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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중편소설

Hot Dog(1)

by 훈 작가 2023. 12. 25.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엄마 가게

   초복 날 보신탕집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엄마는 주문받으랴 홀 서빙하랴 정신없이 바빴다. 지영은 카운터 일을 보며 빈자리가 날 때마다 식당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53번 손님 들어오세요.” 
  한 무리의 손님이 계산하고 빠져나가자, 지영은 문을 열고 나가 다음 손님을 불렀다. 그늘막 아래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기다리던 중년남성 6명이 황급히 담배를 끄고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 여섯 분.”
 “안쪽 7번 방으로 들어가세요.”
  엄마가 그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야! 오늘 정말 덥네.”
  흰색 반소매 와이셔츠 차림에 하늘색 넥타이를 맨 50대 중년 남자가 말했다.
 “부장님! 초복이잖아요,”
  4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말하며 방바닥에 있는 왕골방석을 깔고 앉으며 말했다. 
 “개 아닌 분만 손들어 보세요!”
  물병과 물수건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엄마가 주문받았다. 맨 끝에 앉아있는 하늘색 반소매 남방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만 손을 살짝 반쯤 올렸다. 
 “사장님! 여기 소주 말고 이슬 하나요.”
  뒤쪽에 4명이 앉아 보신탕을 먹고 있는 남자 손님 중 한 분이 부르는 소리였다. 
 “예! 잠깐만요.”
  엄마가 주방 옆에 있는 냉장 쇼 케이스에서 이슬 하나를 꺼내 들고 갖다 준다. 
 “엄마! 54번 다섯 분.”
 “모두 다섯 분이세요?”
 “예.”
 “이쪽으로 앉으세요.” 
  엄마가 후다닥 물병과 물수건을 갖고 카운터 건너편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다, 개죠?”
 “네~에.”
  그들이 동시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지영은 엄마가 주문받는 모습을 보고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웃음을 꾹 참았다. 이상하게도 손님들은 이에 대해 무덤덤한 표정들이다. 지영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Break Time이 되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 3시가 지나자 북적이던 식당 안이 언젠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지영과 엄마는 식당 식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끝낸 종업원들이 하나둘 쪽잠을 자려고 모습을 감추었다. 지영이 테이블을 깨끗한 행주로 닦고 나서 믹스 커피 두 잔을 들고 와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 주문받을 때 꼭 그렇게 말해야 해?”
  “그렇게 라니?”
  “아까 그랬잖아. ‘개 아닌 분만 손들어 보세요.’라고.”
 “그게 뭐 어때서?”
 “엄마! 손님들이 오해하면 말 그대로면 손님이 다 개잖아.”
  지영이 웃으면서 말했다.
 “설마 엄마가 손님을 개 취급하겠니. 알아서 들어야지.”
 “난 웃음이 나와서 참느라 혼났어.”
 “지영아! 보신탕 먹을 줄 아니? 하고 묻는 말을 충청도 말로 뭐라고 하는지 아니?”
 “으음 모르겠는데, 엄마! 뭐야?”
 “정답은 개 혀? 야.”
 “개 혀? 라고, 하하하~. 충청도 사람들 유머감각 있네.”
 “그래서 충청도 출신 개그맨이 많이 가봐.”
 “난 엄마 주문받는 게 이상해.”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요즘 젊은것들이 쓰는 이상한 말보다 낫지.”
 “이상한 말?”
 “멘붕이니, 노답이니, 갑분싸니, 개딸이니 하는 말 있잖아?”
 “아~아!” 
 “요즘 애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안 그러니?”
 “뭐가?”
 “멀쩡한 우리말을 왜 그렇게 망가트리는 건지, 엄마는 이해가 안 돼.”
 “엄마! 왜,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그럼 좋게 생각하란 말이니?”
 “요즘 스마트폰 다 쓰잖아.” 
 “다 쓴다고 봐야지.”
 “SNS가 뭔지는 엄마도 알지?”
 “대충은 알지.”
 “바로 그거야. 어디서든 휴대폰을 갖고 다니며 문자든 카톡이든 주거받거든.” 
 “그래서?”
 “말 대신 문자를 주고받는 일이 많다는 얘기지. 그러다 보니까 길게 써야 하는 말을 줄여서 쓰는 게 일상화돼서 생긴 거야. 빠르고 편하잖아.”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그렇지.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엄마 세대는 그럴 수 있지.”
