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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스산한 풍경

by 훈 작가 2023. 12. 28.

농촌 들녘입니다. 풍요롭던 가을풍경이 다 지워졌습니다. 그 자리에 내려앉은 하얀 눈, 감성적인 시선으로 보면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다가서면 멋진 시 한 구절이라도 떠올 것 같습니다. 겨울이 그려낸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겨울 풍경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처럼 눈이 내린 겨울 풍경이라 그렇게 보였습니다.

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입니다. 눈이 내린 도심은 목가적인 느낌이 없습니다. 회색 빌딩 숲, 넘쳐나는 인파, 오가는 차량 행렬, 때로 짜증스럽게 들리는 차량 경적, 이 모든 게 스산한 분위기와 먼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눈이 많이 오는 날의 도심 풍경은 농촌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여유와 낭만으로 바라보기 힘듭니다.


한 장의 사진이 때론 위안이 되고, 힐~링이 됩니다. 모든 사진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진에 담긴 공감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서면 어떤 것이 공감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자연과 풍경을 보게 됩니다. 사진은 먼저 찍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야 하고, 느낌이 와야 합니다. 자기만족이 없는 사진은 타인의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사진을 보는 관점에서는 그 공감의 이면을 사진을 보는 사람은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단순히 평면에 담긴 이미지입니다. 입체감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실제 출사 현장의 느낌을 알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시각적인 느낌만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밖의 풍경을 모르니 어쩌면 당연합니다.


사진의 관점에서 피사체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스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도심과 달리 길거리에 오가는 차도 보기 힘들고, 사람도 안 보입니다. 말 그대로 한적한 시골입니다. 스산하다는 느낌이 들어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버림받고 소외되어 가는 농촌이기 때문입니다.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팽나무 한 그루,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외딴집, 너무 외로워 보입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와 너무 동떨어진 풍경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추워집니다.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마음이 들떠 있을 텐데. 여기는 흔한 교회 건물 하나 안 보입니다.


사진을 찍으러 왔기에 마음껏 풍경을 담았습니다. 나 홀로 나무와 외딴집 그리고 나뿐입니다. ‘Merry Christmas!’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고 싶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할 것 같아 그냥 돌아섰습니다. 그래도 내가 살던 시골은 작은 교회도 있고, 학교도 있고, 옹기종기 초가집도 모여 있는 마을이었는데.

쓸쓸해 보이는 팽나무 한 그루, 넌 어쩌다 이렇게 여기에 혼자 살 게 되었니, 하고 물으면, 그 나무가 나에게 이렇게 위로해 줄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세상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거야. 오히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건 사람들이야. 난 외롭지 않아. 저 외딴집이 내 곁에 있잖아.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내 곁에 늘 함께 있다는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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