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은 여행이다/북유럽

비겔란 공원

by 훈 작가 2023. 12. 15.

조각 작품이 군집해 있는 공원의 중앙 언덕으로 걸어 올라갔다. 하늘빛이 유난히 깨끗하고 푸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의 모습이 하얀 눈사람 모습으로 들어왔다. 조각상 중앙에는 길쭉하게 빼빼로 모양의 조각상도 있었다. 거기에는 인간 삶의 여정을 표현한 것 같은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그 조각상을 중심으로 삶의 감정이 느껴지는 표정을 담은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마다 나름대로 주제가 있을 텐데, 각각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설명이 없으니, 눈으로만 본다. 참 이럴 때가 답답하다. 안목으로 보아야 하는 데 그게 없기 때문이다. 


이 공원의 원래 이름은 ‘프로그네로 공원’이나 지금은 비겔란 조각공원이다. 오슬로 도심의 북동쪽 드넓은 녹지에 조성되어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작품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오슬로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과 그의 제자들이 제작한 조각군 212개, 인물상 671개가 전시된 공원이다. 비겔란이 13년에 걸쳐 청동, 화강암, 주철을 사용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희로애락이었다. 


공원에 전시된 비겔란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높이가 17m에 무게가 270톤에 달하는 화강암 조각상 '모놀리트(Monolith)'이다. 가이드 말로는 ‘하나의 돌’이란 뜻이란다. 공원 한가운데 서 있어 멀리서 보면 그저 커다란 기둥처럼 보이지만, 121명의 남녀가 엉켜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작품이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투쟁, 희망, 슬픔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섬세한 표현이 놀라울 따름이다. 


가만히 보노라면 인생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원초적인 본능과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군상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며 실제 인체 크기로 조각되어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위는 작고 수직으로 서 있는 사람부터 아래쪽으로 내려오며 몸집이 크고 수평을 이루는 자세를 통해 갓난아이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노인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냥 보기만 하면 단순한 조각상인데 설명을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또 인상을 쓰며 찡그린 나체의 소년을 조각한 ‘화를 내는 소년상’도 유명하다. 한때 도난을 당해 다시 만들어 세우기도 했지만, 지금의 작품은 되찾은 원래의 조각상이다.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이나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와 더불어 가장 ‘썰렁한 볼거리’로 꼽히기는 조각 작품이다.


구스타프 비겔란은 종합 야외 전시장인 이 공원의 분수 광장을 조각한 조각가이다. 부모는 농부였으며, 14세 때 목 세공사의 제자가 되었다. 1889년 첫 작품을 발표했으며, 초기에는 오귀스트 로댕의 영향을 받았지만, 곧 자신의 독자적인 사실주의 양식을 찾았다. 그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대부분 인물의 흉상과 부조인 초기의 작품들은 오슬로의 비겔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여전히 멀리 보이는 분수대 조각상에서 쏟아지는 물이 신부의 면사포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모놀리트(Monolith)' 주변의 조각상들은 햇빛을 받아 화강암 특유의 하얀 질감이 매끄럽게 보이면서 명암을 드러내며 작품의 섬세한 질감이 조각상의 주제를 돋보이게 했다. 더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파란 하늘이 만든 배경 때문이다. 예술가의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깊이 있는 안목으로 인생의 모습을 날카롭게 파악해 표현해 놓은 것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모놀리트(Monolith)''모놀리트(Monolith)'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삶의 굴레를 음미하며 그 표정들을 마음에 새겨 보았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 공원의 아래쪽 풍경을 보다가 다시 뒤를 돌아본다. 언덕 위를 보니 '모놀리트(Monolith)' 조각상에 엉겨 붙은 사람 모양 때문에 삶이 고단한 모습으로 스친다. 저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진정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일까? 작품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분수대 아래에 청둥오리 두 마리가 쏟아지는 하얀 물결을 한가로이 지켜보고 있다. 분수대 물로 뛰어들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분수대를 지나 양쪽으로 펼쳐진 넓은 잔디 위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와 일광욕을 즐기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인이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누워있거나 앉아 있다. 잔디 주위에 줄지어 있는 나무 아래 산책로에는 조깅하는 사람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어울려 여유를 즐긴다. 


공원을, 중심을 가로지르는 넓은 포장도로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다. 때때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도 눈에 보였다. 다리를 건너면서 왼쪽 아래를 보니 어린 꼬마 녀석들이 연못에 오리 떼를 향해 먹이를 던져주는 모습이 보였다. 다리 난간 양쪽에는 비겔란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다리를 건너서 낯선 모습이 있어 눈을 의심케 했다. 비키니만 입고 겉옷을 훌러덩 벗은 채로 일광욕을 즐기는 젊은 여자가 주위 시선과는 아랑곳없이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옆쪽으로 약 30m쯤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남자가 상의를 벗고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광경이 내 눈에 조금 낯설게 보였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나였다. 그런 풍경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별일 아닌 것처럼 눈을 돌렸다. 공원 입구에 다 왔을 때 선글라스를 낀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키가 큰 아가씨들이 마치 아이돌 그룹 가수들이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비겔란 공원 투어는 여기까지다. 선진국 노르웨이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부러워서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본 것은 조각 작품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자연의 햇살을 즐기고, 맑은 공기와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느낌밖에 없다. 그저 평범한 공원과 평범한 시민들의 평범한 삶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행복한 삶이 있는 것 같다. 이방인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인생은 여행이다 > 북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훌드라 요정과 효스 폭포  (118) 2024.03.19
덴마크가 너무 부러웠던 이유(1)  (160) 2024.02.28
카메라 세례  (8) 2023.11.20
부러우면 지는 거다  (0) 2023.11.07
헬싱키 대성당  (6) 2023.11.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