  “너도 친구들끼리 그런 말 쓰니?” 
 “당근이지,”
 “며칠 전 젊은 아가씨들이 와서 삼계탕을 먹는데, 뭐라더라~ 아! 맞아. ‘어쩔티비’ 라고 들은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니?”
 “<어쩌라고 가서 TV나 봐.>라는 뜻인데 상대방이 하는 말이 듣기 싫다는 뜻이야.”
 “하여튼 요즘 애들은 문제가 많아. 고생이 뭔지 모르고 자라서 너무 철이 없어.”
  “철이 없다고?”
  “그래.”
  “엄마! 그런 소리 하면 꼰대 소리 들어.”
  “꼰대고 뭐고 엄마 말이 틀렸니?”
  “그건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요즘 젊은 사람들 얼마나 힘든데.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지, 그렇다고 취직한 들 정년까지 간다는 보장도 없지,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지. 그러다 보니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족이란 말까지 생겼잖아.”
  “그게 다 눈높이가 높아서 그런 거야. 왜 직장이 없어. 쉽고 편한 일만 하려고 하니까 그렇지.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고 했는데….”
 “이게 다 세대차이야.” 
 “세대 차이?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할 말 없어. 그나저나 쉬는 날인데 이렇게 도와줘서 고맙다.”
 “엄마! 나 데이트도 못하고 왔으니까, 일당은 줘야 해?”
 “일당? 하하하…. 일당 같은 소리 하네, 얼른 시집이나 가,”
 “시집?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나저나 나 없으니까, 혼자 살만해?”
 “지영아! 엄마는 이해를 못 하겠어. 그깟 강아지가 뭐라고.”
 “엄마 때문이지.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게 뭐가 어때서, 난 엄마가 왜 강아지를 싫어하는지 그게 더 이해가 안 가.”
 “지영아! 너도 한 번 생각해 봐, 엄마가 보신탕집 하면서 먹고 사는데, 개 키우는 게 말이 되냐. 남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니?”
 “….”
 “그래, 안 그래?”
  엄마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보신탕집은 보신탕집이고, 반려견은 반려견이야. 생각하기 나름인지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뭐 있어.”
 “어쨌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절대 안 돼.”
 “이구~ 엄마 고집을 누가 꺾어.”
 “그러는 너는 강아지 때문에 나가 살아야 하니?”
 “엄마가 나가 살라고 했잖아.”
 “지금이라도 강아지를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와.”
 “하나밖에 없는 딸이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데 뭐가 못마땅한 거야? 이모네는 닥스훈트 두 마리에 스패니얼까지 세 마리나 키우는데.”
 “이모는 이모고 엄마는 엄마야.”
 “엄마! 생각해 봐. 내가 언니가 있어 동생이 있어. 달랑 나 혼자야.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나를 외롭게 키운 게 다 엄마 책임이잖아.”
 “그럼, 넌 엄마가 싫다는 걸 고집 부려가며 키워야 하니?”
 “그러는 엄마는 사랑하는 딸한테 져 주면 어디 덧나?”
 “사돈 남 말하듯 말하고 있네.”
 “엄마! 그만 해. 이러다 또 싸우겠어.”
 딸이 한 고집하는 것은 자신을 닮았다. 녀석을 설득하려면 이유를 말해야 하는 데 생각도 하기 싫은 과거를 꺼내야 할 것만 같았다. 딸이 강아지를 포기하고 들어와 같이 살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아 보인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 생각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엄마! 강아지 안 궁금해?”
 “이모한테 맡기고 왔니?”
 “응. 저녁 장사는 나 없어도 되지?”
 “지영아! 강아지 갖다주고 다시 들어오면 안 되니?”
  엄마가 하나 마나 한 말을 또 한다. 대답하자니 또 말다툼할 것 같아 지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일어났다. 
 “엄마! 나, 갈게.”
 “….”
  엄마는 한숨이 나왔다. 딸이 강아지 문제로 따로 나가 산 지 벌써 4개월째다. 여동생 말로는 애인이 있는 것 같으니, 시집이나 빨리 보내란다. 동생 말을 듣고 눈치를 봐서 물어보려 했는데 딸이 일어나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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