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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호주&뉴질랜드

와카티푸 호수와 퀸스타운

by 훈 작가 2023. 12. 22.

 

퀸스타운으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했다. 새벽 6시에 출발하느라 단잠을 설치며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비몽사몽의 경계를 넘나들며 잠을 자다 또 깼다. 목축의 나라로 알려진 뉴질랜드는 양, 소, 사슴, 알파카 등 많은 가축을 방목한다. Milford Sound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창 밖에 펼쳐진 풍경이 말 그대로였다.




호수를 끼고 달리던 투어버스가 멈추었다. 탤런트 이영애가 LG 에어컨 CF 촬영을 했다는 장소인데 호수가 보이는 언덕길이다. 도로는 구불구불한 산허리를 휘감으며 퀸스타운까지 이어진다. 내려서 보니 경치가 아름답다. 시원한 여름 바람이 뜨거운 햇살과 함께 얼굴에 스치고 지나간다. 


차가 출발하자 무뚝뚝하던 가이드가 입을 열었다. 와카티푸 호수에 얽힌 전설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전설에 따르면 리마커블산에 괴물 거인 ‘마타우’가 살고 있었다. 그가 ‘마나타’라는 처녀를 짝사랑했는데, 어느 날 몰래 보쌈해 간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연인인 ‘마타카우리’가 연인 ‘마나타’를 찾아 나섰다. 


그가 산속을 헤매다 동아줄로 묶여 있는 ‘마나타’를 발견했다. 그런데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줄이어서 손을 쓸 수 없었다. ‘마나타’는 ‘마타카우리’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우는 눈물에 그만 동아줄이 녹아버려 두 사람은 도망갈 수 있었다. 그뒤 ‘마타카우리’는 뜨거운 북서풍이 불어올 때를 기다려 잠자는 괴물 거인의 몸에 불을 질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잠에서 깨어난 거인은 몸에 불이 붙어 고통을 참지 못한 나머지 그의 다리를 끌어당겼다. 거인의 커다란 다리를 웅크리고 있던 자리에 구덩이가 파졌고 뜨거운 불로 인해 주변 산에 쌓여있던 눈이 녹아내려 깊은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와카티푸 호수가 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괴물 거인 ‘마타우’는 죽지 않았고, 그의 심장이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아 숨 쉴 때마다 수위가 변한다고 한다. 정말 심장의 박동 때문인지 아니면, 바람의 압력에 의한 것인지 몰라도 지금도 와카티푸 호수는 실제로 수면의 높이가 6분마다 7.5cm~20cm까지 오르내린다고 한다. 



차창 밖으로 리마커블산이 보였다. 비취색 호수 위로 질주하는 제트보트도 차창 밖으로 보였다. 퀸스타운에 거의 다 왔음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도착하자마자 식당으로 향했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그 식당이 아니다.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였다. 맛은 말하나마니다. 이로써 오늘 일정이 모두 끝났다. 내일은 크라이스트처치로 떠난다.


호텔에 들렀다가 다시 퀸스타운의 거리로 나왔다. 기념품을 사고 나서 다시 와카티푸 호수 쪽으로 걸어가는 데 길가에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다. 궁금했다. 알고보니 유명한 햄버거를 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들이었다. 그런데 줄이 너무 길어 햄버거 맛 체험은 포기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다. 


뉴질랜드의 상징이 키위다. “키위”라는 단어는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새 이름이다. 둘째는 과일 이름이고, 그리고 세 번째는 뉴질랜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새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천적이 없기 때문이다. 키위는 날개가 있지만, 날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저 새이니까 날개가 있을 뿐이다. 


여기 사는 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호숫가를 걷는데 새 한 마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잘 찍어 달라는 듯 카메라를 주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을 녀석이 보여주었다. 녀석은 전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다가가면 날아가야 하는데 이 녀석은 이상한 눈초리로 날 본다.


정겨운 풍경이 들어왔다. 어린아이와 엄마다. 행복해 보인다. 동심을 가득 담은 모습이 호숫가에 연출되고 있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너 번 셔터를 눌렀다. 행복이 묻어나는 퀸스타운의 저녁 풍경이다. 어딘지 모르게 가슴 뭉클하게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어쩌면 퀸스타운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계속 이어졌다. 조깅하는 사람이 우리 곁은 지나갔다. 그를 보니 여기서는 피트니스가 필요 없을 것 같다. 호수를 끼고 달리는 유산소 운동은 그 자체가 생활의 활력소다. 퀸스타운 전체가 호수를 끼고 그림같은 속에  있다보니 그 자체가 힐~링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산책로 벤치에 앉아 책을 보는 아가씨 모습도 인상적이다. 독서와 사색 그리고 삶의 여유가 느껴지는 와카티푸 호수의 풍경이다. 퀸스타운의 늦은 오후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 평화롭고 아늑한 호수의 풍경이 퀸스타운과 너무 잘 어울린다. 뉴질랜드에는 호수가 많다. 하지만 퀸스타운의 와카티푸 호수가 제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뉴질랜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Milford Sound라고 한다. 하지만, 기대만큼 아니었다. 퀸스타운은 애당초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끌린다. 와카티푸 호수의 매력 때문이다. 머무르는 시간은 이틀에 불과했다. 그런데 떠나기 싫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더 알고 싶고, 더 숨어 있는 매력을 느끼고 싶다. 그것을 모르고 떠나는 게 아쉬울 뿐이다. 

※ 참고로 첫 번째 사진과 지도는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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