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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북유럽

덴마크가 너무 부러웠던 이유(1)

by 훈 작가 2024. 2. 28.
크리스티안스보르궁전(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오늘은 현지 가이드가 인심을 쓴다. 특별히 일정표상에 없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고 했다. 특별하다면 기대가 된다. 우리는 ‘특’이란 글자가 들어가면 유난히 좋아한다. 왜냐하면 뭔가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다. 어쩌면 우리가 그만큼 대접받아야 하는데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은 누구나가 동등한 법인데 아직은 거기까지 수준이 미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편법이 통하는 사회가 ‘특’이란 글자를 만들어 낸다. 생각해 보았다. ‘보통’이란 단어와 ‘특별’이란 낱말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들여다보면, 현실에서 정상적이지 않을 거라는 사회적 통념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가 투명해지고 의사결정이 권력에 좌우되지 않고 원칙이 바로 서면 ‘특’이란 말이 우리 사회 저변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현지 가이드 말 한마디에 나는 갑자기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그가 말한 ‘특’이란 의미는 그게 아니겠지, 생각했다. 뭔가 우리 일행에게 깜짝 놀라게 할 일종의 서비스가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 여행 일정에는 없지만, 무엇인가 더 알려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어딘가로 안내할 것만 같았다. 그게 혹시 안데르센과 관련 있는 곳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현지 가이드의 말 한마디에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게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우리에게 궁금증을 자아낸 수수께끼는 국회의사당이었다. 그런데 그게 뭐가 특별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국회? 하면 여의도 아닌가. 단어만 떠올려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난 젊은 현지 가이드가 싱거운 사람이라 여겼다. 우리에게 ‘뻥~’ 친 것 같아서다. 특별하다고 해 놓고 겨우 의사당 건물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 고풍스러운 국회의사당 건물로 갔다. 사람도 별로 없고 이따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만 눈에 띄었다. 

의사당 건물 앞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맨 처음 꺼낸 말이 비리(非理)가 없이 깨끗한 정치를 하는 나라가 덴마크 국회라고 말했다. 우리보다 선진국이니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덴마크 국회의원들은 자전거로 출 ․ 퇴근한단다. 그러더니 한쪽을 가리키며 보라고 말했다. 자전거만 보였다. 

“바로 저곳이 국회의원들 주차장입니다.” 

현지 가이드는 다시 말을 이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이것은 논-픽션이 아니라, 팩트(Fact)입니다. 덴마크 국회의원 63%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장관도 자전거로 출퇴근합니다. 덴마크에서는 국회의원이 특권층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국회 주차장에서 고급 승용차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원 수도 179명이고,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면서도 좁은 비서실에 의원 2명 당 비서가 1명이 배치되며, 사무실 가구나 비품도 자비로 감당하며, 의정활동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휴가 기간에 대신 일할 의원이 누군지 알려야 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특권이 없고, 대신 그들은 시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함께하면서 민생을 챙기며 신뢰를 얻는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보좌관은 최대 9명(인턴 1명 포함)까지 둘 수 있다. 연봉은 1억이 넘는다. 권위와 부를 상징하는 검은색 대형 승용차를 이용하고, 길게 줄을 서는 일반 승객과 달리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만 도착하면 탑승할 수 있다. 누리는 특권이 상상 이상이다. 여기에 면책특권까지 있고 심심치 않게 성폭행이나 갑질 같은 물의를 일으켜도 사퇴하지 않고 버티는 뻔뻔함으로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까지 높인다.

대한민국의 국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얘기를 듣고 나서 은근히 화가 났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부러웠다. 우리나라도 덴마크처럼 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마도 내 생전에 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기분 좋게 온 북유럽 여행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알고 나니 기분이 그렇다. 차라리 우리 국회의원을 아프리카로 수출하고, 덴마크 같은 나라에서 수입하면 안 될까. 가능하다면 그랬으면 좋겠다. 말도 안 되지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국회의사당 건물 쪽으로 들어가는 왼쪽으로 공익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덴마크 국회에서 마련한 공익광고로 삼성 로고가 새겨진 영국프로축구 첼시팀 선수복 차림의 흑인 남성과 10대 어린 여인이 아이를 업고 있는 사진이다. 그 옆으로는 덴마크 왕세자 비와 함께 흑인 여성이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이 있다. 그나마 삼성 로고를 보니 조금이나마 자부심도 느끼고 위안이 된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덴마크 왕실도 여성과 교육에 관해 폭넓은 관심을 기울이며 활동하며 국민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단다. 사진 속의 흑인 소녀는 중학교 3학년인 어린 나이에 임신해 성인이 되어 결혼하게 됐지만, 여전히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공익광고란다. 이어 국회의사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상단에는 머리를 감싸고 있는 네 얼굴의 부조물이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해 보라는 뜻의 조각 부조물이다. 상반신의 조각상으로 귀, 코, 머리, 배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현지 가이드는 이를 4통(이(耳) 통, 비(鼻) 통, 두(頭) 통, 복(腹) 통)이라 말하며, 국회의원들이 출입문을 드나들 때마다 국민의 고통을 생각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경청하는 모습, 고민하는 모습, 민심을 살피는 모습, 숙고하는 모습으로 국민을 보살피라는 뜻이란다.

국회의사당 설명이 끝나자, 그는 왕립도서관으로 안내했다.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가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왜 ‘특’이란 말을 꺼냈을까. 되짚어봤다. 아무래도 한심해 보이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때문인 것 같다. ‘특권’만 누리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우리 국회의원에 대해 일갈(一喝)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현지 가이드가 우리에게 들려준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덴마크란 나라가 너무 부러울 뿐이다.

※크리스티안스보르 궁전(ChristiansborgSlotsplads)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성이다. 현재 덴마크 의회 의사당, 덴마크의 총리 관저, 덴마크 대법원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덴마크의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1794년, 1884년에 일어난 화재 이후에 현재와 같은 성이 건설되었다. 바로크 건축 양식,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 네오바로크 건축 양식이라는 3개의 건축 양식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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