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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호주&뉴질랜드

울릉공((Wollongong)

by 훈 작가 2023. 12. 25.
시드니 공항

 
시드니 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뉴질랜드 남섬 가이드는 58년생이었다. 그래서인지 비교된다. 보자마자 영업사원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인상이 아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인상이다. 첫 만남이라면 어색한 분위기를 유머나 위트로 긴장을 풀어주는 인사말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목소리에 대한 느낌도 사무적으로 들렸다.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점이 하나도 없다.

울릉공


사람을 처음 대할 때 상대방이 주는 이미지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관상이란 용어가 실생활에서도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생활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나 좋은 인상을 갖추기 위해 얼굴을 고치는 이른바 성형이 대중화된 지가 오래다. 사람은 내면보다 먼저 외모를 본다. 내면을 들여다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볼 수 없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는데 검정치마인 것 같다.

등대와 갈매기


비가 계속 내렸다. 가이드는 달리는 버스에서 열심히 무엇인가 얘기하는데 귓전에 맴돈다. 집중이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날씨가 염려되어서다. 비가 그쳐야 할 텐데 도대체 하늘은 우리 마음을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을까. 프로다운 가이드라면 여행객의 마음을 달래주는 측면에서 ‘뻥’이라도 날씨 걱정 붙들어 놓으시라고 너스레를 떨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는 기대를 벗어나 자기 할 말만 한다. 

대포


그러다 난데없이 ‘울릉공’이란 말이 들렸다. 잘못 들었나 싶었다. 우리나라 울릉도와 비슷한 지명이다. 가이드 말이 계속 이어졌다. ‘울릉공’은 호주 원주민 어로 ”바다의 소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구는 40만 명 규모의 도시다. 여행 일정에 없는 곳이다. 아무래도 뉴질랜드에서 비행기가 일찍 도착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파도


차창 밖으로 비가 계속 내렸다. 투어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비가 온다. 목적지에 다 온 것 같은데 내릴 수가 없다. 날씨 때문이다. 너무 비가 많이 내린다. 가이드는 우리나라 모 승용차 CF 촬영으로 유명한 해안도로를 한 바퀴 돌며 구경하고, 점심 식사 후 다시 ‘울릉공’ 투어를 진행하기로 하기로 우리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가이드의 제안에 침묵으로 동의했다. 

파도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인근의 카지노 뷔페식당이다. 버스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붐볐다.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먹는 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다. 아침 식사를 공항에서 가볍게 한 탓에 배불리 먹었다. 먹다 보니 과식을 한 것 같다. 식사 후 밖으로 나왔다. 빗줄기가 다소 잦아들었지만, 아직도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시드니 첫날부터 날씨가 별로다. 오늘은 그렇다 치자 내일이라도 해가 쨍했으면 좋겠다.

아베크 족


다시 ‘울릉공’에 왔다. 비가 약해진 대신에 거센 바람이 불었다. 남태평양 태즈먼의 바닷바람이다. 갈매기들도 잔디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맞바람을 맞으며 파르라니 떨고 있다. 애처롭게 보였다.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그 잔디밭 언덕을 하얀 등대가 외롭게 지키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아베크족들은 주차한 차 안에서 나오지를 않고, 햄버거를 먹으며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서핑과 소녀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짙은 회색 구름으로 덮어 바닷물까지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 바닷가 한편에서 서핑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파도와 바람이 만만치 않아 위험해 보였다.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는 소녀가 보였다. 소녀 옆에 데리고 온 개 한 마리가 경호원처럼 앉아 있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우리 가족은 ‘울릉공’을 한 바퀴 돌았다.

남태평양

 

바람에 실린 파도가 바닷가 갯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거칠게 바위를 때린다. 볼 만한 것은 없고, 바닷소리만 들린다. ‘울릉공’이란 지명이 정말 딱 어울리는 곳이다. 바람 소리가 좋은 곳이니 눈보다는 귀가 힐-링이 되는 곳이다. 어차피 일정에 없는 투어이니 보너스로 생각하자. 날씨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어쩌겠는가. 

투어버스


마음속으로 투덜댔다. 그래도 마음먹고 온 가족여행인데 참 기분이 그렇다. 그렇다 하더라도 좋게 생각하자. 그래 맞다. 정말 바람이 좋은 날이다. 생각해 보니 내 생애 이렇게 바람 좋은 날은 처음이다. 오늘 이렇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려고 아마도 하늘은 구름을 만들고 비를 뿌렸나 보다. 훗날 이것도 좋은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굳이 날씨때문에 여행을 우울하게 즐길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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