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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북유럽

부러우면 지는 거다

by 훈 작가 2023. 11. 7.

계단은 높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밟고 오르거나 내릴 수 있도록 여러 턱으로 만든 구축물이다. 고층 건물이나 아파트도 계단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나, 이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엘리베이터 때문이다. 계단은 단지 법규상 있어야 하는 부속물에 불과하다. 초기에 등장한 지하철, 이용하려면 불가피하게 많은 계단을 걸어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곳이 많다. 계단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일부러 운동 삼아 걸어서 오르는 사람들이 아닐까, 여겨진다.

고정관념을 깨는 계단도 있다.  누군가에게 차 한 잔을 마시며 쉬거나,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되어 주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까운 친구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정담을 나누는 카페가 되어 준다. 이런 계단이라면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친근감 있게 느껴질 것이다. 헬싱키 대성당이 있는 언덕 위에서 광장 아래로 이어지는 공간은 계단이 바로 그런 경우다. 사진 속 계단은 일반 계단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계단 속의 풍경이 야외 카페 아니면, 헬싱키 시민을 위한 쉼터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진을 취미로 하지 않았다면,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무얼 찍었냐고 물으면 답이 궁색할 뿐이다. 그저 느낌이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삶의 자유라 할까, 우리에게 없는 것이 고스란히 나의 시선을 움직이게 했다. 사진 속에 멈춘 시간, 그 속의 핀란드 사람들이 우리의 일상과 달라 보였다. 책을 읽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잠시 앉아 햇살을 즐기는 여유, 그들이 사람같이 사는 것 같아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여행에서 패자가 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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