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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북유럽

카메라 세례

by 훈 작가 2023. 11. 20.

카메라 세례를 받는 사람은 세간의 관심을 받을 만한 사건의 주인공인 경우입니다. 대개 장소가 경찰서 이거나 검찰청이면 범죄와 관련된 피의자이거나 참고인이고, 장소가 여의도 국회이거나 정당이면 정치인입니다. 이를 제외하면 TV나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이 인터뷰하거나 알 만한 스포츠 스타가 특정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경우일 겁니다. 일반인이 카메라 세례를 받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좋은 일로 카메라 세례를 받는 경우 주인공의 표정이 밝습니다. 반대로 좋지 않은 일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 아예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푹 숙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이유는 다 알고도 남습니다. 우리는 그런 장면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요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런 장면이 TV 방송 전파를 타고 안방에 전달됩니다. 언급했듯이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해외여행에 나서면 관심을 끄는 것들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거죠. 당연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부터 그렇습니다. 같은 얼굴인데도 분위기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게 보입니다. 같은 눈인데, 색이 다르고, 같은 코라도 높이가 다릅니다. 머리부터 피부색까지, 심지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다릅니다. 

여행자의 본능적인 시선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도착했습니다. 원로원 건물을 둘러보고 광장으로 내려왔습니다. 마침 그때 시선을 사로잡은 주인공을 보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어린 천사들이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너무 예쁘고 앙증스러웠습니다.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고 싶어 망설여집니다. 누군가에게 허락받아야 할 것 같은데 사람이 안 보입니다. 


애라, 모르겠다 우선 찍고 보자 하고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급하게 셔터를 눌렀습니다.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빨리 찍고 뒤돌아서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일단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애써 안 그런 척하고 돌아섰습니다. 일종의 몰래카메라를 찍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 ‘얘들아, 고마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한 무리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갑자기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졌습니다. 그들이 취재기자들처럼 카메라를 들이대며 카메라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그중 한 여자가 같이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옆에 앉는 순간 이에 깜짝 놀란 꼬마 아이 2명이 벌떡 일어나 뒤로 도망가듯 숨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나 때문에 졸지에 카메라 세례를 받느라 천사들이 홍역을 치렀습니다. 


어린 소녀들에게 카메라 세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미안하게 느꼈던 건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인들 특유의 언어 때문에 주변이 시끄러웠습니다. 어린 천사들이 한가로이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자유시간을 결과적으로 방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 관광객은 이에 개의치 않고 카메라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적당히 찍고 물러났으면 싶은데…. 아! 이런 짱개들 봤나. 너무 한다. 너무해.

해외 여러 나라 유명 관광지에 가 보면 중국인들 천지입니다. 왜 이렇게 시끄럽지, 하고 그곳을 보면 여지없이 그들입니다. 불편한 시선으로 보면 안하무인격입니다. X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듯 일단 피하면 편합니다. 현장을 떠나려다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무례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사진 욕심 때문에 갑자기 카메라 세례를 받게 된 어린 천사들에게 미안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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