 않습니다. 그 공간은 오롯이 내 몫입니다.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고, 혼자서 내 안의 나를 위로하고 안아주면서 마음을 토닥거려 주어야 하는 격려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외로움을 탑니다. 가을은 누구든 혼자 있는 게 힘들고 상처받기 쉬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여름은 잠깐입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외로움은 홀연 불청객이 되어 나만의 거실로 날아옵니다. 원인 모를 우울함이 커피 한잔하자고 의자에 앉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인 양 추억의 한 페이지를 꺼내 속삭입니다. 눈을 감아봅니다. 주마등처럼 지난 추억이 스치고, 때론 코스모스꽃이 아름답던 먼 고향길도 떠오릅니다.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붉은 단풍잎 하나가 시선을 붙잡아 어쩔 수 없이 외로움을 꺼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녀석은 이 계절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나 봅니다. 눈물이 차갑지 않습니다. 고개 들어 나뭇가지를 보니 또 한 녀석이 가지에 매달려 애처롭게 떨고 있습니다. 녀석이 떠날 때는 말없이, 눈물은 마음으로만 흘리랍니다.


우울할 때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바다입니다. 답답하고 외로움에 짓눌려 있던 마음을 달래보고 싶어 찾은 바다, 거친 가을 바다는 낭만과 이별한 지 한참 되었나 봅니다. 여름 바다에 머물러 있던 사랑의 전설이 떠났습니다. 멀리 겨울이 파도를 타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외로움을 안고 보내는 것은 사치입니다.

외로움은 잠시 지나가는 터널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을 여행에 만났던 외로움은 마음의 생채기입니다. 외로움을 벗어야 합니다. 외롭다고 하는 감정은 스스로가 만든 로맨스입니다. 터널의 끝에서 만나야 할 시간은 외로움과의 데이트가 아니라 새로운 사랑의 계절입니다. 내 안의 나를 사랑(自己愛)해야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외로움의 반대말을 찾아야 하는데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외로움의 터널 끝에서 만나게 될 나는 지난날의 내가 아닙니다. 하얀 계절로 가는 환승 열차에 탈 나는 미래의 나입니다. 외로움의 껍질을 벗고 자기애(自己愛)로 갈아입은 여행자가 될 겁니다. 삶은 항상 과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외로움은 단지 나를 숙성시켜 주는 영혼의 반려자일 뿐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나를 붙들고 있는 외로움은 다릅니다. 혼자라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내 안의 나 대신에 외로움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없애는 겁니다. 내 안의 나와 대화하면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가을이 떠났으니 이제 헤어질 결심을 할 때가 왔습니다. 외로움은 붙잡야 할 사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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